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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래에는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패배한 혁명’의 교훈

과거 황제가 군중들에게 연설하던 바로 그 제국 궁전 창문에,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올라섰다. “‘자유의 시대가 밝았습니다. 나는 모든 독일인들의 자유로운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모든 독일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세계 혁명을 완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세계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손을 드십시오.” 수천 명이 손을 들었다.”(73쪽)

1918년 11월 독일혁명 때의 이야기다.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선 지 1년이 지났으나 고립된 채 내전으로 고전하고 있던 때였다. 이웃 독일 노동자들의 이 힘찬 세계혁명 선언이 성공하였다면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되었으리라.”(서문)

그러나 이 혁명은 패배로 끝났다. 1918년에 이어 1920년 카프 폭동으로 벌어진 위기 상황에서도, 1923년의 봉기에서도 독일 노동자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이 패배가 나찌즘을 낳았고 스탈린주의가 대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크리스 하먼의 『패배한 혁명』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당시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역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다.(서문) 다시 말해, 독일혁명이 패배한 원인을 돌아보면서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역사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패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패배의 원인은 좌파 지도부에 있었다. 독일사민당은“백만 당원, 4백50만 유권자, 90개의 일간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스포츠클럽과 음악클럽, 청년조직, 여성조직, 수백 명의 상근 당직자를 거느린” “세계에서 가장 큰 노동자계급 조직이었다.”(27∼8쪽) 그러나 이 사민당 지도부에게 “혁명의 목표는 막연한 미래로 미뤄진 그 무엇”이었으며, “비(非) 혁명적인 일상적 업무가 모든 것이자 존재이유가 된 활동가들”이 “당을 거의 대부분 장악했다.”(29쪽) 바로 기회주의적 노동자 정당 지도부와 노동조합 관료들, 우리사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지배계급의 입장에 서서 노동자 국제주의를 폐기했다. 노동자와 병사들의 열기가 폭발했을 때는 노동자 권력이 아니라 구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이들은 노동자와 병사들이 급진화 되면서 자신들에 대한 지지가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이들은 ‘혁명을 죄악처럼 싫어했다.’(69쪽) 전쟁 지지 정책에 반대하며 사민당에서 떨어져 나온 중도주의적인 독립사민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립사민당이나 사민당 모두 사회주의가 “의회주의적 수단에 의해서 도입될 수 있다”(104쪽)고 주장했다. 그들은 결코 자본주의를 넘어서길 원하지 않았다. 이런 개량주의 정당들이 노동자의 귀와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단절하고, 분출하고 있는 투쟁을 이끌 독립적인 혁명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혁명적 좌파는 소수였고 조직적으로도 취약했다.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3천 명 정도의 조직원을 가지고 있었고, 이보다 더 소수인 국제공산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혁명적 병사들과 무장노동자들을 공동 규율의 자발적 수용에 입각한 하나의 세력으로”(100쪽) 묶어세우기 위해 공산당을 창건한 것은 1918년 12월 말이었다. 봉기가 일어나기 10일 전의 일이다. 공산당은 “응집력 부족,” “미숙함과 경험 부족을 첨예하게 드러냈다.”(108∼9쪽)

사민당의 그럴듯한 말에 마음을 빼앗긴 “완전히 새로운 노동자층을 정치활동에 끌어들이는”데에도 무능력했다.(108쪽) 결국 1919년 1월에 일어난 스파르타쿠스 동맹의 봉기는 사민당 정부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노동자계급은 화해협상의 덫에 걸렸으며, 이에 자신의 힘, 시간, 혁명적 열정이 파괴되는 것을 허용했다. 그 사이에 정부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마음대로 써가며 최종 진압을 준비할 수 있었다.”(132쪽) 저자는 1월 봉기의 교훈을,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평가한다. “강력한 혁명정당을 가졌다면, 베를린 노동자계급은 화해협상의 덫에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다.”(132쪽)

독일의 혁명적 상황은 1923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따라가 보는 것은 독자들이 할 일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에 담긴 반(反) 노동자적 성격에 주목하고, 독일공산당의 정책과 전술에 대한 저자의 평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 *


우리는 이 책 『패배한 혁명』에서 미래에는 패배하지 않기 위한 몇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 번째 교훈은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의 삶의 전반적인 개선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의 틀을 깨지 않고도 구조조정, 비정규직화 같은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대답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가능하지 않다. 절대로. 소수의 노동 관료들을 제외하고는. 『패배한 혁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화를 향한 질서정연한 전진’, ‘헌법에 입각한 평의회의 정착’을 믿었던 사람들은 유럽 전체가 현대 기술의 극악무도한 장치로 무장한 중세적 야만주의에 종속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포위된 러시아 노동자공화국을 구출하기 위한 유럽 혁명으로 떨쳐 일어서기는커녕 유럽 사민주의는 러시아 노동자공화국을 파괴시키려는 세력에게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었다.”(445쪽) 이렇게 역사는 우리에게 계급협조 정책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이런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두 번째 교훈은 이런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단절한 독립적인 혁명정당의 필요성이다. 자본가 정치세력들의 헤게모니 하에 노동자들을 갖다 바치는 역할을 하는 사민주의 세력! 이들이 외치는 ‘진보진영 단결’이니 ‘진보대연합’이니 하는 구호가 세계노동자운동에 얼마나 큰 질곡으로 작용했는지 ‘패배한 독일혁명’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김종원 (사회실천연구소 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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