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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 완성’이라는 형식에 휘둘리지 말자

대공장의 투쟁력을 극대화하여 전체 금속노동자의 상향평준화를!

“덩치 크다고 매일 파업? 노사관계 되레 더 안정”. 완성차 4사를 비롯한 “대공장노조 산별화 이끈” 전재환 금속연맹 위원장이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 핵심 메시지이다. 산별전환으로 마치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자본과 보수언론이 난리 호들갑을 떨자 서둘러 ‘안심시키기’에 나선 것인가.

전재환 위원장은 한겨레신문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같은 노사관계 안정을 추구하는 세력이 재빨리 설치해준 스피커를 통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토록 목숨 걸다시피 올인 한 산별전환이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것이었나? 노사관계 로드맵 등 현 시기 자본의 공격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관계 안정이라니? 코앞에 걸린 로드맵과 비정규직 개악안 같은 첨예한 현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지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노사관계 안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인터뷰 내용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긴장이 없는 산별’로 무엇을 하려는지 도무지 앞이 안 보인다.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산별?

산별전환을 계기로 자본과 보수언론은 “파업으로 날샐라”, “파업 반복, 사업장 밖 동원 투쟁 등으로 산업 현장이 쑥대밭이 될 것”이라면서 발 빠르게 산별노조 길들이기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과 언론이 시키는 반대로만 하면 된다! 산별전환 총투표를 앞두고 지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우리는 반대로만 하면 된다. 노사관계 안정이 아니라 ‘파업으로 날새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노조 무력화를 겨냥한 로드맵이 폐기될 때까지 매일이라도 파업을 해야 한다. 96-97 노개투 총파업 때처럼 현자, 기아 등 대공장이 총대매고 무기한 파업으로 날을 지새지 못한다면 이 지긋지긋하게 계속되는 자본의 공세를 잠재울 수 없다. “파업 반복, 사업장 밖 동원 투쟁”을 통해 자본의 공격을 분쇄하고 고용과 생존권, 파업권을 사수하자.

우리는 <현장노동자> 7호에서 대공장 파업을 최소화하고 단위사업장 현장투쟁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금의 산별전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 기조의 산별이라면 현 시기 자본의 공격에 길을 훤히 터주는 위험천만한 결과가 빤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귀족노조 공세 - 노사관계 로드맵 - ‘사회 양극화 해소’/ ‘임금격차 해소’ 논리를 앞세운 하향평준화 공세 등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봤을 때 현 시기 자본의 공세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가. 대공장 조직노동자운동이 타겟이라는 것은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총구는 대공장 조직노동자에게 정조준 되어 있다. 대공장에 남아 있는 현장권력의 요소들을 박멸하고 노조를 식물화 하여 정규직 고용의 ‘경직성’을 마침내 깨뜨리겠다는 것, 여기에 장애가 되는 일체의 저항 요인을 제거하는 것, 이것이 지금 각종 공세를 통해 자본이 그토록 집요하게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별교섭의 정착을 통해 노사관계 안정을 추구한다니? 그것도 대공장이 총대를 매고 총파업에 앞장 서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대공장의 파업 부담을 줄여주는 산별노조’를 조합원들에게 선전하면서 말이다. 산별전환 통과 후에 현자노조 박유기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파업 양상도 달라진다. 굳이 현대차 라인을 끊지 않아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서열 되는 공장을 하루이틀 세우면 현대차 생산 자체가 중단된다.” ‘파업 부담’을 중소공장에 떠넘기는 산별노조라면 현 시기 자본의 공격 앞에서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것밖에 없다. 그런 산별 정신이라면 볼짱 다 본 것이다.

산별전환은 ‘대공장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

우리는 지금 상급단체와 대공장노조의 지도부들이 추진하고 있는 산별의 정신이 보수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투쟁의 강화’가 아니라 ‘교섭의 안착’에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한다. 이는 당면 정세 대응에서나 중장기적인 노동운동 전략에서나 모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우선, 당면한 자본의 공세에 대해 산별 추진 지도부들은 투쟁에 의한 돌파가 아니라 산별을 통해 피해 가겠다는 모습이 역력하다. 현 시기 대공장 조직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결코 산별전환으로 피해 갈 수 없다. ‘대공장 귀족노동자’ 공세, 그리고 ‘사회 양극화 해소’ 공세는 오직 대공장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중소공장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대공장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것으로 돌파해야 한다. 하향평준화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 내부격차 해소’ 문제를 산별교섭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반쯤은 하향평준화를 용인하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자본이 ‘귀족노조’ 공세를 통해 노린 것이 아닌가. 산별전환이 가결된 후 민주노동당은 “산별전환은 대공장노조의 기득권 포기 용단”이라고 하여 환영 성명을 냈다. ‘대공장의 기득권 포기’라? 하향평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별전환의 실제 의미가 계급적 단결을 통한 강력한 투쟁의 선포가 아니라, 귀족노동자/ 양극화 해소 공세에 굴복한 ‘대공장의 기득권 포기/ 대기업노조의 양보’로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노동자 내부격차 해소’를 위해 대기업노조의 양보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인터뷰 질문에 대해 지도부들은 명확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먼저 사측의 자세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답변하고 있다. 이 얘기는 대기업 사측이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자세 전환을 한다면 노조도 임금 양보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 아닌가.

