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위성 시험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비난성명과 제재,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단행된 2차 북 핵실험에 대해 미국이 또 다시 제재에 나섬으로써 북미 대결이 전면화 되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권이 대북 강경여론몰이에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되었다. 북핵문제에 대한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외교’를 내세운 오바마 정권의 등장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애초의 전망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미 사이의 힘겨루기, 오바마 정권의 대북 정책, 미중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역학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격렬한 북미 대결의 대화국면으로 전환은 필연이며,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전망 역시 밝다고 할 것이다. 오바마, 부시를 닮아가나? 현재까지 오바마 정권의 대북 행보로 볼 때 ‘변화’를 내걸고 당선된 오바마 정권 역시 냉전의 산물인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미군 철수를 단행할 의향이 전혀 없어 보인다. 또 오바마 정권은 ‘선(先)핵 폐기, 후(後) 관계정상화’라는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을 폐기하지 않았으며, 주권국가의 권리인 북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서도 제재와 압박으로 응대하였다. 또 6월 16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을 채택함으로써 한미동맹의 확대·강화에 나섰다. 이처럼 오바마는 미군 주둔과 한미동맹 강화를 기축으로 대북, 대 동북아 패권을 추구하는 점에서 부시 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부시 정권이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일방주의를 대북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대북 압박을 가했다면, 오바마 정권은 하드 파워(군사력)와 소프트 파워(외교, 경제력 등)를 결합한 '스마트 파워', ‘다자주의’라는 외교정책기조에 의거하여, 북핵 문제 해결에서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고 있으며, 북과 첨예한 대결을 벌이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비핵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또 부시 정권이 2001년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서 핵 선제공격전략을 채택하고 북을 선제 핵공격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개념계획 8022 및 이와 연동된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26, 5027, 5029와 같은 핵 선제공격계획을 수립했다면, 오바마 정권은 ‘핵 없는 세계’를 지향하면서 러시아와 핵군축협상을 시작했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강화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비준하겠다고 공약하고 이스라엘의 NPT가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오바마 정권의 핵정책은 동북아에서는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정상차원에서 재확인하는 등 이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은 오바마 행정부 내 대북 강경파, 현상유지론자, 이명박 정권의 대북 강경여론몰이에 떠밀린 결과라는 점에서 오바마 정권의 대북 정책은 부시 정권 1기의 대북 정책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북이 강공책을 구사하는 배경과 의도는? 우선 북이 강공책을 구사하는 배경에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파탄 난 6자회담이 있다. 날카롭게 펼쳐지고 있는 현재의 북미 대결이 6자회담에서의 북미 대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뜻이다. 부시 정권의 6자회담에 대한 정책목표는 북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북미 관계 정상화 및 식량과 에너지 지원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 특히 주한미군 철수와 동맹파기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돼야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9·19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와 비핵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에너지 지원을 연동해서 행동 대 행동의 원칙하에 해결하도록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유 지원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합의되지 않은 북핵(신고)에 대한 ‘검증’문제를 내세움으로써 3단계(핵 폐기 단계)로의 진전을 가로 막았다. 6자회담의 추동력이 다하기 직전인 2008년 10월 1~3일까지의, 힐의 방북 보따리에는 핵 폐기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 즉 동맹 파기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답이 없었고, 북으로서도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에 대한 아무런 담보 없이 ‘핵 폐기’ 단계로 진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북은 힐 차관보에게 미국이 갑자기 ‘검증’문제를 꺼낸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대선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미국의 사정을 고려하여 6자회담을 지속시키고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 등을 통한 북미 적대관계청산을 위한 ‘대담하고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6자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오마바가 대북 정책 검토를 채 마치기도 전에 북이 강공책을 구사함으로써 현재의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위기의 징후는 북미 쌍방 간 물밑 탐색전이 끝난 시점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으로부터 야기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08년 11월 7일, 북의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이 뉴욕을 방문하여 오바마 측 인사들을 만난데 이어, 2009년 1월에는 셀리그 해리슨이 방북해서 리근 국장을 면담했다고 한다. 