평화인권연대의 기관지 월간평화연대

멋진 신세계의 도래가 머지 않았다

유전자감식정보의수집및관리에관한법률을 반대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지난 11월 14일로 15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영화에서는 그때 유전자감식 기술이 발달했더라면 범인을 쉽게 잡았을지 모른다는 암시를 보여주었고, 이는 과학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비단 ‘살인의 추억’이 아니었더라도, 현재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는 TV외화 시리즈 중 ‘CSI 과학수사대’는 냉철한 판단력과 정의감에 불타는 과학수사대원들이 정밀한 감식을 통해 범인을 잡는 과정을 화려하고 박진감 있는 영상을 통해 보여주면서 많은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법률안 개요와 변화된 상황들


이런 과학수사의 성과를 실질적으로 구현해보겠다는 야심찬 생각은 이제 곧 구체적으로 실현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1월 11일, 법무부는 ‘유전자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이 법률안은 특정범죄자의 유전자 감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사망 시까지 보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법무부는 강력사건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조기 검거 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법률안의 추진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법률안에서 규정한 특정범죄는 총 11개 죄목으로, 살인·강도·강간·폭행·마약관련 범죄 등이다. 특정범죄를 저지른 수형자들과 피의자들에게 유전자를 채취하여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수사자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검찰과 경찰은 90년대 초반부터 유전자 감식을 실시하고 있었다. 경찰청의 경우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약 6만9천여건의 유전자 감식을 시행해왔고, 검찰의 경우 대검찰청 유전자 감식실을 운영하고 있다. 유전자 감식 뿐만 아니라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진행되어왔다. 검찰은 2001년에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가족 찾기 사업을 추진한 바 있고, 90년대에는 ‘유전자정보은행설립에관한법률(안)’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2002년에는 성폭력 예방을 위한 범죄자 데이터베이스 설립을 제안하였다.


‘창살없는 감옥’에 갇히게 될 피의자들


범죄에 대한 죄 값을 치르고 있는 수형자들이나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들에게 유전정보를 강제로 채취해 보관하겠다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야기된 새로운 형태의 인권침해이다. 유전자 정보의 특성상 극히 적은 신체 일부로도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개인 식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유전자 정보가 검찰에 넘겨진 사람들은 평생 수사기관의 감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가 보관되어 있다는 것은 유사 범죄 발생 시 언제나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며, 범죄가 일어날 때 마다 자신의 정보가 검찰에 낱낱이 재공개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미 각 개인마다 고유한 식별번호인 주민등록번호와 전 국민의 지문을 전산화 하여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정보를 추가한다는 것은 개인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극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성범죄자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의 경우, 재범의 확률이 높은 성범죄의 특성을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필요 이유로서 제시하고 있으나, 여성단체들도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성범죄 재범의 원인은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이지, 범죄자를 재 처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권침해의 확대 가능성


수형자 혹은 피의자에게 채취한 유전자를 가지고 이전의 범죄자들 자료와 대조해 보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의 자료가 많아야만 효율성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법률안을 통해 구축하고자 하는 데이터베이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입력 대상의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특히 입력 대상이 많아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 법 제정에 찬성하는 전문가들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간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 시도의 범위가 점점 더 확대된 것(유전자 감식 -> 미아찾기 -> 성범죄자 -> 11개 범죄 범죄자와 피의자까지)만 보아도 이후 이 데이터베이스가 지속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충분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피의자나 수형자뿐 아니라 범죄 현장과 관련한 장소에서 발견된 유전자 감식 시료를 모두 수록할 수 있게 되어있어 인권침해의 확대 가능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인권 보호 대책


법무부에서는 유전자 채취 시 피의자의 서면 동의나 법원의 영장 등을 통해 인권 침해 방지 장치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정보로 인한 인권침해가 대부분 정보 채취시 동의 여부 보다는 정보의 보관과 관리 운영상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시료와 감식정보의 폐기 여부와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느냐가 인권보호의 측면에서 더 중요한 사항일 것이다. 하지만 법률안에서는 직권이나 수형자나 피의자의 신청에 의해서 폐기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어서, 유전자를 채취당한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는 경우에는 유전자가 계속 보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범죄 사건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현장에서 발견된 유전자시료나 감식정보를 폐기할 수 없으므로, 미결사건의 경우에 확보된 유전정보의 당사자는 지속적인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유전자 감식 실태


현재 유전자 검사와 관련한 윤리/제도적 보호장치는 올해 발효된 ‘생명윤리안전법’이 유일하다. 그 마저도 의료와 관련된 부분에서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 것이 전부이다. 검찰과 경찰에서 90년대부터 진행해 왔던 유전자 감식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들은 전혀 없는 것이다. 개인의 정보 뿐만 아니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유전적 정보를 모두 담고 있는 유전정보의 특성상 유전정보의 활용은 더욱 세밀한 인권보호대책이 없이 남용되어서는 안 될 것임에도, 검찰과 경찰은 ‘과학적인 범죄수사’라는 명목을 걸고 자의적으로 감식을 진행해온 것이다. 과학수사에 필요한 유전자 감식의 개별적 활용과 강제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동일한 선상에서 논의하는 것은 법무부의 인권에 대한 무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간 자의적으로 진행해온 감식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부터 개선한 후, 이후 ‘수사를 위한 과학수사’가 아니라 ‘인권을 위한 과학수사’의 발전가능성을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필자는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