산별 추진 지도부들이 현재 내놓고 ‘포기와 양보’를 선언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기업별 투쟁의 폐해’ 운운하면서 대공장 단위사업장 투쟁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악선전을 해 온 그 동안의 산별 선전 논리로 볼 때 산별 체제 하에서 <대공장 투쟁의 억제/ 하향화 → 전체 금속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라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현자노조가 산별전환 총회를 앞두고 발행한 조합원 홍보용 소책자 <<가자! 산별노조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홍보 문구를 보라.

“현자노조의 요구안 쟁취투쟁[즉 단위사업장의 투쟁]은 사측과 보수언론에 의해 배부른 노동자의 투쟁으로 왜곡된다. 그래서 국민들도 자신들과 무관한 내용으로 벌이는 투쟁으로 여겨 관심이 없고, 따라서 보수언론에 오히려 공감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산별노조의 요구안 쟁취투쟁은 국민들을 위한 무상교육, 무상의료 쟁취 등 사회보장제도를 실현하는 투쟁이므로 국민들도 적극 지지할 것이다.”

대공장 단위사업장 투쟁이 자본과 언론에 의해 “배부른 노동자의 투쟁으로 왜곡”되는 상황을 사실상 인정하고 산별로 피해 가자는 것으로밖에 달리 읽히지 않는다.

대공장에 대한 자본의 공세, 산별로 피해 가겠다는 것인가?

이런 산별 정신이라면 산별노조 하에서 단위사업장 투쟁이 어떻게 강화될 수 있겠는가? 대공장 조직노동자운동의 해체를 겨냥하고 있는 현 시기 자본의 공세를 이래 가지고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오히려 억제되고 약화되고 전반적으로 투쟁의 하향평준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게 너무 빤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안 그래도 산별 중앙으로의 권한 집중으로 인해 현장공동화가 야기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단위사업장 투쟁을 바람직하지 않은 투쟁, 헛발질에 불과한 투쟁으로 여기는 기풍까지 만연한다면 투쟁은 끝나는 것이다. 자본은 대공장 현장에 무혈입성 하여 현장을 초토화시킬 것이고, 노동자의 생존권은 벼랑 끝에서 이제 벼랑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이런 상황을 막고자 한다면 산별 완성이라는 형식 논리에 구애받지 말고 대공장의 투쟁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진로를 개척해야 한다. 단위사업장 현장투쟁을 강화하여 현장권력을 일으켜 세우고 단위사업장 노동조합 조직을 현장투쟁기관으로 재편해야 한다.

또한 단위사업장에 교섭권과 쟁의권, 체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중 교섭, 이중 쟁의를 넘어 삼중, 사중이라도 투쟁할 사안이 있으면, 현장의 현안이 생기면 언제든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방향에 대해 “그러면 산별노조 하지 말자는 거냐”라는 산별론자들의 힐난을 듣는다 해도 어쩔 수없다. 누굴 위한 산별인가? 자본의 공격을 막아내고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을 위한 산별인가, 산별 그 자체를 위한 산별인가? 기업별 노조냐 산별노조냐 하는 형식 문제가 아니라 산별전환을 통해 지금 추진하는 운동의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사민주의적 사회복지 모델이라는 신기루

당면 정세 차원에서 이와 같은 ‘포기와 양보’를 통한 대공장의 하향평준화를 유도하고 있는 산별 기조는 어디서 비롯하는 것인가? 이는 중장기적인 차원의 전략, 즉 산별 추진 지도부들이 구상하고 있는 사민주의적인 노동운동 발전 전망으로 인한 것이다. 독일 또는 스웨덴식 사회보장/ 노사관계 모델을 산별노조 운동을 통해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2차대전 후에서 70년대까지 장기호황이 지속되던 시기에 서구의 사민주의 정당과 산별노조가 소위 케인스주의 모델에 따른 산별협약과 사회적 협약을 통해 고용과 사회복지를 가져오는 그림을 지금 여기서 실현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독일이나 스웨덴 등 서구의 산별노조가 이를 위해 자국 자본주의 경쟁력 강화에 적극 협력하고 철저하게 관료화되어 노사협조주의를 체질화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말자. 서유럽 장기호황이 끝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몰아치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서 사회복지는 누적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나아가 사민주의 정당 자신들이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별노조 또한 뿌리 깊은 노사협조주의로 이러한 공세 앞에서 저항다운 저항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단위사업장 차원의 현장투쟁을 봉쇄하는 관료적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에 풍미했던 사민주의/ 산별노조 체제를 통한 사회적 합의/ 사회협약 모델은 자본주의 위기/ 국제적 자본 간 무한 경쟁으로 인한 신자유주의 광풍 앞에서 철저히 깨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시기 남한에서 사민주의적 사회복지 모델을 추구하고 있는 산별론자들의 노동운동 발전 전망은 신기루를 좇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렇듯 신기루를 좇다보니 당면한 자본의 공격을 비껴가려 하고, 투쟁보다는 교섭으로 풀려고 하면서 노동운동을 더욱더 수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지들, 산별전환으로 이러한 흐름이 대세가 되는 것을 눈 빤히 뜨고 지켜볼 것인가. 현장활동가들은 위에서 언급한 단위사업장 차원의 현장투쟁을 강화하고 현장권력을 일으켜 세우는 것과 함께 계급 대 계급 반자본 투쟁에 입각한 사회발전/ 노동운동 전략을 가지고 전면적인 토론을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는 <현장노동자> 다음 호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이러한 전략 논의를 위한 토론 자료를 제출하고 동지들과 토론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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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 , 전재환 , 박유기 , 대공장 , 산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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