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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풀이 한판 4] 노동조합 민주주의가 뭐꼬?

Q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만큼 많이 듣는 얘기가 노동조합 민주주의다.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선택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하의 어느 조직보다 구성, 선출, 운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합니다. 민주노총 선거에서 직선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현장에서 민주주의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산별노조건설 과정에서도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중요한 쟁점이기도 합니다.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대해서 알려주십시오.

A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노동조합 조직의 성격으로부터 옵니다. 자본과 정권의 회유와 탄압에 맞서 투쟁할 수 있기 위해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 민주노조의 기본성격을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연대성), 전투성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때의 민주성은 단순히 위원장 선거가 간선제냐 아니면 직선제냐, 위원장이 직권조인 했느냐, 안 했느냐 차원의 좁은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이 아니라 자본과 정권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고취하고 조합원들의 의사를 얼마나 잘 결집시키고, 조합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노동조합 운영을 하는가 전반에 대한 총체적 판단이었습니다.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고정된 무엇이 아닙니다. 노동조합 주체들의 살아있는 실천을 통해 변화, 발전할 수 있으며, 아니면 퇴보하기도 합니다. 사실 노동조합 관료화에 맞선 투쟁에서 패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로,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민주주의

이 나라 지배계급은 자유민주주의를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백성이 주인인, 백성이 모든 결정의 주체임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매우 훌륭한 사상입니다. 그래서 신분이 상속되는 사회, 왕권신수설이 판쳤던 사회에 맞서 “자유, 평등, 박애”를 내걸고 제3계급 - 이후 자본가 - 과 농노 - 이후 노동자 - 들은 투쟁했습니다. 과감하게 단두대에서 왕과 왕비, 귀족들의 목을 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습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해 당연한 행위였습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것은 적들에 대한 과감한 투쟁, 투쟁과정에서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이념이 민주주의였습니다. 모두 신분의 자유를 얻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처지는 하늘과 땅처럼 멀리 갈라졌습니다. 노동자들은 부를 소유한 자본가에게 몸둥이를 팔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유만을 얻은 것입니다. 신분의 자유를 얻은 노동자에게 자본주의하의 민주주의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자체 선거를 통해서 정기적으로 자기를 지배할 자를 뽑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 쟁취, 실업에서 벗어나 일할 권리, 자신들의 사회를 만들 권리는 철저히 민주주의라는 말로 탄압받고 억압받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본가들만의 민주주의였습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가 스스로 공장을 운영할 권리나 공장을 운영할 사람을 뽑을 권리를 왕의 신분 세습을 반대했던 자들을 천고의 대역죄인으로 만들어 숙청하고 구족을 몰살했던 것만큼 불경 시 했으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로 원천봉쇄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노동자를 기만하고, 죽여 왔습니다.
봉건제를 유지했던 기둥인 신분제를 타파했을 때에 제기되었던 부르주아적 자유와 민주주의는 진보였습니다. 이 나라 군사독재에 맞서 직선제 쟁취, 제헌의회 쟁취를 요구한 것도 진보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세습되듯이 자본주의 하에서 일상적으로 실시하는 선거가 과거처럼 진보가 될 순 없습니다. 선거가 노동자(백성)를 주인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딱 한 순간 선거 시기 후보자들이 머리를 쪼아려 인사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악수를 하는 한에서 주인인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 시기만 지나면 다음 선거 때까지 백성은 머슴이고 그들이 주인인 세상만 있을 뿐입니다.

노동조합 민주주의

그렇다면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다르게 조합원을 주인으로, 주체로 만들고 있을까요? 간선제 어용노조에 맞서 투쟁할 때 중요한 요구는 직선제 쟁취였습니다. 조합원 총회쟁취였습니다. 왜냐면 간선제 어용노조는 사측의 노무관리팀의 역할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용위원장은 사장과 밀실에서 야합하는 것을 밥 먹듯이 했고, 임단협은 위원장의 출세를 위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조합원의 임금과 단협을 혼자서 맘대로 좌지우지했고, 조합원의 퇴직금을 양보하고 위원장의 임기를 퇴직 이후까지 늘린 어용도 있었습니다.

