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진정 크신 분 전농 광주전남도연맹 기원주 의장님을 만나

[사람]


△ 멜가트 어린이

 핸드폰이 잠시만 없어도 허전하고 불안한 요즘,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하루쯤 묵는 건 어떨까?

 멜가트 지역은 마하라 스트라주(州)와 마드야 프레데시주(州) 경계 지역에 위치한 광활한 산림지역이다. 그 곳엔 약 350개 정도의 크고 작은 마을에 약 10만여명의 코크루(통칭 멜가트 지역에 사는 부족을 말함) 부족이 살고 있다. 인도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지만 주 경계 지역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양쪽의 혜택이나 보호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형편이다. 또 우기 때는 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많이 와 길이 끊기기 일쑤고 건기 때는 우물을 찾아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물 길러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의료 복지로부터 소외되어 가까운 보건소급 병원만 해도 50킬로미터, 제대로 된 병원은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6세 미만의 영아 사망률이 20%가까이에 이르고 기초교육도 받지 못해 빈곤을 대물림 하고 있다.
그런 척박한 땅에 간다.
거기선 핸드폰이 없어서 연락 못하는 건 걱정 축에도 못 낄 것이다. 씻는 건 고사하고 먹는 것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잠잘 때 엄청 춥다는데…


△ 그날의 점심

 어쨌든, ‘실제로 겪으면 안 해도 될 걱정’들을 뒤로 한 채 10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찾은 멜가트의 첫인상은 ‘평화’ 그 자체였다.
밥짓는 연기가 석양을 넘실넘실 가리는 풍경은 우리 농촌의 저녁 풍경과 너무 흡사했고 더러운 옷을 입고 코가 질질 흐르지만 평화롭기 그지 없는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의, 수줍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환영 인사는 척박하고 소외된 곳이라는 선입관을 삽시간에 뒤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곧 어두움이 찾아와, 인생에 몇 번 겪어보지 못할 ‘전기 없는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역시, ‘걱정은 걱정일 뿐, 호롱불과 별빛 만으로도 네온사인이 부럽지 않은 밤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왜 예전에 미처 몰랐을까?
달빛을 마시고 별빛에 취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자다 이른 아침 소몰이 나가는 목동들 소리에 깨어 아침 일정을 시작한다.
우리가 보기엔 어디나 다 원시부족 마을인데 우리가 묶고 있는 마을은 그나마 ‘입구 마을(아무도 이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쓰며 이름이 필요해졌다)’이라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우물도 있고, 의사는 없지만 의사가 오면 들를 수 있는 다섯 평 짜리 보건소에, 선생은 없지만 교장 겸 선생은 있는 학교 등, 멜가트에선 그래도 이 마을이 압구정동쯤 되나 보다. 그런데 더 깊숙이 들어간단다.
입구 마을에서 더 깊숙이, 안쪽 마을로 들어가 점심도 같이 먹고 문화행사(?)도 즐기며 반나절 조금 넘게 있다가 온단다. 그래서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린지 한시간 남짓… 또 다른 평화와 만난다.
‘안쪽 마을’엔 ‘입구 마을’ 사람들 보다 더 순수하고, 때가 타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가 그들의 노래와 춤으로 우릴 반긴다.
그들이 준비하는 점심은 우리가 미리 약속한 돈으로 마련된 것인데 우린 여행 경비에서 조금 조금씩 모은 돈이다. 우리가 모은 돈은 얼마 안 되는 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돈으로 이 많은 사람의 배를 채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성서에 나오는 ‘오병이어(예수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기적)’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인도라 하여도 낙푸르나 와로라 같은 지역만 해도 문명(?)지역인지라 수저를 지참하지 않아도 어디선가 원하기만 하면 수저를 얻을 수 있었지만 10시간 넘게 차 타고 달려온 고원지대의 멜가트에선 어림도 없었다.
몇 번, 손으로 밥을 먹어본 필자도 커다란 잎사귀 그릇에 얹혀진 밥에 ‘달’이란 콩비지 같은 소스를 얹어 주는 이 식사를, 흘리지 않고 먹기란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밥 먹기 전, 먼지 묻은 손 씻을 물은 물론이고, 국물과 밥풀로 범벅이 된 손 씻을 물도 없기 때문에 남몰래 바지에 쓱 닦고 시치미를 떼고 있어야만 했다.
배는 고프지만 한국에서처럼 왕창 먹고 싶은 생각은 별로 안 생겼다. 더위 먹은 탓인지 아니면 손으로 먹는 것이 서툴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필자와는 대조적으로, 어떤 36개월이 됐을까 말까 한 어린 아이가 커다란 냄비 크기의 그릇에 밥과 ‘달’을 가득 담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너무 놀랐는데 그 아이 만이 아니었다. 많은 아이들이 들고 있는 밥 그릇 부피며 밥의 양이며 아이들 각자 머리의 두 배 이상씩은 되어 보였다. 알고 보니 이들은 ‘언제 먹을 것을 먹을지 모르니 있을 때 먹어 둔다는 것’이다. 이럴 땐 공연히, 조금이나마 가진 게 부끄러웠고 그걸 나누지 못한 게 부끄럽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부끄럽기만 하면 뭐하나?뭘 보아도, 가져도 내가 가진 것이 더 많은 것 같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평화로움은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맞바꾼다 해도 못 바꿀런지도 모른다.


