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님과의 인연은? 대학 졸업후에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좀 해볼려고 했어요. 어디서 공부를 할까 고민하다 사실 그 당시에는 강정구 교수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이런 교수님 밑에서 배우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동국대 대학원에 들어가게 됐지요. #대책위 활동은 어떻게? 대학원 들어갈 당시 저는 수배중이었어요. 안정적이지 못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강교수님이 무척 잘 받아주시곤 했죠. 그런데 제가 들어오자마자 선생님이 잡혀가셨어요. 그게 2001년 만경대 사건이에요. 그리고 2005년 논문을 쓸 때 2차 사건이 터졌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강교수님 대책위가 컸던 게 아니라 몇 개 단체만 결합되어 있었어요. 이걸 좀 키우자고 맘먹었지요. 이것은 단순히 강교수님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보수우익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결합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민중연대 등 여러 단체를 찾아갔어요. 그때 당시 대책위 소속단체는 9개였는데 그런 노력으로 130여개 단체로까지 늘렸지요. 홈페이지도 동국대학교 학생들 클럽을 확대해서 강정구 교수 공대위 홈페이지로 개편하고 그러면서 실무작업을 제가 하게 된거죠. 듣기로 학부때 학생회장 임기가 끝났음에도 다시 하라는 제의가 있을 정도로 학생회장 역할을 잘하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닙니다. 그건 과장된 얘기에요. 당시 학교문제로 교육부에 대한 상당한 반발이 있었어요. 학우들의 지지로 학생회에서 벌인 투쟁이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어요. 학교 자체로 수업거부투쟁도 벌였어요. 학교 내의 여러 정파가 있었지만 총학생회의 이런 투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 촛불시위도 마찬가지지만 다양한 입장의 정파들이 어느 누구도 촛불을 부정하지 않잖아요. 11월 선거를 다음해 3월로 하자는 얘기였고요. 그래서 그 투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총학생회장을 4개월 더하라는 얘기였어요. #수업거부 투쟁이 쉽지 않았을텐데.. 당시 집회시위를 계속하는 와중에 학우들의 공감대를 얻었을 때 더 강력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어요. 그래서 총투표를 했고 그 결과 수업거부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어요. 그날 밤에 모든 강의실의 의자를 빼서 봉쇄를 해버렸죠. 가끔 그것을 뚫고 들어가서 수업을 한 교수들이 있었는데 우르르 몰려가서 그러면 안된다고 설득한 적도 있었어요. 추진위원을 많이 조직하셨는데, 열성적으로 평통사 활동을 해오신 분들도 추진위원을 조직하는데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그분들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렵게 생각하면 한도끝도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 뭐 북미간 정세가 어떻고, 추진위원을 하면 너의 역할이 어떻네, 하면 왠지 다가가기 힘든 부분인줄 알잖아요 저는 아주 쉽게 얘기했어요 그러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상당히 쉽게 ‘아 뭐 그거 어렵냐’하고, 이게 또 자기 돈을 버린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좋은일 있으면 나도 동참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거죠. 북미간의 문제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한번 해볼 것이냐의 이런 부분이기 때문에 억지로 힘들게 사람들 만나고 설득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봐요. 거부감을 보이는 분이 있으면 전 설득하지 않았어요. ‘넌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만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보는 거죠. 대부분 흔쾌히 동참하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평화협정 운동을 하는 데서 아주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봐요. 북미간의 정세가 바뀌고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는 과정에 있는데 우리가 주도해서 우리 내용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가 가장 핵심인거 같거든요. 국민을 배제한 정부간의 협정에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니깐 우리가 만들어보고 되든 안되든 간에 한번 제의해 보고 같이해 보자’ 하는거죠. 사실 이런 내용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단순한 선언운동이 아니라 모금도 함께 해야 돼서 어려움이 없진 않았을 텐데.. ‘신문광고 내니깐 의견에 동의하면 천원내라’, ‘시간이 안되면 길잡이 하고 시간이 돼서 사람들 설득할 수 있으면 추진위원 해라’, ‘만원이면 추진위원 할 수 있다’ 사실 만원 아까워서 추진위원 안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정도 의지가 있으면 돈을 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냥 ‘편하게 사람을 만나고 기회가 있을 때 이런 얘기 슬쩍 꺼내서 일주일에 한명이든 두명이든 모아보자’고 얘기하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하는 것이지 운동단체의 의무감을 주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범하게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을 주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추진위원과 길잡이의 차이를 설명하는게 더 시간이 걸렸던것 같아요. #평통사에 대해 그전에 알고 계셨나요? 강정구 공대위 할때 많이 참여해주시고 해서요.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접했지요. 퍼포먼스 많이 하시잖아요. 전문적인 것이 대중성과 결합돼서 활동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고요. 평통사를 모르면 안되지요. #평통사가 평화협정 운동을 앞으로 어떻게 벌여나갔으면 좋을지.. 이제까지의 통일운동이라는 것이 남한 사회에서 쉽지 않은 운동이었고 상당한 결심이 필요한 운동영역이었다고 보는데요. 평화협정운동도 촛불시위처럼 일상적이고 내문제로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편하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그래서 부담없이 자기 생활이 되는 운동이었으면 합니다. 평통사가 그런 부분의 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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