2001년 파업 후 간선제에 기반 한 효성 어용노조는 5년간 임금동결, 상여금 200%삭감, 단협양보, 500명의 구조조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악행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조합원의 피 같은 조합비는 어용노조 간부들의 용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어용의 형태에 맞서 문제제기하고 투쟁하면 사측과 손잡고 징계를 남발했고 당연히 노조는 징계로 해고시켰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노조민주화투쟁위원회(일명 노민추)를 만들어 어용노조에 맞서 투쟁해 왔습니다. 노민추는 조합원의 투쟁, 조합원의 의식, 조합원의 참여에 기반해서만 사업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이런 투쟁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절차라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직선제 쟁취는 여전히 중요한 기본적인 요구입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나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 때 직선제 쟁취 꼭 해야 합니다. 조합원들의 의사를 물어볼 기초적인 방법이 직선제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정권의 군대식 노무관리체계를 깨고,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대중의 폭발적인 힘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대중의 투쟁은 요구의 정당성과 이를 집중시킬 수 있는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근거했습니다. 단순히 직선제로 위원장 뽑고, 총회로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를 만드는데 참여하고, 전체요구와 투쟁을 위해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분임토론으로 각성시키고 전조합원의 의지를 모았습니다. 민주노조 사수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주의는 언제나 조합원과 함께 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었습니다. 보고대회와 토론은 기본이었습니다. 협상 내용은 즉각 유인물, 보고대회를 통해 알려줬고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운동운동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의원 활동의 중요성도 이때 강조되었습니다. 대의원들을 통해 분임조를 운영하지 못하고선 다양한 의견을 집중시킬 수 없습니다.

노동조합 운영의 기본원리를 민주집중제라고 합니다. 민주집중제의 핵심을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단체행동의 통일을 위해 최대의 비판을 허용하고 논의하도록 하는 겁니다. 단지 지도부의 지침, 지시가 아니라 조합원들의 정치적·조직적 판단을 토론을 통해 집중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어용노조가 위원장 혹은 지부장 중심의 노조운영이라면 민주노조는 조합원 중심의 노조운영이 기본입니다. 따라서 민주노조는 어용노조처럼 위원장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사전에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다양한 민주주의 - 회의, 보고대회, 분임토론

위원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사업을 하지 않기 위해선 공식적인 회의를 통해 토론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단위노조는 상집회의, 대의원 대회, 대의원회의 공식 회의, 소위원회 회의 등 일상적으로 회의를 합니다. 이 회의를 어떻게 준비하고, 조직하고, 진행하는가를 보면 그 노조의 조직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대의원 대회 무산을 두고 민주노총의 위기 운운하는 것이 일정하게 타당한 것도 최고 의결기구의 무산 때문입니다.

회의는 민주적인 조직운영에 있어 다양한 동지들의 의견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과정이며 형식입니다. 조직성원들이 한 가지 생각과 한 가지 의견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노동조합 자체가 조합원을 대표해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것이 주요 사업인 만큼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의견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상호 토론을 통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지지 않는다면 회의 구성원들의 다수결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동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에서 다수결로 문제해결을 해 나가기 전에 우선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공동의 논의를 위해선 회의 구성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수위의 정보를 가지고 우겨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의를 지도부만 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민주노조운동은 조합원중심(평조합원운동)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민주노조운동이 가장 왕성했을 때 가장 발달한 것이 분임토론이었습니다. 전조합원이 참여하는 분임토론 말입니다. 지금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수련회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최근 01년 효성 파업투쟁, 02년 발전파업투쟁에서 분임조 운영, 분임토론의 위력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분임조 운영과 토론을 잘 했던 단위사업장은 현장조직력이 월등하게 뛰어났습니다. 지금도 장기파업 사업장, 공장점거파업 사업장은 분임조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임토론은 파업 프로그램의 핵이며 노동조합 민주주의 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결권과 총회투쟁 그리고 왜곡

