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동자들의 연대와 희망 월간금비

[인터뷰]강쨩이 만난 사람 _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직 지부장

철가면을 벗는 날까지

올 겨울 가장 춥다는 영하10도. 몸이 자꾸 움츠러든다. 뜨거운 오뎅국물 이라도 마시면 어깨가 좀 펴질까. 그러나 뜨거운 국물만으로는 덥혀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의 추위가 실은 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매일 아침 황우석교수의 사진이 1면 기사인 신문을 접하는 하루하루 속에서, 다수라는 논리로 소수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싶어하는 우리사회의 파시즘을 발견하는 일은 늘 끔찍하기만 하다.

그래. 처음엔 소수였다. 그래서 그저 숨 죽이며 살아 왔다. 다수가 소수를 염려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제 말이 없던 소수는 다수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도 조직화되지 않은 다수. 그 이름하여 비정규직.

조직되지 않은 다수는 조직된 소수에 의해 지배당한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산별노조인 전국금융산업노조에는 다수의 정규직 기업지부와 유일한 비정규직 특별지부가 있다. 노동운동을 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사람이 소망이었다는 그. 하지만 지금은 ‘조직되지 않은 다수는 조직된 소수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레닌의 말을 가슴에 품을 정도로 체험의 나이테를 한 개씩 늘여가고 있는 그. 권혜영 지부장을 만났다.

IMF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비정규직은 사회안전망과 제도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임금과 고용불안, 그리고 차별대우에 신음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정규직 노조들은 아직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선언적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노조의 비정규직 지부는 비정규직 당사자가 직접 투쟁하며 조직해 왔다는 점이 무엇보다 크게 다가 왔다. 그래서 첫 질문으로 금융노조에 비정규직 지부가 설립되게 된 과정을 물어 봤다.

2003년 1월 금융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특위를 구성한 뒤에 그해 11월에 실태조사를 발표 했어요. 당시 지부 직가입으로 할 것이냐 특별지부로 할 것이냐 아니면 별도의 독립지부냐 하며 조직화 경로에 대한 논란이 있었어요. 지부 직가입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해서 우회경로인 특별지부를 권고하게 되었고 2004년 1월 15일 50여명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조합원총회를 통해 특별지부로 설립을 했어요. 물론 지부장도 선출되었지만 그 다음날로 사측의 압력에 못 이겨 초대 위원장이 사퇴한 뒤에는 거의 공백상태로 있었죠. 그러다가 우리은행 공과금 해고자 투쟁이 시작되면서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일할 사람이 생겨났고 2004년 12월 3일 자연스럽게 2대 지부장으로 추대되었어요. 형식적인 틀만 있었던 지부에 비정규직이자 해고자인 제가 주체가 되어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랬다. 결국 자신의 문제가 되고, 자신의 입장이 되어서야 강력한 투쟁과 조직은 시작될 수 있었다. 고용불안을 떠안고 사는 비정규직은 특성상 드러내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처음 50명을 조직하는 것만 해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권 지부장은 당시 금융노조 정규직 지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지부에 직 가입한 조합원을 제외하더라도 특별지부에 가입원서를 낸 비정규직이 800명 가량 이라고 하니 어려운 여건에서 1년여 동안 조직사업을 한 것으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는 비정규직이 되기 전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해고자가 되기 전까지는 노동조합과 크게 상관없이 산 사람 이다. 풍족하지 않은 가정형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여상으로 진학했기에 학창시절 은행원이 꿈이었고 뜻하던 대로 외환은행으로 입사했다. 비서업무도 했고 장미텔러 라고 친절한 은행원으로 성실히 근무했다. 퇴직 이후에도 육아와 가정에만 충실했던 그저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 2002년 우리은행에 새로 취직 했을 때는 비정규직이 되었고 2년 뒤인 2004년 3월 31일자로 동료직원 54명이 함께 해고통보를 받았다. 때 마침 금융노조에 비정규직 지부가 생겨났고, 반가워서 가입하게 된 것을 인연으로 평범한 아줌마에서 금융권 비정규직 투사로 변모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은행에서 해고당했던 54명중 24명이 아직도 부당해고 철회투쟁을 하고 있는데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다 승소판결이 났는데도 은행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라 한다. 법적투쟁을 하기 전 8개월간 권 지부장은 은행쪽은 물론이고 지부에서조차 대외 이미지 때문에 껄끄러워 하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우리은행 앞에서 한달내내 매일 집회를 했었고 선전전, 1인시위 등 정말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 봤단다.

당신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어요.

