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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풀이 한판 7 > 단협이 정말 그렇게 중요해?

Q: 매년 임협투쟁, 2년에 한번 단협투쟁을 한다. 신생노조는 노조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사측과 단체협상을 맺는다. 자본과 언론도 임협보다 단체협상투쟁에 무게를 둔다. 자본과 언론은 주요 대공장의 단협이 있을 때마다 노사관계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IMF 이후 고용불안을 겪은 후 단협투쟁의 중요성은 더 높아졌다고 한다. 게다가 대공장노조들의 산별전환 후 처음 맞는 산별교섭에서 자본측은 중앙교섭을 위해선 지부 교섭, 지회교섭으로 불리는 이중, 삼중교섭의 폐지를 요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현장조합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A: 단협이란 조합원들의 고용, 임금, 노동시간, 후생복지를 포함한 제반 노동조건, 노동조합을 강화할 조합원 교육시간, 전임자 활동 보장, 대의원 활동보장 및 소위원 활동 등 제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사측과 합의한 것이다. 당연히 단협의 한 부분인 임금협약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임금에 매몰될 때조차 노동조합의 미래를 위해서 단협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1. 먼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은 단협은 근로기준법, 노동관계법에 우선한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은 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자본이 지켜야 할 최하위 노동조건만 제시할 뿐이다. 따라서 최하위 노동조건만을 제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것은 자본가로서의 자격도 없다는 뜻이다. 최하위 노동조건만을 명시하는 근로기준법의 특성으로 인해 노동조합은 단협을 통해 조합원들의 모든 권리를 확장하고 지켜나간다. 노동조합은 이를 「협약의 우선」원칙으로 단협에 명시한다. 노동조합이 맺은 단협에서 협약우선의 원칙은 분명히 “노동관계법을 이유로 본 협약을 저하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공장노조가 개악된 주5일제 법령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단협으로 월차, 생리휴가를 보장받고 있는 것도 단협 우선의 원칙 때문이다. 주5일제 개악 시 정부와 자본은 단협을 근로기준법에 맞추라고 공격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단협은 최대의 요구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2. 단협이란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노동조합 활동 등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임금투쟁보다 중요하다. 단협에는 노동조건과 노동조합 활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들의 임금성 단협도 존재한다. 당장 현자 단협에 보면 구 정공(현 5공장) 조합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조항들이 있다. 단적인 예로 제87조 연금조항이다. 현자 조합원은 월 20,000원씩 10년간 적치 하지만 구정공은 정공 단협에 따라 15,000원씩 퇴직 때까지 적치한다. 대략 금액으로 환산하면 현자조합원들은 300만원, 정공 조합원들은 600만원으로 두 배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해서 단협의 중요성을 임금성 단협의 중요성으로 희석시켜선 안 된다. 오히려 임금, 임금성 단협에 매몰되는 협소한 시각을 극복할 수 있도록 활동가가 노력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IMF 이후 조합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고용에 관한 단협은 고용보장의 필요에 따라 계속 발전해 왔다. 과거에는 총고용 보장 한다 정도였다. 그러나 총고용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양해지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됐다. 단적인 예로 현자 단협 제32조 해외현지공장 조항은 2003년에 맺었다. 해외현지공장 건설만이 아니다. 모듈, 신기술, 전환배치, M/H, 하도급 등 조합원의 고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항들을 단협투쟁을 통해 단협 조항에 명기해 왔다.

또 다른 예로 조합원들이 고통을 하소연하는 근골격계 질환조차 2002년 투쟁으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단협 조항으로 명시할 수 있었다. 단협은 조합원들의 필요에 따라 투쟁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단협은 노동조합 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책과 마찬가지다.

3. 단협은 투쟁의 무기다. 현장의 많은 투쟁을 뒷받침하는 게 단협이다. 단협이나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는 사측에 맞서 투쟁할 수 있다. 게다가 단협을 근거로 투쟁을 조직하기도 한다. 합의서 미이행, 단협 미이행 사항에 대해 투쟁하지 못한다면 단협은 무용지물이 된다. 김근태와 한국노총 간의 잡딜(Job Deal)에서 김근태는 “대기업노조의 사내 전환배치조차 어렵게 하는 단체협약의 경직성 해소와 글로벌 경영환경에 부합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협력 강화”를 요청했다. 공식적으로 대기업 단협 전반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개별 자본은 한 술 더 떠 “노동조합의 허락 없이는 사업도, 생산도 맘대로 못 한다”고 엄살피면서 단협 조항 중 가장 중요한 노사합의 조항들을 없앨 것을 요구한다. 2년마다 벌어지는 사측의 단협 개악안 제출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본은 단협에 대한 개악 시도를 쉬지 않고 계속할 것이다. 자본의 공세인 단협 어기기에 대해 작은 사항이라도 단협 미이행으로 맞서 투쟁해야 한다.

