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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 만능주의자에게 묻는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4사가 산별 전환투표에서 가결되었습니다. <현장노동자>는 현 시기 산별전환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결 입장을 제출했습니다. 단지 투쟁으로 건설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당면 시기의 정세, 지배계급의 움직임, 비정규직노동자 동지들의 처절한 투쟁과 정규직 노조 및 활동가들의 외면이라는 현실, 산별전환을 통해 지도부들이 몰아가고자 하는 개량주의적인 운동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산별전환은 이뤄졌고 이제 산별노조 건설만이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현장노동자>는 산별건설에서 나타날 전략적, 전술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산별로 전환한 이상 계급투쟁에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긴박하게 제기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좋습니다. 박유기 현자노조 위원장도 좋고, 산별전환을 긴급히 호소했던 민주노동당 의원 동지도 좋습니다. 아니 산별건설에 온갖 열정을 쏟은 금속연맹 임원이나 임영일 교수도 괜찮습니다. 동지들의 동지애적인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질문1) <현장노동자> 8호에서 우리는 박유기 위원장이 “파업 양상도 달라진다. 굳이 현대차 라인을 끊지 않아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서열 되는 공장을 하루 이틀 세우면 현대차 생산 자체가 중단 된다”(매일노동뉴스 인터뷰)고 한 것에 대해, “파업부담을 중소공장에 떠넘기는 산별노조라면 현 시기 자본의 공격 앞에서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것밖에 없다. 그런 산별 정신이라면 볼 짱 다 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현장노동자>는 대공장노조의 산별전환을 추진하면서 파업을 줄일 수 있다는 지도부들의 선동에 대해 계급의식을 후퇴시키는 선동이라며 반대해 왔다.

동지들! 자동차 조립의 특성을 아는 모든 사람이라면 직서열 하청 부품사의 파업을 통해 현대차 라인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회사는 부품사에 대한 고과에서 부품업체의 문제로 현대차 라인이 서는 지를 가장 중요하게 반영하고 있다. 2003년 금속연맹은 부품사 고과 점수에 대해 공개하며 노조를 탄압하는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에 평점 0을 받은 사업장은 만도기계나 열사투쟁을 했던 세원테크 등이었다. 금속연맹의 동지들은 이를 잘 기억할 것이다. 따라서 회사는 부품사 파업으로 손실을 볼 경우 부품조달을 이원화한다. 이로 인해 세원테크는 물량이원화 공세에 맞서 싸우다 2명의 동지가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리고 작년에는 대덕사가 폐업됐다. 두 명의 열사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세원테크, 폐업된 대덕사는 현대차노조에게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싸워 줄 것을 요구하고 백방으로 투쟁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노조 파괴와 폐업이었다.

정확히 물어보겠습니다. 부품사 파업을 통해 현대차를 세우는 효과는 있겠지만 이에 따른 현대차노조의 투쟁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부품사 파업에 따른 문제, 즉 물량 이원화에 따른 노조 말살이나 폐업으로 인한 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현대차노조가 더 많이 투쟁하고 함께 해야 한다고 <현장노동자>는 판단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부품사 노조는 구조조정 당하거나 폐업된다. 우리는 전술을 구사할 때 자본과 정권이라는 적을 염두에 두고 한다. 그렇다면 대공장들의 파업은 늘어나야 하고 강화되어야 한다. 산별주의자들은 대공장 파업이 줄 것이라고 선동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2) <현장노동자>는 중소공장으로의 ‘파업부담 전가’는 파업에 대한 민주노조운동 정신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노동자의 학교’로서의 파업은 어느새 사라지고 교섭에 종속된 파업만 생각하고 있다. 노동해방으로 가는 가교로서의 파업은 잊혀진 채 실리만을 위한 교섭에 매몰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그 동안 10여 년이 지나면서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에서 후퇴해 단지 ‘일하지 않는 것’으로 변질된 것의 최종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 바랍니다.