아프지 마세요. 당신이 아프면 나는 두 배로 아파요. 변변한 말 한마디 건넬 수조차 없어요. 당신이 아프단 소리에 밤새 숨 죽여 울기만 한 적도 있어요. 그러니 제발 아프지 말아요. 그래도 당신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어요.

전국은행계약직모임(http://cafe.daum.net/geyag)이라는 다음 카페에 들어가면 초기화면에 씌어 있는 글이다. 필자는 이 글을 오래오래 곱씹어 읽어 보았다. 날씨가 추우니 감기조심 하라는 단순한 메시지 일수도 있고, 연인에게 보내는 뜨거운 사랑의 언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권혜영 지부장이 1만 2천명 카페회원은 물론이고, 아픈 줄 알면서도 변변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들에게 보내는 약속처럼 읽혀진다. 여성특유의 모성애 일 수도 있겠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고 밤 새 숨 죽여 울 수 있는 뜨거운 가슴, 대신 아파해 줄 수 있는 열정이 없다면 그 것을 운동이라 할 수 있을까.

전국은행계약직모임 카페는 금융권 비정규직 뿐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하루에 고정 방문객만 천여 명. 4명의 운영진이 함께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글을 올리는 사람은 ‘아이언마스크'라는 아이디를 쓰는 권혜영 지부장. 왜 그런 닉네임을 정했는지 갑자기 궁금했다.

영화에서 따 온 겁니다. 아이언마스크란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아세요? 루이14세와 삼총사 얘기인데 저는 아주 재미있게 여러 번 봤어요.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어두운 감옥에서 철가면을 쓴 죄수로 살다가 루이 14세로 등극하면서 완전히 다른 삶으로 거듭나죠. 그것이 마치 우리 비정규직의 삶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희망이 있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게 이 영화와 일맥상통하지 않아요? 비정규직의 철가면 아래서 신음하는 우리의 모습. 제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요. 권 지부장은 멋쩍게 웃는다.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비정규직에게는 온라인으로 하는 조직사업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카페 회원이 조합원이 되는 경우가 많은지 물었다. 카페는 익명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보교류로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노조에 가입하면 재계약 거부 등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해서 조직화는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의식 재고도 필요하고 함께 나누다보면 언젠가는 적극적으로 노조에 가입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카페 회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고용불안이다. 임금이나 복리후생 등 각종 차별에 업무나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 등 노동강도가 강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충이 크다고 한다. 은행권에 각 기업별로 수다방이라는 소모임 방을 만들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는 카페다.

우려가 현실로, 사유제한이 없으면 비정규직 고착화됩니다.

은행권의 비정규직은 흔히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근무형태를 담고 있는데, 파견직까지 포함해서 비정규직이 4만명 정도이고 전체 금융노동자가 12만명 이니까 1/3 이상이 비정규직인 셈. 임금은 정규직의 30%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다른 산업의 비정규직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지키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업무적인 부분이나 또는 공간적인 부분을 아예 분리시켜가고 있어요. ‘비정규직 업무는 이런 거야', '너네가 일하는 공간은 여기야' 이런 식으로 나눠 놓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어요.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회피하기 위해서 아주 좋은 구실을 만든 거죠."

예를 들면 창구든 콜센터든 과거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있지 않고 정규직이면 정규직, 비정규직이면 비정규직으로만 배치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피해간다는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증권업계보다 진일보(?)한 형태로 사용자들이 잔 머리를 굴리고 있는 셈이다. 은행의 정규직전환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냐는 질문에 권 지부장이 좀 흥분한다.

2004년도 단협에서 2007년까지 IMF이전인 96년 수준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기로 합의했었어요. 정규직 전환제도를 통해 비정규직 비율을 지속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사측은 해고나 아웃소싱 등 편법을 동원해서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려고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각 행마다 있는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은 비정규직 간에 피 말리는 경쟁을 부추겨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어요. 또 노조에 가입하면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누락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조직화조차 어렵게 악 영향을 주고 있지요. 은행에서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전환을 한 경우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데, 사실 그 비율 이라는 것이 거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수준이에요. 실적이라는 것이 각 은행 마다 1% 정도니 말이죠.

들어보니 더하면 더했지 증권업계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노사간의 단협을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으로는 고착화되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물론 단협을 통한 성과도 적은 것은 아니다.