4. 단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측은 쉬지 않고 단협을 어기려 한다. 작은 도발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예로 조직력이 막강하다는 현대자동차에서 몇 년 전 엔진 역수입을 하지 않기로 한 단협 제32조 3항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인도로부터 엔진 역수입을 한 사례가 있다. 더 무서운 것은 96년 고용안정합의서(단협에 준한다)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정리해고를 자행한 것이다. 이렇듯 노동조합이 힘이 없을 때에는 단협은 무용지물이 된다. 우리는 자본이 얼마나 약속을 안 지키는지 봐 왔다. 자본에게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것은 힘 있는 노동조합, 살아있는 현장조직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워왔다.

5. 단협은 시기별 노조에서 쟁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구가 된다. 87년 이후 노동악법 철폐 투쟁과 공세적인 단협투쟁의 시기를 지나고 IMF로 노동운동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은 단협조차 수세적으로 제기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일단 사측의 공세로 현실에서 해악이 벌어진 후 단협으로 강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주요 단협은 조합원들의 절박한 요구가 집중되는 선거 때 중요 공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수세적인 단협투쟁은 사후 약방문처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세적인 단협투쟁을 공세적인 단협투쟁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6. 단협은 현장권력 쟁취을 위해 사측이 일방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생산통제 조항, 경영권․인사권을 침해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해야 한다. 단협이 더 큰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해선 경영권 ․ 인사권의 침해 없이는 불가능하며, 노동조건과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노동자 생산통제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든다면 ‘협의’를 합의 조항으로, ‘심의 일치케 한다’ 역시 합의 조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징계위 노사동수 쟁취도 중요하다. 지금 동수일 때 하위 징계조항을 적용한다고 되어 있지만 징계위 노사동수 없이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 기아차노조의 단협에 징계위 노사동수 조항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기아차는 해고자가 거의 없었다. 활동가의 활동을 보장해 주는 단협의 뒷받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노동조합 경영참가와 사회적 책임 조항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노동자 경영통제와 기업의 영업비밀 철폐 요구다.

7. 오랜 제기가 있었음에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다. 이는 단협으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산별주의자들은 기업별 단협으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산별단협(협약)으로 해결하자고 제기한다. 과연 사업장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동일단협 적용투쟁을 회피하면서 산별단협 쟁취에 나서라고 하는 것이 가능한지, 또 산별단협으로 공장내 정규직 ․ 비정규직의 차이가 해소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산별단협은 통일협약이 아니라 기준협약일 뿐이므로 최저 수준만 결정하고 지부, 지회 교섭으로 구체적 적용이 이뤄지므로 공장 내 정규직 ․ 비정규직의 차이가 해소되긴 어렵다. 따라서 <현장노동자>는 산별 차원의 단협 만들기에 앞서 공장 내 비정규직에게 동일단협 적용 쟁취를 해야 한다고 제기할 수밖에 없다.

8. 마지막으로 산별노조의 중앙교섭 성사를 위해 이중-삼중의 교섭을 통제하는 건 있어서 안 될 범죄이다. 현장투쟁, 현장교섭이 강화되지 않고선 산별노조는 죽은별노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산별노조의 관료화와 현장공동화를 막기 위해선 이중-삼중의 교섭 체계를 가져야만 한다. 현자 노사전문위원회 대표인 박태주의 주장처럼 산별노조가 중앙교섭 성사를 위해 교섭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을 현실로 입증하고자 이중-삼중의 교섭을 포기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면 현장은 사활을 걸고 산별관료에 맞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단협이 중요하나 단협으로 투쟁의 한계를 두어선 안 된다. 진정한 활동가는 단협을 능가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 노동해방에 이를 수 있는 사업과 요구를 제기하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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