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동자들의 연대와 희망 월간금비

소수 자본 이익 극대화가 금융허브 정책인가?

업무영역 확대 바람직하지만 노동자 생존권, 금융공공성은 저해될 수밖에

금융허브란 국내외 유수한 금융기관들이 집결하여 자금의 조달과 거래․운용 등 각종 금융거래를 행하는 지역을 말한다. 고로 동남아 금융허브란 동남아 지역의 각종 금융거래가 행해 지는 금융기관의 집결지를 일컫는데 정부는 대한민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한다는 구상 하에 그 동안 줄기차게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지난 2월 중순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가칭)] (이하“자통법”) 제정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이란 일반국민과 기업 등 사회의 다양한 경제주체가 참가하여 사회적인 공동작업의 결과로 성립되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따라서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법률체계는 최선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성의 설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통법에서는 공공성과 사람보다는 (투기적) 자본의 이익 실현의 극대화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다.

증권산업은 구조조정이 부진했다?

정부는 간접금융시장(은행)은 구조조정, 겸업화․대형화, 수익성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왔으나 자본시장 관련 금융산업은 그간 구조조정이 부진했고, 대형화․겸업화와 수익성 개선도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금융권 구조조정은 1997년말 외환위기 사태에서 비롯되었다. 은행과 마찬가지로 증권산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외환위기를 본격적인 출발로 보아야할 것이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사태로 1997년 12월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이 개정되어 적기시정조치제도가 도입되었다. 적기시정조치제도는 자기자본비율 등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경우 감독당국이 의무적으로 해당 금융기관에 경영개선 권고, 요구 등의 조치를 취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 조치로 인해 98년 5월 동서증권과 고려증권이 청산되었고, 9월에는 장은증권과 동방페레그린이 퇴출되었다. 신세기투신의 인가가 취소되었고, 한남투신은 영업정지 후 신탁계약을 국민투신에 이전하고 청산절차를 밟았다. 한국, 대한, 국민(푸르덴셜의 전신)은 1999년 12월 자본금 확충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였고, 현투는 2000년 6월 해외매각이 추진되었다. 지방소재 및 중소투신사는 신탁자산 이관, 대주주의 지분매각, 증권사 및 투신운용사로의 분리 등으로 모두 정리되기도 했다.  2003년 1월말까지 전체 금융기관의 31.4%인 659개사가 정리되었고, 앞서 서술했듯이 증권사는 36개사 가운데 10개사가 정리되었다. 퇴출 외에도 증권사는 생존의 명목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였고, 증권유관기관들은 30% 인원을 감축하라는 정부의 지침에 의해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활황 장세를 보였던 1999년을 기점으로 비정규직이 대거 유입(신규진입, 재진입 모두 비정규직) 되었고, 2001년도에 들어서는 지점폐쇄, 대기발령, 권고사직, 명예퇴직 등의 방법을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실시되었다. 2003년 9월을 기준으로 볼 때 지점 70개가 축소되고 2,485명의 증권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2004년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는 증권사의 수익악화와 대형화를 위한 인수합병이 횡횡했고, 이를 이유로 전 증권사와 전기관을 대상으로 사실상의 정리해고인 명예퇴직이 실시되어 3,000여명의 증권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떠났다. KGI증권은 본점을 제외한 전지점을 폐쇄했고, 우리증권과 LG증권의 합병 과정에서는 900여명의 노동자가 명예퇴직 당하기도 했다.

정부는 은행이 구조조정도 성공했고, 수익 구조도 개선되었다고 말한다.  소유지분의 대다수는 외국 투기자본이 장악하고 있고, 2%의 국민이 80%의 예금잔고를 소유하고 있으며, 대포적인 수수료 인상으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은행이 구조조정과 수익성 개선의 성공 사례가 될 수 있겠는가?

증권노동자들은 증권사  수익구조의 제일 큰 문제를 과당경쟁으로 꼽는다. 정부의 규제로 팔 수 있는 상품은 한정되어 있는데 정부는 증권사 진입 장벽을 완화했다. 당연히 과당경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었다. 증권산업의 수익성 악화는 정부가 키워왔다. 그래놓고, 정부는 지금까지의 증권산업 정책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없이 이제 금융투자상품 개념을 포괄주의로 전환시켜 줄 테니 투자은행을 키우거나 차별된 상품을 만드는 체질 개선에 들어가라니 병주고 약주는 셈이다.

