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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 동지, 함께 줄넘기 하지 않으시렵니까?

7월 12일. 비가 추적추적, 아니 억수같이 내리는 아침이었다. 이러다 오늘 투쟁 못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전날 한미 FTA 저지투쟁 전야제 이후 동국대 근처에서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다가 들어와서, 솔직히 투쟁이 미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날 투쟁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장투사업장 노동자들, 동아일보사 옥상을 점거하다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게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역 안에서는 꽤 많은 학생들이 FTA 선전전을 활기차게 진행하고 있었다. 선전전 끝나고 이 동지들이 장투사업장 집회에도 결합해 줬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상상(결국 사실이 되긴 했지만)을 하면서 동아일보사 앞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동지들이 모여 있었다. 곧이어 구속을 결의한 장투사업장 동지들이 옥상을 점거하기 위해 재빨리 건물 안으로 진입했고, 얼마 안 되어 전경들이 몰려와 문을 열지 못하게 막는 대오와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연행자들이 발생했으며 얼마 안 되어 경찰은 대오를 지하철역 출구 계단으로 몰아냈다. 지하철역에서 선전전을 하던 NL 계열로 보이는 학생 동지들이 긴박한 상황을 보고 즉석에서 결합했고, 급히 연락을 받은 동지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연맹 차원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에 관료들의 책망 섞인 불평만이 돌아왔다.

몇 시간 후 결국 경찰은 입구 안팎을 모두 봉쇄한 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연행 시도했고, 100여 명의 동지들이 연행되었다. 옥상에 있던 대오는 다행히도 FTA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지만 이 투쟁에 참여한 동지들이 받은 상처, 적이 아닌 ‘동지’로부터 받은 상처는 더욱 아프게 새겨져 있었다.

벼랑 끝에 몰린 동지들의 ‘발악’, 그러나……

나중에 들어서 안 것이지만, 애초에 이 투쟁은 매우 급박하게 결정된 전술이었다고 한다. 보안 문제도 있었고, 투쟁의 시기를 어느 때로 잡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FTA 투쟁 본판이 있는 12일 아침에 점거를 감행하였으며 버티기로 목표한 시간은 오후 4시까지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미 FTA 저지 범국민대회라는 거대한 투쟁이 이들을 엄호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굳이 광화문역 옆에 있는 동아일보사 건물 옥상을 점거한 것도 사실 그런 의도였다.

의도대로 FTA 투쟁 대오가 그 자리를 ‘지나가긴’ 했지만, 민주노총은 이 투쟁을 속된 말로 ‘쌩깠다’. 아니, 오히려 FTA 집회에서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발언 기회를 달라는 요구를 “이상한 사람이 와서 대오 정비를 하는데 방해하고 있다”면서 묵살했으며, 심지어 민주노총의 한 집행국 간부는 그 상황을 듣고 “거기(동아일보사 옥상) 왜 올라갔는데, 줄넘기하러 올라갔어?”라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망언을 하였다.

보고 되지 않은 투쟁이었다,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투쟁에 연맹 간부가 참가했다, 연맹체계를 무시하고 괜히 지역본부가 나선다……. 장투사업장 동지들의 투쟁을 오히려 근엄하게 질타하는 관료들의 모습은, 본래는 자신들이 이끌어야 했을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자신들의 통제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관료적 거부감,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계급적 행태로 인해 구속까지 결의하고 선도적 투쟁을 감행한 장투사업장 노동자들은 적이 아닌 동지들에게 배신당했다.

조준호 동지, 우리 함께 줄넘기 할까요?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시킬 비정규직 개악안 통과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정규직 노조의 투쟁력마저 뿌리째 뽑게 될 노사관계 로드맵을 어떻게 폐기시킬 것인가? 한미 FTA를 통해 가속화될 현장 구조조정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지난 12일의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의 투쟁에 바로 그 정답의 씨앗이 있다. 그/녀들이 ‘바보같이’ 비 오는 날 건물 옥상에서 줄넘기나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다. 관료들이 아무리 비아냥거려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외롭게 ‘줄넘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줄넘기들을 더욱 큰 흐름으로 모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노동계급은 기나긴 자본의 공세에 대해 반격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오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지난번처럼 동지들의 연대를 바라면서 뭐라도 해 보려고 발악하다가 배신당할 것도 없이, 당당하게 먼저 제안할 것이다. “조준호 동지, 함께 줄넘기 하지 않으시렵니까?”

사족 - 그냥 들었던 잡생각

연행되었던 동지들이 조서를 쓰지 않고도 훈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FTA 투쟁 때문에 그 날 연행된 사람들을 웬만하면 인적사항만 확인하고 훈방시키라는 검찰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우리의 적인 공권력마저 동아일보 앞에 모인 대오를 FTA 저지 시위 대오로 취급해 줬는데, 왜 민주노총은 그러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운 궁금증이 들었다.

김기찬 (학사정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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