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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교섭 성사에 07년 투쟁을 바치겠다는 것인가?

민주노총 재창립의 각오로 현장대장정에 나서겠다고 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연일 바쁘다. 노동부 장관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하고 있는 장본인들을 만나고 다닌다. 사회적 교섭에 혈안이 되었던 이수호 위원장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이석행 위원장은 버젓이 하고 있다. 노동탄압이 집중되는 시기에는 노동부 장관을 만나는 것조차 상황과 조건, 명분을 따져서 만났는데, 도대체 제 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행자부 장관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도 행자부는 공무원노조의 숨통을 끊어놓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작년 공무원노조 지부사무실 폐쇄 이후 탄압은 도를 더해가고 있다. CMS 조합비 납부를 막기 위해 통장 사본 제출을 요구하고, 사무실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콘테이너와 농성장을 철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건교부 장관을 만나면 뭘 하겠는가! KTX에 이어서 새마을호 승무원들마저 현장에서 내쫓겼고, 철도공사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집회·시위의 자유마저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다.

재벌까지 만나...

이석행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역할이 산별교섭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19일 07년 사업방침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20일 현대 ․ 기아차 그룹 박정인 수석부회장과 전격적으로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이석행 위원장과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임금인상이 아니라 산업공동화 문제와 자동차산업 발전 등 정책적인 부문을 노사가 고민하기 위해서” 만남을 추진한 것이며, 산별교섭의 장점을 설명했다고 한다. 보수언론은 일제히 회동 사실을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이석행 위원장이 올해는 ‘파업을 위한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비정규 개악안과 노조 말살책인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투쟁이 파업을 위한 파업인가? 파업이 제대로 힘 있게 되기나 했는가? 최근 몇 년간의 임금인상률은 하락했다. 지속적인 임금인상률의 하락, 노동통제의 강화, 비정규직의 급증 등등, 한시도 우리는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에 내몰려 수 백일씩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동지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소리다.

산별교섭 성사를 위해 모든 걸 버려야 하나?

주요 대공장의 산별전환 이후 ‘산별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87년 노동자 투쟁, 전노협 이후 민주노조운동에서 산별노조는 우리가 가야 할 ‘지향점’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산별노조 건설과정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실현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투쟁을 통한 연대, 공동투쟁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지 조직형식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제 우리가 접하는 산별은 관료화와 투쟁회피, 조직형식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정신과 투쟁, 생존권을 팔아먹을 수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가 가자고 했던 그 노조형식(산별)이 우리를 잡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규직노동자 양보론

민주노총 윤영규 산별특위장은 “사회양극화의 주범 중 하나가 노조의 기업별 체계”라고 말했다. 윤영규가 말하듯이,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을 위해서 싸우는 노조가 사회양극화의 주범 중 하나면, 대공장이나 대규모 사업장 노조는 당장 ‘임금동결을 선언’해야 할 터이다. 마치 보수언론이나 경제일간지에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파업을 비난했던 것을 보는 듯하다. 정규직 노조의 임금인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며 양극화의 책임이 노조에 있음을 선전하는 노무현이나 자본가들, 보수언론과 무엇이 다른가?

민주노총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방식이라며 정규직 노동자들은 9% 인상, 비정규직 19.5% 인상을 07년 요구안으로 밝혔다. 정규직의 9%와 비정규직의 19.5%가 모두 총액대비 22만 6,126원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임금인상 요구안 설정 자체가 문제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하겠다고 하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정규직노동자의 임금 9% 인상 요구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미 <현장노동자> 16호에서 밝혔듯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반면 대기업 임원들이 가져가고 있는 부는 도대체 얼마인가? 자본가들이 부동산 등을 통해서 앉아서 버는 소득이 도대체 얼마인가? 최소한 작년 10대그룹 임원 보수의 인상률인 19.24%를 요구해도 시원찮은 것 아닌가? 그에 상응하는 수준에서의 비정규직 임금인상을 주장해도 부족한 것 아닌가?

지난 19일 금융감독원은 올해 이사들이 가져가는 보수는 10대 그룹 1인당 평균 7억 4천 379만원으로 작년 대비 19.24% 인상이라고 밝혔다. 반면 노동자들의 06년 임금인상률은 5.4%다. 이사들의 임금은 최근 몇 년간 20%이상의 고공행진을 했다. 대기업과 언론은 연일 대기업의 임금이 동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공장의 투쟁을 때려잡아 노동자 투쟁의 활력을 꺾어 놓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한국의 민주노조운동, 노동자 투쟁 전체를 때려잡겠다는 것이다.

투쟁의 통제

자본가들은 비수를 등 뒤에 숨기고 대화하자는 민주노총의 요구에 환한 웃음을 보인다. 뭔가 잘 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작년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노사관계 로드맵 처리과정에서 민주노총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지 않았는가? 현대 ․ 기아차 그룹이 민주노총의 대화 요구에 전격적으로 임한 것 역시 노무관리정책의 일환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줄이는 것, 상층의 협상으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장투쟁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들은 상층에 줄을 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산별교섭을 잘해보자’는 이야기로 포장되고 있다.

우리는 윤영규 민주노총 산별특위장이 과거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시절, 10장 2조의 주역임을 잊지 않는다. 산별교섭의 성사를 위해서 단위 사업장의 투쟁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던 당시 보건의료노조는 한국에서 산별노조가 관료화의 길로 얼마나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공공 산별 전환과정에서는 위원장이 단위 사업장의 파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만들었으며, 금속 완성 대의원대회에서도 위원장 파업 중단권이 규약개정안으로 상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산별시대 투쟁의 방향, 정신, 조직 구조가 모두 사회적 타협과 통제에 전적으로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연대와 투쟁의 기운을 확대하자!

사회적 교섭이든, 산별 교섭이든, 중층적 교섭이든, 사회적 타협을 전제로 하는 교섭을 통해서는 연대가 실현될 수 없다. 우리가 양보할 테니 너희도 양보하라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것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실현할 수 없다. 이는 역사가 보여준 진실이다.

반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하자는 양보론에 대해서 반대하는 현장의 조합원들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금속노조 완성 대의원대회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보복성 계약해지를 신분보장의 대상으로 선정하고 투쟁을 지원해야 한다는 대의원들의 다수는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실천하는 동지들이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주야 맞교대 노동에 반대하고 싸우는 동지들이 전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 가장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동지들이다. 이처럼 정규직 자신의 투쟁과제를 가장 헌신적으로 실천하는 동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가장 헌신적이다. 이것이 연대다.

장기투쟁사업장 간의 연대를 위해서 발품을 팔고, 헌신적으로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동지들이 누구인가? 바로 투쟁을 통해서 의식이 성장하고, 연대의 소중함을 배웠던 동지들이다. 함께 고생하는 투쟁의 현장에서만 진정한 계급적 단결과 연대의 정신이 싹틀 수 있는 것이다.

06년 패배 이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어느 누구도 투쟁에 자신감과 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원칙과 정신을 지켜야 한다. 민주노총, 산별, 단위노조의 방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투쟁하는 동지들 간의 연대를 더욱 긴밀히 하자! 그럴 때만이 위기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박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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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 산별교섭 , 현장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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