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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충격’ - 이른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도래


지난 5월 8일, 2005년 합계출산율이 1.08명이라는 통계청의 발표가 나왔다. 임신을 할 수 있는 여성이 평균 1.08명을 출산했다는, 즉 쉽게 말해서 요즘은 2명이 결혼을 해서 1명을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알뜰살뜰’이라는 표어가 옛말이 된 지가 이미 오래다.
늙어가는 사람들 숫자만큼 새로 아이가 태어나질 않으니 자연스럽게 노인인구가 많아지고 사회는 고령화된다. 통계청 인구추계자료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425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8.7%를 차지하며 2010년에는 500만여 명, 9.9%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노인인구비율은 많아지는, 이른바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찾아온 것이다. 언론은 저출산 현상을 ‘출산파업’이라 묘사하며 이를 여성의 책임으로 은근히 돌리고 있으며, 정부는 양대노총과 자본가 단체, 종교단체 등을 포괄하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를 만들어 이를 ‘사회적 합의’의 틀 내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는 노동계급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일단 고령화는 저출산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친다면,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아이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그만큼 돈이 엄청나게 들기 때문이다. 교육비 하나만 보더라도, 수도권 과외알선업체를 기준으로 보면 두세 과목만 사교육을 시켜도 한 달에 100만원은 가볍게 깨진다. 실제로 전체의 5%에 불과한 강남 출신 학생들이 서울대 합격생의 12%를 넘는다. 이는 부모의 소득이 자식의 학력을 결정짓는 단적인 예다. 게다가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보내 봤자 한 학기에 5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노동자의 임금으로 감당하기는 너무나도 힘들다.
결국 노동자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도 감히(!) 함부로 낳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는 실제로 아이를 낳는 위치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감안해 보면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04년 연구에 따르면,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 비정규직 임금수준은 36.9, 여성 정규직은 66.7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성별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 45.3%, 여성 69.5%로 여성이 훨씬 높았다.
이렇듯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는, 아니 출산을 감히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 중 ‘교육비 등 양육비 부담, 소득·고용 불안, 일·가정 양립 곤란’ 등의 이유들이 제시되지만 결국은 교육비 등 양육비 부담 때문에 소득·고용이 불안하니 일·가정 양립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저출산 문제는 노동자들의 임금, 특히 여성노동에 대한 자본의 압박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일 뿐인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협약, 사회적 합의주의의 모범(?)을 보여주다.

애초에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정부가 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자본이 육아와 노인 부양을 위해 충분한 임금을 보장함으로써 해결했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라는 것을 만든 발상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노동계와 각종 시민단체나 종교계 등까지 끌어들여서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나쁜 조건에 처하게 된다.
지난 6월 20일에 체결된 <저출산 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에는 고령자의 고용 확대를 위해 ‘임금체계 개편과 연동된 정년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 나오는 임금체계 개편이 무엇이겠는가? 결국은 나이 많은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기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민주노총은 순진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이게 임금피크제 도입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정년제도와 연관되어 임금체계를 도대체 어떻게 개편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비록 그다지 실행 가능성 없는 협약에 불과하긴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과 이를 체결한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야말로 사회적 합의라는 틀 안에서 노동운동 상층관료들이 어떻게 노동대중들의 노동조건들을 후퇴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자본과 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현재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그야말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자본과 정부 입장에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심각하게 걱정스러운 일이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라 함은 결국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이 아이를 적게 낳고 점점 나이를 먹는다는 뜻인데, 이렇게 되면 값싸게 부려먹기 좋고 젊은 노동자들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저들의 의견을 그대로 옮기자면,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면 노동의 질이 낮아지고 내수시장이 부족해지며 노인 부양으로 인해 정부 지출이 많아져 결국은 경제가 파탄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저출산 고령화 현상의 원인은 노동계급의 생활조건 압박에 있으며 이 현상의 해결방안 역시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에 달려 있다. 재벌들처럼 자식을 예닐곱씩 낳은 후 회사를 하나씩 물려주는 짓까지는 못하더라도 돈 걱정하지 않고 키울 수만 있다면 출산율 1.08이라는 극단적인 저출산 현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설사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젊은 노동자들의 수가 부족해진다 치더라도, 그만큼 노동자들이 충분한 임금을 보장받으며 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노후를 위해 충분한 만큼의 돈을 모아둘 수 있다면, 내수시장 부족이나 노인 부양비용 등은 전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충분한 수의 실업자들을 확보하지 못하게 될 자본과 노동인구 관리에 실패하게 될 정부의 입장에서만 그야말로 재앙일 뿐, 노동계급의 사활이 달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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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 저출산 고령화 , 사회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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