질문3) 민주노조운동은 전노협을 제외하곤 교섭에 목매어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묵살한 역사이기도 했다. 민주노총 합법화, 전교조 합법화와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파업권 개악과 맞바꾼 1차 노사정위, 산별교섭을 위해 대병원의 단협을 후퇴시킨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이 대표적이다. 새롭게 건설될 금속노조도 산별교섭을 할 것이다. 지금 산별교섭의 핵심은 노동분절화를 막는 것, 쉽게 얘기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줄이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동일단협을 적용받는 것이라고 한다. 더 포괄적으로는 양극화 해소의 방안을 놓고 교섭하게 될 것이다.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생각해 보면 50% 정도의 임금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년 5% 차이를 줄인다 해도 10년간 적용되어야 하고, 매년 10%씩 줄인다 해도 5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몇 년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대공장 조합원들이 맞게 될 생존권의 후퇴이다. 이는 대공장의 임금인상을 동결하거나 인상률을 대폭 삭감하는 한편 중소사업장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일 임금인상률이나 동일 정액임금인상으론 차이를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차이 해소를 위해선 ‘대기업 억제, 중소기업 대폭 인상’은 기본일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도 대병원은 2%, 중소병원 5% 임금인상을 합의했으며 이에 대해 연대임금 정책의 괄목할 출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소위 좌파 계열의 몇몇 조직들에서 연대임금 정책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하향평준화를 가져오는 연대임금 정책에 대해 지금도 찬성하는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질문4) 연대임금 정책조차 자본과 정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노사정 교섭 혹은 노사간의 교섭을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양극화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지불능력이 천양지차인 상황에서 더욱 어려울 것이다. 중소기업의 급격한 생산성 향상이 전제되지 않은 채 급격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은 대거 중소기업의 파산으로 몰고 가 연대임금 정책을 파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연대임금 정책 자체가 산업과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 정책이었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철폐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생각이 없는 동지들은 자본과 함께 하는 연대임금 정책을 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스웨덴은 400인 이상의 870개 대기업에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다). 물론 동지들은 고용시장을 장악해 실업 없이 할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현 시기 가능한 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질문5) 설사 연대임금 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 해도 커다란 모순이 생깁니다. 임금동결내지 낮은 임금인상으로, 게다가 파업도 자제됨으로 인해 대기업의 초과이윤이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당장 대기업에서 매년 10% 정도 임금인상 되어도 세계경쟁력을 가지는데 임금인상이 자제된 상황에서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윤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안은 투쟁으로 빼앗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대기업노조의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질문6) 금속노조는 보건의료노조 10장 2조 문제의 오류를 극복하고 지부, 사업장 교섭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했듯이 사업장별 교섭을 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사업장별 생산성과 지불능력에 따라 성과가 드러날 겁니다. 따라서 생산성과 지불능력이 큰 대기업에서 더 나은 임금인상과 단협이 만들어질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사업장별 편차가 커지게 됩니다. 산별건설의 모토였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선 대공장의 투쟁을 억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면 노조의 투쟁동력은 산산조각 파괴되어 급강하할 것이고 대자본의 초과이윤은 급상승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 겁니까?

질문7) <현장노동자>는 양극화 해소의 핵심 방향으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상향시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의 실현을 위해 조합원들의 투쟁을 강화하기보단 공장 밖의 산별교섭이나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하는 순간부터 양보교섭은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확장으로 자본과 정권이 압도적 우세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들은 자신들이 펼쳐 놓은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의 반격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적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과감한 공세를 펼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귀족노동자’ 공세에 위축된 대공장 노동자들이 다시 투쟁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산별만능주의자들은 산별전환에만 관심 있고 이러한 투쟁엔 무관심합니다. 이는 자기 대공장 안에서 진행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투쟁회피의 모습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산별전환에 따른 산별교섭이나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교섭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장 안에서 직접 벌어지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엄호 발전시키는 정규직노조의 활동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산별만능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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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언급된 7가지의 질문은 노조 형식으로서의 산별전환이 아니라 현재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어느 누가 성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혀줄지 모르지만 이 질문 자체가 현재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동지들과 <현장노동자> 독자들이 함께 고민할 문제라고 판단한다. 이 질문들은 단순히 답을 듣기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논쟁하고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을 잡아가는 데 기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현장노동자>는 언제든지 동지들과 논쟁하고 비판도 받을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단지 ‘대세’를 내세우면서 ‘그렇다면 너희들은 기업별노조 하자는 거냐’라는 단세포적인 되물음으로 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 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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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장 , 산별 만능주의 , 연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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