올 2월 3~7일에는 보즈워스(대북 정책 특별대표)도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하여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인민군 관계자들과 10여 회에 가까운 회담을 벌였다. 특히 보즈워스와 동행했던 모턴 아브라모위츠(전 국무부 차관보)가 “김계관 부상 등 북측 관리들이 핵무기 포기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 △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거 △ 한미동맹 파기를 제시했다”고 밝힌 것은 현 북미대결의 핵심 축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북의 제안을 거절(?)하고} 외교관계 정상화, 종전선언 수준의 평화협정 체결, 경제적 지원 제공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1월에 방북했던 셀리그 해리슨이 한 말이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셀리그 해리슨은 “북이 핵 폐기에 합의하고 30kg의 플루토늄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하는 대신,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 식량과 에너지 지원 등 북미 외교 경제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북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으로서는 미국의 제안 내용이 대북 적대정책을 뒷받침하는 물리력인 미군과 동맹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포함하지 않은 채 북핵 폐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방한할 때 김정일 위원장 건강문제와 후계문제를 거론하며 대북 압박을 가한데 이어 키리졸브 독수리 연습까지 강행하자 북은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 위해 위성 발사, 2차 북핵 실험, 우라늄 농축 선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예고 등의 강공책으로 대미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북이 강공책을 구사하는 의도는 핵미사일 능력을 지렛대로 삼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서 핵심적 문제인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파기에 대한 미국의 결단을 압박하는데 있다고 할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북미 쌍방 간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 당장은 1994년 한반도 위기에 버금가는 대결국면이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격렬한 북미 대결이 대화국면으로 전환되는 것은 필연이며 중장기적 측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전망은 밝다고 하겠다. 대화국면으로 전환의 필연성은? 북의 공세에 대응하여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군사적 옵션 사용, 봉쇄정책 지속, 은근한 무시론(북핵 동결과 현상유지), 대화로 전환 등 대략 3~4가지라 할 수 있다. 전진과 후퇴, 대화와 대결을 반복하는 북미관계, 평화체제 수립 전망은? 대북 적대정책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문제는 멀리는 한국 전쟁이래 가깝게는 9·19 공동성명 이후의 북의 한결같은 요구였지만 이를 관철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의 보유라는 측면에서 그 전과 지금은 차이가 있다. 북은 1차, 2차 핵실험으로 핵 보유국임을, 4월 5일 위성발사로 미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을 내외에 과시했다. 북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보유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리고 있지만 북이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을 결합한,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대미 억지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는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의 핵미사일 능력은 완성될 것이므로 이를 지렛대로 한 대미 협상력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로 2000년 북미 공동꼬뮤니케를 이끌어내고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2·13 이행조치를 이끌어 냈다면, 이번 위성발사와 핵실험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에 대한 미국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냉전체제에 기초한 한반도 질서는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사실 변화는 이미 부시 정권 후반기부터 시작되었다. 2·13 합의에 앞서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협상에서는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한반도 평화협정 또는 종전선언을 채택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여 2·13 합의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전면적 내용에 합의했다고 한다. ‘신 데땅트’로 불리는 미중관계의 변화도 정세 전환을 촉진시킬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중관계의 개선은 한반도 냉전체제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실현된 미-중 데탕트가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와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면 당시보다 훨씬 강화된 중국의 입지와 추락한 미국의 지위를 고려할 때 미중관계의 변화는 한반도와 동북아 냉전체제를 근저에서부터 와해시켜 나갈 것이다. 또한 북이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하고 있고 오바마도 이란 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외교적 성과로 삼아 NPT회의와 2012년 대선에 임하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르면 2010년 NPT 회의를 전후로 늦어도 오바마 정권 후반기에 가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본격적으로 일정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 북미관계 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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