불 보듯 뻔한 노동자 생존권 문제

증권산업의 업무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수익성 개선에 일조할 수 있을 만한 대목이다. 매매업, 중개업, 자산운용업 등 모든 금융투자업 상호간 겸영이 허용된다. 대형 금융투자회사가 되거나 투자회사가 아니라면 차별화된 상품을 팔면 된다. 자본시장은 어차피 경쟁이니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된다. 자통법이 제시하는 원칙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 이상일 뿐이다. 현재 정부는 대형 금융투자회사가 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은 5-6개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자통법 제정 방안 발표를 전후하여 증권사들의 인수합병 시도와 관련한 소문이 돌고 있다.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미래에셋의 경우 M&A 대상 사업장을 찾고 있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올 9월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고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8년부터 시행에 들어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증권산업에서는 빅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증권사는 투자은행이 되기 위한 치열한 인수합병을 전개할 테고, 자산운용사와 선물회사는 소수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독자 생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전문인력 양성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 대량 해고가 그것도 몇 년동안 장기간에 걸쳐 발생될 것이다.

판매권유자제도의 도입, 고용형태도 문제지만 사회적 역할도 문제

자통법은 판매권유자(Introducing Broker) 제도 도입을 통해 판매망을 확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판매권유자란 자격증을 취득하여 금융투자회사의 위탁을 받아 금융상품 판매의 사실상의 중개 업무를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그 수가 10만이 되건 20만이 되건 관계없이 판매망을 뚫어 상품을 팔기만 하면 된다. 보험설계사와 같은 것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또 다른 핵심인 특수고용노동자이다.

특수고용노동자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사실상의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사업주 등록 등의 형식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고용형태를 말한다. 골프장의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운송노동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마당이다. 증권산업에 특수고용노동자가 도입되는 크게 두가지 문제를 야기시킨다.

첫 번째는 새로운 직군의 특수고용노동자가 양산된다는 점이다. 판매권유자 제도는 판매망 확충을 위해 도입되는 것이므로 인력 가동에 제한을 두지 않게 될 것이다.  

두 번째, 판매권유자제도를 악용한 상시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 증권노동자들은 약정실적으로 임금과 인사고과를 평가받는다. 자본은 저성과자들에게 사직을 권고하거나 원거리 발령을 내어 사직을 종용한 후 투자상담사(특수고용)로 재고용한다. 이는 증권산업에서는 이미 고정화된 상시 구조조정 방법이다. 판매권유자 제도가 도입된다면 권고사직 후 판매권유자로의 재고용이 일반적 구조조정 방안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문제는 무분별한 상품판매가 가져올 문제이다.

정부는 자본시장의 자금 중개 기능과 공급 기능이 부진하여 자본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판매망 확대가 자금 중개 기능과 자금 공급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판매망 확대는 자본시장의 기능 항진보다는 투자자의 손실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상품을 판매하고, 투자권유 규제에 따라 여러 고지의 의무를 지킨다고 해서 투자자가 보호되지는 않는다. 판매권유자는 단순히 상품을 알리고 투자를 권유하기 위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판매가 목적이다. 최소 몇 만 혹은 몇 십만에 이를지도 모르는 판매권유자들이 경쟁적으로 전국 방방 곳곳을 누비며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에게까지 상품을 판매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손실보상을 금융투자회사에서 해준다고는 하나 판매망이 확대된 만큼 손실과 관련한 고객과의 분쟁 사례가 빈번해질 것이다.

금융공공성보다는 자본 이익의 극대화가 실현될 것이다.

영국의 금융통합법(FSMA)에서는 금융업의 사전인가제도를 두고 본사를 영국에 두고 있는가 - 다시 말해 법인의 경영과 통제가 실제적으로 영국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신청자가 인적 물적 자원의 적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규제대상의 사업을 할 수 있는 자들로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는가, 주요 인물은 적격한가 - 등을 살펴보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 수 없으나 금융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이다.

금융은 사회적 시스템이며 사회의 공통 재산이다. 따라서 아무리 자본이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본성으로 삼는다 해도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된다. 시스템을 통해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투기자본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자통법은 업규제 진입규제, 건전성규제, 영업행위규제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적인 자기 자본 수준을 현재보다 낮추어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고객의 위험정도에 따라 자기자본규제 비율을 차등화하며 사모펀드의 규제를 완화하는 등 현재 300여개의 자본시장 규제 중 40% 정도를 폐지․완화한다.

다시 말해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실현하려는 투기자본의 유입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고, 금융의 공공성은 사라진다는 뜻이다. 증권산업의 업무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자본이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소수 몇 개의 투자회사를 만들기 위해, 이들의 자본축적을 위해 최고의 공공성을 실현해야할 금융권이 공적인 사회시스템을 강화하지 않고 되려 규제를 완화하는 것, 이 과정에서 수천의 노동자의 생존권이 박탈되는 것,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지 않을까? 이번만큼은 정부가 증권노동자들의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