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련의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

뒷걸음치는 산별운동, 거꾸로 걷는 운동가들

운동을 퇴보시키는 운동가들

공공산별 논의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직접 목격했던 몇 장면들이 있었다. 그것은
과두제의 대두와 대리정치 그리고 밀실야합이다. 지난해 말 공공연맹의 핵심
집행부가 자신들의 임기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위원장 한 사람이 규약의 해석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상의 문제가 드러났다, 그리고 위원장이 규약의
해석권을 넘어 제정권까지 행사하면서 그 파장이 적지 않았다. 공공운수연맹
창립이 일정에 오르면서 자리 나눠먹기를 위한 야합이 제안되기도 했다.

노조운동권 내에서 지켜야 할 절차는 무시되기 일쑤였고, 규약은 상층 집행단위의
비민주적인 관행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오히려 기업별노조의 잘못된
관행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정치는 음모 속에서 피어내는 야합이라는 구린내가
아니다. 정치는 계급의 집단적 힘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규약은 투쟁의 결과물이다

법은 현재 그 수준이 어떠하든 간에 투쟁의 결과물이다. 법의 수준이 투쟁의
수준을 가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법이 존재하기까지 무수한 사람들의
피와 절규 그리고 희생이 따랐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노동조합 내에서 법과 같은 규약 또한 투쟁의 결과물이 확실하다. 운동권 외부의
자본가들과 운동권 내의 노사협조주의자들인 어용들에 맞서 투쟁으로 쟁취한
소중한 자주적 결과물이 바로 규약이다. 그래서 민주노조의 규약과 어용노조의
규약은 결과 질에서 엄연히 다르다. 우리들이 피와 눈물로 만들고 지켜온 이
규약이 이제는 아주 귀찮은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다. 규약이 집행권력 유지와
연장에 귀찮은 장애물이 되다 보니, 유권해석이라는 핑계로 비민주적인 관행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어용노조의 사례

산별노조 형태인 전국전력노조는 대한민국 노조 설립 제1호인만큼 그 역사가 길고
악명이 높다. 위원장이 조합원들의 퇴직금 누진율을 삭감한 반동적 조치, 정년이
된 노조 위원장과 그 일당들의 정년을 연장시키는 대가로 조합원들의 임금을 삭감
등을 자행했다. 위원장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선출직 간부인 지부장의 권리를
정지했다. 김시자 열사는 그에 맞서 분신으로 항거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아무런 절차도 없이 조합원 자격을 강제로 박탈당해야 했다. 위원장 한 사람이
임단협 체결에서부터 모든 규약과 규정의 해석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도 현장에서 민주적 절차에 대한 목소리가 울려 나오면 어용들의
집행을 유지, 가능하게 할 법적 해석을 만들어 온다. 노무사, 변호사, 검사,
심지어 판사까지 어용과 한편이 된다. 그러다 보니 검은 머리로 위원장을
시작하면 파뿌리가 되어 정년퇴직할 때까지 위원장 해 먹고 나서는 그의 충성스런
부하에게 위원장 자리를 세습해 주곤 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어용에 대한
혐오와 법에 대한 불신은 거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현재의 관행들

과거 공공연맹이나, 현재 산별로 전환한 노조의 대부분의 규약에서 규약의
해석권을 위원장 한 사람에게 주고 있다. 이는 어용노조의 사례와 같다. 민주를
확장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위원장은 자신의
편의대로 규약을 해석하고, 그 독재적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무사나 변호사를
동원하여 집행부의 입장을 대변케 한다. 정부가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을 관철시켜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엄청나게 제약했다. 거기에다가 노동조합 위원장이
파업중지권을 독점하도록 규약을 만들어 놓아 현장 노동자들은 2중으로 파업권이
제약 당하고 있다. 현장의 자발적 투쟁이 거세될 위기다. 철도나 전력에서
문제되었던 2중, 3중 간선제를 현재 공공운수연맹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에서도
버젓이 시행하고 있다. 명백한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인 한국노총과 공조파기도
해석을 덧붙여 한국노총과 부분적 공조를 하고 있는 판이다.

공공연맹과 공공운수연맹을 거치면서 세습은 아니라 강변해도 세습과 다름없이
위원장은 언제나 집행권력 내인 그들의 테두리 안에서만 배출된다.

쿠데타 그리고 야합

80년대 초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가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태우와 김영삼, 김종필이 야합하여 3당을
합당한 민정당을 만들었다. 90년대 초반 우리는 거리에서 민정당 해체를 목소리
높이 외쳤다. 야합을 반동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공공운수연맹은 그 결성과정에서부터 상층인자들이 쿠데타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현장 조합원들과 심지어 대의원조차 어떤 경로를 거쳐 공공운수연맹이
건설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집행 권력이 불안해 지고, 그 불안한 쿠데타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전에 임원들 자리를 끼리끼리 나눠 먹기식으로
배치했다.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아는 듯 모르는 듯 이미 결정 난
사안에 형식적 추인만하는 들러리로 동원되곤 했다.

4/30일 공공운수연맹 대의원대회에서 우리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망령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국가권력의 야합에 버금가는 노조운동권 내에서 3파 야합이
이루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구국의 일념으로 야합을
했듯이, 노조운동권 내에서 마침내 노동운동의 대의라는 핑계 하에 3파 야합이
성사되었다. 이러한 야합은 지금까지 잘못되어 온 산별건설 과정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관행에 편승해서 합리화하고 있다. 이 야합으로
현장파는 현장을 빌미로 권력에 야합하는 집단으로 매도되어도 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어느 동지의 말마따나 들어가서 바꿀 것이면, 아예 3파 합당을 하여 그
속에서 바꾸는 게 옳지 않겠는가. 현장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현장파는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에 사이비 현장파를 현장에서 걸러내야 한다.

박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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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연맹 , 3파 야합 , 임원 자리 나눠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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