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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뉴딜’

- 자본에 ‘완전히’ 백기항복하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7월 30일 ‘사회적 대타협’을 거론한 후 다음날 대한상공회의소 정책간담회 참석을 시작으로 한국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뉴딜 성사를 위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김근태 의장은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출자총약제한제 등 기업규제를 완화할 테니 경제계는 그 동안 경영권 방어를 위해 유보했던 자금으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 달라”고 말했다.

뉴딜을 이끌어내기 위한 김근태의 양보안은 파격적이다. ▲8.15 대규모 경제인 사면 건의 ▲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철폐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각종 규제완화 등 크게 4가지다. 그간 재계가 계속 요구해 온 것을 전격 수용한 것이다.

자본의 일정한 승리

열린우리당, 특히 김근태 의장체제 하에서 당 지도부의 백기투항은 7.26 선거 참패 후 곧바로 나온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선거 패배의 원인과 이후 대선 전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뉴딜의 제출 배경은 선거패배의 원인을 저성장에 따른 서민경제의 체감경기 악화에서 찾고,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대기업 투자에 기대는 것이다. 따라서 김근태의 선택은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의 요구를 충실히 들어줘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산으로 대기업들은 매년 최대 이윤을 갱신했고 자본 보유액도 늘어났다. 경제양극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율, 경상이익율의 차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서민경제는 불황일지 모르지만 대기업은 최대 호황을 몇 년간 누렸던 것이다.

경제양극화는 사회양극화로 귀결됐다. 대기업과 중소사업장의 격차만이 아니라 중간계층인 자영업자조차 몰락하고 있다. 직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전 재산을 털어 작은 점포를 임대해 장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푼 꿈도 잠시 소비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잘 되는 점포란 거의 없다. 자영업조차 자본주의의 고질병인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말이 좋아 사장이지 노동자만 못한 사장들이 목숨을 내놓고 있다.

양극화의 최대 희생양은 노동자들이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거의 모두 비정규직이다. 신자유주의 핵심인 노동유연화 --다른 말로 하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다-- 의 확대로 비정규직의 처지는 처참 그 자체다. 평생직장은 사라진지 오래고, 정규직조차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말이라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말이라도 재벌 중심의 성장위주의 경제가 아닌,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통해 서민경제를 활성화 하겠다고 역설해 왔다. 충분한 분배를 통해 소비를 촉진하고, 자영업자까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10대 핵심 선거공약에서는 단 한 번도 시도 안 한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실현하겠다는 선심성 공약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계획은 자본가에게 양보만 하면서 개혁다운 개혁 한번 못해보고 파탄 났다. 반대로 자본가들은 꾸준히 승리해 왔다. 규제완화에 성공했고, 법인세를 낮추는 데도 승리했고,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하는 데도 승리했다. 자본가들은 김근태 의장의 변화에 대해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더 큰 요구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작은 개혁조차 사보타주할 수 있는 자본의 능력은 대단하다. 더 대단한 것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이다. 대자본은 파도의 여울을 만들 듯이 중소자본가, 자영업자, 서민들의 여론을 장악하고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자본은 투자회피만을 가지고(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 2000-02년 10.7%, 03-05년 2.6%다. 출총제 폐지하면 14조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충분히 노무현 정부를 길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자본가계급의 공세적 요구

자본에게 백기항복 의사가 내포된 뉴딜을 제안하기 위해 대한상의를 방문하는 날 자본가계급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상향조정했다. 자본가계급은 ‘일자리 창출 및 투자활성화를 위한 과제’라는 이름으로 11가지를 요구했다. 김근태 의장이 제안한 4가지를 제외하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재검토 ▲4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확대 방침의 철회 ▲복수노조 협상 창구 단일화 ▲서비스업 활성화 대책(시장개방 해주고 투자 유치할 것. 전력요금 제조업 수준으로 조정 등) ▲건설경기 활성화 방안(울산 신항 배후지역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철도 건설 등)이다. 11가지 요구안 모두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독소조항이다. 자본가의 요구 자체가 노사관계 로드맵에서 다루는 사안이거나, 한미 FTA에서 다루는 사안이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본가계급은 김근태 의장의 양보에 의기양양해 여세를 몰아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패배시키려고 한다.