△ 악기로 흥을 돋구는 멜가트인들

 파헬 벨의 캐논 이후로 반복되는 멜로디가 지겹지 않았던 건 처음인 것 같다. 손으로 만든 타악기에 나무를 정교히 파 만든 듯한 피리,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직접 제작했는지 모를 오르간 같이 생긴 건반 악기… 악기 몇 개로 이뤄내는 음악은 어떤 오케스트라의 음악 보다 훌륭했다. 우린, 반복되지만 지겹지 않은 그들의 음악에 취해, 뜨거운 한낮의 태양 빛을 사이키 조명 삼아, 어울리지 않는 춤을 춘다.
춤과 음악을 통해 그들의 수줍음과 경계의 껍질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진정 알몸만 남은 순수의 눈망울, 내가 부러워하는 그 눈망울과 만나게 된다. 마음은 앞서는데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몸이 따라가지 못할 때 쯤, 이별을 고하고 ‘입구 마을’로 돌아온다. 이제 친구가 되어버린, 순수한 영혼들이 배웅 나와 손을 흔들어 준다.
그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
의사면 의사로서, 또는 교사면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물’이 더 절실하다. 같이 여행을 하는 일행들은 그들을 위해 우물을 세 군데 이상 파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물은, 빨래 하고 씻고, 갈증을 채우는 역할 이상이기 때문이다. ‘우물 파주기’가 비용과 제작기간, 관리 측면에서 번거럽다면 ‘빗물 담기’ 시설도 좋다. 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소개됐듯이 ‘빗물’은 의외로 효용가치가 높다. 비가 안 오는 곳이면 몰라도 우기 때엔 빗물이 많으니 그걸 적절히 보관해 놨다 쓰면 좋을 것이다. 어쨌든 뭔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것을 다 주고도 그들이 가진 것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진 자의 무기력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면 말이다.


△ 배웅나온 멜가트 마을사람들

 ‘평화 영성 순례 여행’은 ‘씨알 평화’란 평화, 영성을 추구하는 단체에서 10년째 계속해오는 ‘착한’여행으로 매년 1월초에 시작하여 보름 내지 17일간, 인도의 몸바이나 델리로부터 시작하여 간디 아쉬람(공동체), 비노바바베 아쉬람, 멜가트란 원시부족 마을, 꼴까타의 테레사 수녀가 만든 ‘마더 하우스’에서의 봉사 활동 등을 하는 여행이다. 필자는 그런 행적들을 비디오로 찍어와 현재 편집 중이며 글로서는 지지난 호에 인도의 기차여행 얘기를 썼고 지난 호엔 바라나시와 아쉬람(공동체)소개를 했다. 이번 호엔 마지막으로 멜가트 족 소개를 한다.

→ 관련글 : [문화] '인도의 이름' 그 혼란스러움에 대하여...

→ 관련글 : [문화] 인도에서의 열차여행이란 '바쁘게 사느라 쫓아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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