올해 임단협에서 금융노조는 비정규직 임금 인상률을 정규직의 2배 수준으로 적용하기로 하고 임금인상 소급분을 지급했다. 그러나 실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임금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두 배로 인상률을 적용해도 임금격차는 더 벌어지는 상황이며 지부별로 보충 협약시 임금 소급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단협은 대개 비정규직까지 확대 적용받지 못한다. 차별은 계속되고 있고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물론 올 임단협은 비정규직 지부가 처음으로 산별교섭에 참여한 데에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조인식에는 참석 하고서 조인은 이루어지지 않아 별도합의 할 수 밖에 없는 등 정규직 노조와의 마찰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고 권 지부장은 토로한다. 비정규직 노조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엇을 하든 서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며, 때론 상처받기도 했던 지난 1년을 회고하기도 했다. 또 어느 때보다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계와 사회 전반에 핵심과제로 부상한 2005년도에 금융노조의 선거후유증으로 이 사업을 보다 힘차게 조직적으로 이끌지 못했던 점을 무척 가슴 아파 했다. 그래서 이번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쟁취 투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도 모른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유제한을 포기하게 되면 계속해서 편법적인 2년 미만 짜리 단발성 계약직이 난무할 수밖에 없고 장기근속자 중심으로 대량해고 라는 태풍이 몰아칠 것 입니다. 실제로 금융권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관련 입법을 앞두고 관례적으로 1년 단위 계약을 갱신하다가 3개월, 6개월 단기계약으로 전환하면서 계약해지를 더욱 쉽게 할 준비를 서둘러 오고 있거든요. 법이라는 게 한번 만들어지면 개정되기가 쉽지 않은 것인데 사유제한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번 법안은 정작 보호해야 할 비정규직 고용을 오히려 불안케 하는 애물단지가 될 뿐입니다.

희망은 나의 힘, 사람 좋아하는 권혜영은 늘 통화중

권 지부장은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순한 아이였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는 누구나 그랬듯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상고를 가면서 어느 사이 은행원으로 장래희망이 바뀌었고 꿈대로 은행원이 되었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비정규직으로, 해고자로 그리고 노조활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노조경험은 없지만 정규직으로 근무할 때 여직원회장을 했다고 하니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조직을 하는 것은 그에겐 낯선 일은 아닌 것 같다. 길지 않은 인터뷰 내내 그녀의 전화기는 계속해서 울려댔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오늘 웬일로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오냐며 미안해 했지만 다른 날도 그는 통화중인 경우가 많다. 통화 내용에 귀를 쫑긋 세우니 주로 임단협 타결 이후 성과급이나 소급분 지급에 대한 상담인 듯싶다.

그는 아줌마들의 경쾌한 수다처럼 다다다다 빠른 말투로 사람들의 궁금한 것을 풀어주기도 하고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폭넓은 교집합이 이루어지길

그는 노동운동의 초보이긴 하지만 운동의 기본은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아니냐면서 비정규직은 바로 내 옆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료가 소외당하고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런 부당성을 안다면 문제제기 하고 함께 투쟁해야 하는 것이 운동의 기본이라고 생각되며 이 기본에 얼마나 충실하느냐가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은행권에서 사회 공공성만 부각시키면서 사회환원사업 등에 관심이 많은데 실상은 내 곁에 있는 동료 조차 도외시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폭넓은 교집합이 있어야 되고 그 넓이와 깊이가 얼마나 커지느냐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 운동이 한층 더 성숙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일례로 구조조정기에 많은 수의 금융권 노동자들이 명예퇴직을 통해 일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들이 다시 재입사할 때는 저처럼 비정규직으로 입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정규직 전환문제를 들고 나오면 대다수 정규직 노조의 반응이 에이, 명퇴금 받고 명퇴했는데 무슨 또 정규직 전환이야, 받을 거 다 받아 놓고. 이렇게 생각하더라구요. 상대의 입장에 서보지 않은 자기중심적 생각이에요. 그들이 과연 명퇴를 하고 싶어서 했는지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고 싶어서 했는지 역지사지를 해 보았으면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의 새해 소망을 들어 봤다. 권 지부장은 선뜻 복직이라고 말했다. 오는 1월 13일에 행정소송 판결이 있는데 처음 복직투쟁을 시작했을 때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복직에 대한 소망이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며, 복직을 통해 더 많은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얘기하게 되길 고대했다.

이제는 자신의 삶과 투쟁이 단순히 비정규직의 현실을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서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되어도 좋다고 믿고 있는 초보활동가 권혜영. 그를 만나면 누구라도 그가 가진 생기 넘치는 열정에 곧 전염될 것이다. 오늘도 그의 두 눈은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이 도시에 따뜻한 온기가 되어,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아니 아프더라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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