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인권연대의 기관지 월간평화연대

왜 여성주의자들은 반군사주의자인가? Ⅰ







글싣는 순서



'유전자' 혹은 '삶의 경험'?

공통지반 발견하기


페미니즘을 부르다

페미니즘 사이의 선택

우리 목표를 위한 페미니즘

민족주의와 군사주의가 충돌하다

'인도주의적 전쟁'

인종주의와 전쟁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것






여성단체에서 군사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을 할 때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우리는 왜 여성단체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또한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없이 우리는 “우리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을 위해 이론적 근거를 찾고 있다. 이렇게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행동계획과 언어선택을 구체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에 대해 가능한 답변을 소리 내어 말하며 사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씌어졌다.


‘유전자’ 혹은 ‘삶의 경험’?


역시 위험한 발언이긴 하지만 “왜 여성인가”에 대한 짧은 답변이 있다. “여성의 본성에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심성이 있고 우리는 감정적이며
돌봄의 선천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유전인자 속에 들어있으며 아이를 낳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우선 평화운동을 하는 여성들 중에는 군대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에 끊임없이 모순 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여성은 원래 공격적이지 않다고 기대하는 것은 실망하기 딱 좋은 생각이다.


여성들이 타고난 평화조성자(peacemaker)들이라 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본질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사고는 ‘(정말로 다양한) 여성들’을 신 혹은 자연에 의해 주어진 근본적이며 명백하고 필연적인 특성과 역할을 가진 ‘여성’으로 축소시킨다. 차이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설명은 남성과 여성 당사자들의 문제뿐 아니라 그들이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부당한 것이다. ‘피와 유전자’에 의해 규정되는 인종적 정체성은 모두 위험하다. 사실 그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정체성(‘혈통’을 연상시키는)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치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여성평화운동은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더 긴 답변은 성(sex)과 반대되는 개념인 젠더(gender)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젠더 개념은 충분히 부드럽게 생각되어지지만 오랜 역사의 측면에서 성별 간 차이의 거의 대부분은 결국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산되었으며 혁명적으로 전환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 속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샴푸나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방대한 규모의 부단한 일이 유사하기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특정한 틀에서 여성과 남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투여된다. 운이 좋게도 우리 중 몇몇은 이러한 과정에서 벗어났다. 어쨌든 사람으로서 우리가 흥미로운 방식으로 매우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성별화 과정의 원인과 효과 면에서 여성과 남성은 상당히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일상, 일, 전쟁, 그리고 불이익의 경험, 겨우 이 4가지 특질을 골라낼 수 있었다. 가정적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여성이 대다수 남성보다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며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세탁을 하고 청소를 하며 늙고 병든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이며 가족을 위해 건강과 교육, 사회복지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책임들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태도를 습득한다.


다른 유급의 일을 하는 것 역시 다른 이익과 능력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과학기술과 고용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생활에는 아직까지 성별분업이 표명된다. 여성들은 개인적인 돌봄 노동을 포함한 서비스 분야 직종에서 두드러진다. 많은 여성들이 임금을 위해 그러한 노동을 수행한다. 학문적 생활에서는 언어, 인류, 사회과학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남성보다) 적은 수의 여성이 경쟁적이며 때때로 공격적인 사업, 정치, 국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 번째 지점은 특히 우리와 관련되어진 전쟁의 성분리(sexual division)이다. 남성보다 소수의 여성들이 군대와 준군사부대에 징집되며 때때로 여성들은 폭력을 범하지만 여성에게 특징적인 것은 아니다. 또 확실히 대부분의 여성들이 전쟁정책을 만들고 군대를 통솔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래서 여성들이 군사주의적 생각에 덜 오염되어 있을 거라는 가정은 설득력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대부분 국가에서 대부분 사회계층의 여성들은 성별에 따른 불리함과 불평등을 경험한다. 이것의 하나의 양상은 여성들은 종종 남성들에 의한 개인적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여성들은 폭력과 군사주의, 그리고 남성들이 폭력을 배우고 여성경시라는 강한 연대감을 가능케 하는 특정한 남성문화 사이에 연관관계를 본다.


이러한 모든 성별화된 경험,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성별특수성은 여성과 남성의 견해와 문화 모두의 차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견해 : 예를 들어 38%인 남성비율에 비하여 오직 23%의 여성만이 이라크 침공에 찬성했다는 최근 가디언(Guardian)을 통한 ICM 리서치의 여론조사 통계를 보라. 문화 : 남성과 여성은 흔히 다른 하위문화를 형성한다. 여성들이 ‘우리의 방식’대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그룹에서 일하는 것이 더 좋다고 자주 말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입증한다.


요약하면 나는 여성들의 차이에 대한 본질적인 믿음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경험의 차이, 성인지적 삶의 궤도라는 점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공통지반 발견하기


이를테면 그것은 특정 종류의 여성평화운동에서 명백한 원칙이 된다. 무장 갈등 상황에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 서로 다른 ‘편’에 선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공통적인 요구사항을 찾는 것을 통해 협력관계를 형성해왔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북아일랜드의 여성들이 있다. 10~15년 전 벨파스트(Belfast: [옮긴이주]북아일랜드의 수도)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살고 있는 노동자계급 여성들은 공동체를 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천주교나 개신교 신도들인 동료들이었다. 당시 그들이 찾아낸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빈곤 속에서 가족을 부양하면서 겪었던 힘든 경험, 가정폭력, 지방자치단체의 형편없는 대우, 경찰과 군대에 의한 희롱, 그리고 그들의 십대 아들들이 그들의 이웃을 통제하는 준군사적인 조직에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계속되는 공포였다. 마침내 두 번째 단계로서, 공통지반을 발견했던 이러한 몇몇 여성조직은 민족주의와 연방주의 여성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연구를 통해 보스니아, 이스라엘, 그리고 사이프러스의 분쟁선을 가로지르는 여성들의 동맹 사례를 발견했으며 다른 나라들에도 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아마도 우리 역시 우리의 활동에서 같은 영향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벨파스트의 매우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이며 다른 나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여성이며 그리고 종종 무책임하게 외국에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힘을 사용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여성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실지로 전쟁을 경험한 여성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혹은 아프간 혹은 이라크 여성들과의 연대활동을 위해, 그것의 기초로서 ‘삶에 대한 여성의 공유된 경험’을 필요로 하였다.





* 이 글은 2003년 3월 1일 영국의 낸트위치(Nantwich)에서 열렸던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WILPF)>의 연차총회에서 있었던 저자의 강연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 관점이며 어떠한 조직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과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Women in Black)의 토론 자료로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다.



번역 : 오리(평화인권연대, duck52 at jinbo.net)
덧붙이는 말

필자는 런던 시티대학교(City University) 사회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