자본가계급의 요구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다. 환영의 입장을 취하면서 단서를 단다.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의장만의 입장이 아니라 당 ․ 정 ․ 청의 조율된 입장이어야 한다는 점, 그래야만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반발은 크지만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열우당의 2중대인 시민단체도, 그리고 열우당 내부에서도 ‘개혁후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실련은 ‘재벌옹호 정당’이라며, 참여연대는 ‘대재벌 항복선언’이라며, 민주노동당은 “기형적 소유 지배 구조인 재벌 체제를 유지해주겠다는 추악한 뒷거래”라며 각각 성토했다. 성토가 재벌에 맞춰져 있는 것은 이들 모두 남한경제 살리기를 재벌해체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본 일분파와 더불어 남한경제 살리기를 위해 재벌해체를 주장했고 이의 실현을 위해 업종전문화, 출총제를 적극 추진해 왔다. 게다가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재벌총수일가의 전횡 ․ 독재를 막고자 했다. 이런 그들에게 출총제의 폐지는 청천벽력과 마찬가지다.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재벌총수일가의 전횡을 막고자 했지만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출총제의 폐지 약속이 그들에게 던졌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고자 하는 자들에겐 자본의 외형적인 모습이 중요하다. 어쩌면 개량주의자에겐 재벌의 재산을 몰수하는 위험한 혁명보다 재벌을 교화시키는 것이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착취체제 자체를 철폐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에게는 외형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가 투쟁 대상이다. 자본가계급은 더 이상 설교로 교화시킬 수 없다. 자본가계급의 절친한 친구인 노무현의 집권조차 뒤흔드는 자들이 친노동자 정부가 들어선다면 어떻게 나올 지 뻔하기 때문이다.

잡딜(Job Deal)과 한국노총

김근태 의장은 한국노총과의 만남에서 잡딜을 제안했다. 재계와 정부가 투자활성화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테니 노동계는 자본과 정권에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선 선언적이었지만 노동계의 양보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한국노총과의 협상에서 “▲국민정서와 배치되는 불법과격시위 중단 ▲대기업 노조 중심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 자제 ▲사내 전환배치조차 어렵게 하는 단체협약 경직성 해소 ▲글로벌 경영환경에 부합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협력 강화”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어용노총답게 “투자활성화,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을 위해 열린우리당이 노동계에 제안한 4개 사항에 대해 열어놓고 논의한다”는 수준에서 합의했다. 열린우리당의 4가지 요구는 현 시기 노동운동에 대해 자본의 파트너로 전락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구체화시킨 것들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포항건설노조 파업, 비정규직노조들의 목숨을 선도투쟁에 대해 불법과격시위라는 딱지를 붙이고 진압해 온 폭력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공장점거파업을 전개하고 있는 쌍용차 노조의 정리해고 철회 ․ 단협사수 요구를 포기하는 것이며, 자본과 정권의 ‘귀족노동자’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협력 강화는 자본유치를 위해 산자부 장관과 해외홍보활동을 하는 이용득의 노사협조주의 노선을 정당화는 것이다. 김근태의 잡(Job)딜에 대해 한국노총이 논의한다는 수준에서 합의했다고 하지만 이는 노동형제를 팔아먹는 잡놈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이미 자본과 정권의 하위 파트너인 한국노총에게 열린우리당의 4개 요구는 부담스러운 요구가 아니라 전투적 조합주의를 압박하고 노사협조주의를 강화해 자신들의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고마운 요구들이다. 김근태의 행보는 어용노총을 파트너로 민주노총을 압박했던 과거 정권들의 전략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자본에 맞선 투쟁

민주노총은 장소 선정 문제보다 뉴딜의 반노동자적 성격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한국노총이 자본과 정권의 하위파트너를 자임하며 노동형제를 다 팔아먹는 행위들에 대해 싸워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노총이 국가기관화 하고, 노사협조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노총을 견인한다는 것을 핑계로 투쟁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민주노총을 노사협조주의로 물들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현 시기 김근태의 뉴딜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 안의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자계급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다. 왜냐면 정부와 청와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고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뒤로 호박씨 까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현장노동자> 9호에 실린 ‘철도공사의 노동자 죽이기’ 글에서 밝혔듯이, 철도공사가 핵심 몇몇 부서를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외주화 시킬 계획임을 드러냈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공세를 감행하고 있다. 철도 조합원의 3분의 1인 8,200명의 운수 직렬 동지들을 외주화 시키겠다고 발악하고 있다. 이는 단지 철도공사만의 일이 아니다. 도시철도, 사회보험 등 다른 모든 공공부문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일이다. 철도공사 사례로 폭로했듯이 오히려 정부와 청와대는 핵심부서를 제외한 모든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확대하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뒤로는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지배계급의 모습은 지나간 성룡 영화를 명절 때마다 보는 것처럼 식상한 일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우리의 투쟁은 단지 김근태의 ‘개혁후퇴’에 맞서는 투쟁 정도로 축소되어선 안 된다.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공세에 맞서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결코 뉴딜이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을 통해서도 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조차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계급의 처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뉴딜과 노사관계 로드맵을 박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투쟁, 위력적인 총파업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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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 뉴딜 , 김근태 , 잡딜 , 출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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