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동기는 단순했다. 일상 업무를 핑계로 미루다 5월 하순에 접어들어서야 뒤늦게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 현장에 나가기 시작한 필자는 그날도 어김없이 6mm캠코더를 들고 있었다. 습관처럼 녹화 버튼을 누르던 필자는 이상하리만치 현장의 시민들보다 정보력에서 뒤쳐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에 비해 꽤 컴퓨터나 인터넷에 밝다고 자부하던 필자로선 아프리카나 아고라란 생소한 단어에 당황했고, 그렇지만 자존심이 구겨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는 체하고 집으로 돌아와 www.africa.com을 치게 되면서 두 번째 당황하게 된다. 아프리카가 africa가 아니라 afreeca란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또 당황하게 된다. 세 번째 당황함은 두 번의 당황함과는 약간 다르지만 그곳엔, 수천만의 중계료와 수억원대의 장비를 갖고 행하던 생방송 중계가 노트북 한 대와 와이브로 수신기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생방송 중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황함이라 표현하긴 뭐하지만... 어쨌든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우주를 탐험하는 우주과학자라도 된 양 떨리는 손으로 그들이 말하는 ‘방송놀이’를 시도해본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내가 2만 4천 번째 쯤이었다. 평소에 의료 봉사단으로 현장에 나가 일하는 매제의 모습을 보고 뭔가 할 게 없을까 하고 고민해오던 필자로서는 드디어 촛불에 봉사할 기회가 왔구나 하는 생각에 장비를 챙겨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거였다...엿장수 TV를....
이름은 엿장수 TV로 정하기로 했다. 다른 BJ(브로드캐스팅 기자 : 개인방송기자)들은 노트북과 카메라를 두 명이 각기 나눠들고 다니거나 때론 리포터까지 총 세 명이서 다니곤 하는데 1인 미디어의 뜻을 기왕이면 제대로 살려보고자 혼자 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손이 모자라 카메라는 노트북에 달린 웹캠으로 처리 하고 노트북을 열어 모니터를 보며 방송했다. 그러다 보니 영락없이 예전 엿장수가 엿 팔 때 모습그대로였다. 그래서 엿장수 TV라고 명명했다. 엿장수 맘대로 방송하자 해서 엿장수 TV인 중의적인 의미도 있다. 재미로 시작했지만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방송을 하거나 시청을 하면 채팅창을 열 수 있다. 그러면 적극적인 유저 또는 시청자는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한다. 대부분의 BJ들은 채팅창에 별로 반응을 안한다. 현장 중계만 한다. 적어도 촛불 집회를 중계하는 BJ들은 그렇다. 그러나 엿장수 TV는 반응하고 대답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시청자들의 요구도 많다. 아셈 장관 회의 할 때인가? 큰 맘 먹고 무역센터 집회 현장으로 갔다. ‘큰 맘 먹고’라 함은 왠지 ‘강남’이란 지역적인 낯설음과, 외국 장관들에게 우리의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전견(전경犬)들의 저항이 심할 것 같은 두려움이 적절히 섞였기 때문이다. 집회를 하던 시민들이 강남역 쪽으로 행진을 결정하자, 자전거까지 몰고 와 안그래도 손이 없는 필자로선 남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여지없이 강남역 쪽을 취재해 달라고 주문했고, ‘달려가는 서비스, 엿장수 TV’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강남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날 결국 최대 220명의 시청자가 들어와 5,100등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촛불이 진화하다 보니 갈 곳도 많아지고 정보력도 많이 필요하게 됐다. 촛불에만 많은 BJ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때론 한데 몰리기도 하고 각자 알아서 현장에서 취재하거나 중계하기도 한다. 엿장수 TV도 다른 BJ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고자 둘러보다가 KBS 앞 공영방송 수호 집회를 가봤다. 좀 늦게 갔지만 지난번 강남역에 나갔을 때처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줬다. 곧바로 올라오는 시청자의 수는 나 같은 BJ들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실망시키기도 한다.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아무튼 엿장수TV는 될 수 있는 대로 남이 가지 않는 곳, 남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은 가끔 무섭기도 하다. 연행 되거나 몽둥이로 얻어맞는 것 보다, 4년 된 중고지만 소중한 노트북과 카메라가 물대포에 침수되는 게 더 두려운 탓이다. 물대포가 아니라도 자판에 뽀얗게 쌓인 소화분말 가루나, 모니터에 튀긴 물방울을 쓸어내릴 땐 내 가슴도 함께 쓸어내리곤 했다. 그래서 사실 꾀도 좀 부린다. 노트북의 배터리는 2시간을 넘기기 힘들다. 여분 배터리가 워낙 비싼데 짝퉁 배터리라도 구입하지 않는 이유는 배터리가 다하면 충전을 핑계로 근처 호프집이나 식당 등에서 충전하며 물대포의 위협을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안해 얼마 전 문방구에서 비닐을 구입해 간이 레인커버(Rain cover)를 제작했다. 허접하지만... 그렇게 쉬다가 중계하다 또 쉬다가 중계하다 밤새운 날도 꽤 된다. 밤을 새워 중계하면 중간 중간에 쉬고 나온다 해도 12인치짜리 그 작은 노트북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말이다. 받쳐 든 새끼손가락은 어느 새부턴가 마디마디가 쑤시고 모니터를 내려 보느라 머리를 지탱하던 뒷목과 어깨는 바늘로 쑤셔대듯 아파온다.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진압이 무자비하게 진행됐단 소식이 들리면 아프고 힘든 것도 잊고 다시 나가게 된다. 재미로 시작한 ‘방송 놀이’! 힘들고 꾀가 나고 무섭고 귀찮아도 내려 놓을 수가 없다. 받쳐든 새끼 손가락이 부러지고, 뒷목과 어깨 통증이 온 몸을 짓누를 지라도, 노트북이 물대포에 침수될 지라도, 촛불 민심을 거스르고 소통을 거부하는 정부가 있는 한, 그래서 평화롭게 표현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억누르려는 경찰이 있는 한, 엿장수 TV는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고 역사의 아픔에 함께 나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