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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재해, 노동자에게 책임 떠넘기는 현중 자본

매월 초 현중자본은 노동자들의 안전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목 아래, 직영은 물론 하청노동자들까지 부서별로 집결시켜 놓고, 이른바 ‘안전결의대회’라는 캠페인을 실시해왔다. 통상 ‘안전결의대회’는 시업시간인 08시 정각에 시작해서, 스트레칭 체조 / 사고사례 교육을 포함한 부서장의 안전훈시 / 표준안전작업 지침교육 / 월별 안전 실천활동 우수 사원 및 팀(또는 협력업체)에 대한 포상 / 안전구호 제창 등의 순서로 약 40여 분간 진행된다. 캠페인의 주된 목표가 ‘안전’인 만큼, 회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안전 제일’을 우리 노동자들에게 강조, 아니 더 나아가서는 강요 수준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집요하게 펼쳐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그 어느 노동자도 죽음의 위협에 단 하루라도 노출되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데 누가 안전을 도모하기가 귀찮아서 잇따른 노동재해의 희생양이 되려 하겠는가? 그러나 회사의 입을 빌리자면, 그 모든 노동재해의 책임은 안전의식이 희박한 노동자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다고 한다. 마치 노동자 개개인이 세세한 안전규정까지 철처하게 준수하고, 기초질서 지키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현재와 같은 노동재해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우리 노동자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불감증‘에 걸린 노동자? 결국 노동재해는 노동자 개인의 책임??

이처럼 시스템의 문제를 일부러 외면하거나 은폐하면서, 사태를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자본의 전통적인 속임수 가운데 하나다. 현중을 비롯한 국내 조선업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노동재해는 개개인의 안전불감증을 탓하기에 앞서, 최근 일본, 중국 같은 조선강국과의 선박건조 수주경쟁에서 국내 업계들이 수위를 선점한 가운데, 대량 확보된 물량을 쳐 나가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공정을 단축시킨 현중자본에게 근본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주당 노동시간이 전세계에서 단연 으뜸이라는 ILO의 조사통계와 노동재해 사망율 또한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국내 조선업계가 올해 1분기 사상최대의 선박 수주량을 달성했다는 소식은 현중자본에게는 훈훈한 뉴스일진 몰라도, 죽어라 일만 하다가 정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환경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현중 노동자들은 그저 눈앞이 컴컴할 따름이다.
제아무리 노동자들이 한겨울에 살얼음판 건너듯 ‘안전’에 유념하더라도, 건조도크마다 빼곡히 들어차있는 선체블록들 사이로 아슬아슬 곡예 운전하는 지게차나 고소차, 크레인 따위의 중장비들은 지금도 도처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육체가 고된 노동으로 부서지고 닳는 동안에도, 끝도 없는 자본의 이윤욕 때문에 노동자들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음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업장이 아마도 이곳 현대중공업일 것이다. 해마다 20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현대중공업에서 죽어나가고 있지만, 사측에서는 사고발생에 대한 원인 규명은 물론, 작업환경 개선을 통한 재발방지 대책에 있어서도 한결같이 나몰라라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심지어 이런 일이 벌어진 경우도 있다. 선박을 건조하는 도크장에서 용접 일을 하는 故 차인태 동지(사내하청노동자)는 작년 10월 18일 오전 8시 15~20분경 자신의 오토바이로 작업장을 이동하던 중 후진하는 지게차에 깔려 현장에서 그대로 즉사했었다. 하지만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현중자본은 고인의 사고 발생 시각을 7시 58분경이라고 조작 발표하여, 시업 시간(오전 8시) 이전에 생긴 사고이므로 회사보다는 개인의 책임이 크다는 논리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파렴치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후에도 현중에서는 중대재해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사측은 세치 혀로 떠들어대는 ‘안전’ 구호만 요란할 뿐, 안전시설을 보완하는 등 기본적인 대책 강구조차도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안전한 일터를 위해 건강권 확보! 노동시간 단축!

결국 노동자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는 건강권을 확보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하며, 이를 쟁취하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얼마 전 현중 사내하청지회에서 제시한 단협요구안 중에는 노동시간에 관한 핵심조항으로 “강제적인 잔업 특근 금지” 및 “유급 휴일/ 휴가” 조항이 들어있다. 이 조항은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하청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스스로 지켜내는 한편, 숨막히는 현장통제와 부당노동행위를 막아 안전한 일터를 만들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사실은, 어용노조 김성호 집행부에서도 사측의 “안전결의대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노동조합 안전캠페인”을 역시 매월 초에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이렇게 캠페인 몇 번 치르거나, 안전의식을 끊임없이 다그친다고,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바보가 아니다.
더 이상 넋 놓고 당하는 일이 없으려면 직영, 하청을 막론하고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사측과 어용노조의 이같은 이데올로기 공세를 분쇄하고, 생산공정 단축과 노동강도 강화를 꾀하고 있는 현중자본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음을 폭로해내야만 할 것이다.

현장에서의 실천으로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되찾자!

안전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문제가 아니라, 진짜 문제는 무리한 공정단축과 그로부터 파생하는 노동강도 강화에 있음은 우리 현실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다. 사측이 내세우는 “생산 보다는 안전” “안전이 회사 경영의 최우선 방침”이라는 주장은 그저 립서비스 수준일 뿐, 실제로 작업 현장이 올들어 두드러지게 분주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현실은 전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다시금 깨우쳐준다.
사측의 파렴치한 거짓말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자! 이제부터라도 현장의 힘으로 조기출근, 체조, 현장조회, 호선 승하선 통제 등 실질 노동시간을 가중시키는 모든 현장통제 수단들을 거부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할 수 있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조직해나가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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