법적으로 체결권이 위원장에게 있는 것은 자본과 정권의 농간입니다. 자본과 정권이 위원장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켜 회유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러한 자본과 정권의 농간에 맞서 투쟁해 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직권조인에 맞서 투쟁해온 역사, 위원장의 체결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교섭할 수 없다는 자본의 농간에 맞서 조합원 총회를 사수해온 역사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은 중요 결정 사항을 조합원 총회를 통해 해왔습니다. 조합원들의 생존권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데 조합원 직접 민주주의를 사용했습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든, 임단협 가·부결든 중요사항을 조합원총회로 결정합니다. 중요사업은 조합원 총회에 준하는 대의원 대회를 통해 심의·의결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공장에선 총회를 빙자해 투쟁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03년 열사정국에서 기아자동차노조 17대 집행부가 ‘자살’총회를 통해 총파업을 무산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지도부의 결의 없이 총회를 남발하는 것은 총회투쟁을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총회는 충분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집행부뿐만 아니라 현장조직들도 총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하기 싫은 일은 준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투쟁을 회피하려는 노조관료는 준비가 안 된 조합원총회를 이용해 투쟁회피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합니다.

노동조합운동이 공식회의를 통해 결정한 사항이라도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노동조합의 관료화가 진척되는 만큼 잘못된 결정을 하는 사례도 늘어납니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이 제대로 가도록 하기 위해선 현장조직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이제 총회를 준비하는 것, 대의원 대회를 준비하는 것은 단지 집행부에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현장조직들에게도 해당하는 문젭니다.

일상화 된 사업부 대의원회, 선거구 대의원의 직권조인

대공장노조는 대부분 사업부 대의원회가 있습니다. 여러 개의 선거구별 대의원으로 구성됩니다. 대공장의 사업부는 2,000~3,000여명 정도로 조합원 규모면에서 웬만한 대공장과 비슷합니다. 게다가 자동차 노조의 특성상 사업부 대의원회와 선거구 대의원들이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단협, 고용문제는 노조차원에서 하지만 일상적인 노동조건은 대의원회를 통해 결정합니다. UPH, M/H, 잔업, 특근 등 일상 노동조건 거의 다 대의원회에서 결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한 사안을 조합원들에게 묻지 않습니다. 대의원회, 혹은 대의원이 독자적으로 결정합니다. 노조로 치면 직권조인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의원 대표 선거, 대의원 선거 때 대의원회, 선거구 대의원의 직권조인을 문제 삼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하지만 어느 단위에서도 실현한 적은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도 대의원의 직권조인에 대해 소위원회에서 문제제기하고 논쟁한 적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의원을 지지하는 진보회와 소위원회를 지지하는 현장동지회가 서로의 유인물 을 통해 대대적인 논쟁으로 확대되기는 했지만 아무런 결론 없이 유야무야 되었다.

현장조합원들은 일상적인 대의원회 사업에서 소외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중요 사안에 대해 투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고 집중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합니다. 자판기 노조로 전락하기를 두려워하면서 자판기노조를 극복할 조합원의 직접 참여를 조직하기 않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은 직접 민주주의를 더 많이 도입해야 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조합원을 운동의 주체로,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대의원회는 관행처럼 한 직권조인을 하기보다는 사업부별 총회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선거구 문제도 마찬가지의 원리로 풀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위에서 노동조합 총회도 대의원 대회도 오류를 범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노동조합이 노사협조주의로 경도되면 될수록 그런 경향은 강화됩니다. 이는 단지 집행부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실리주의로, 노사협조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막는 것은 활동가의 중요한 임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합원들이 실리주의로 경도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이것을 하지 못하면 총회 민주주의는 투쟁회피를 위한 면피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적 관점을 가지고 민주노조운동을 복원시키는 것,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 수를 확대하는 것, 이를 통해 계급적 현장조직운동을 발전시키는 것 없이는 민주주의의 효과는 우리의 목을 조르는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운동을 고민하는 동지들! 노동자의 관점을 갖고자 학습을 시작한 동지들!
학습도 회의의 일종입니다. 토론과정에서 내용을 채우고, 서로를 이해하고, 활동을 결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현장에서의 작은 투쟁, 잔업 거부, 지역의 투쟁사업장에 대한 작은 연대, 비정규직노조를 지지·지원하는 작은 실천이라도 모색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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