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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풀이 한판 8] 왜 다시 직권조인의 망령이 부활하나?

Q: 현자지부 전주위원회의 근무형태변경에 대한 직권조인에 이어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의 하이닉스-매그나칩 지회를 돈으로 정리하는 직권조인으로 인해 민주노조운동은 격렬한 내부노선투쟁 -- 직권조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돈으로 민주노조를 정리하는 노선이다 -- 에 휩싸여 있다고 합니다.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뒤흔든 직권조인이란 무엇인지? 왜 잘못된 것인지? 현 시기 자주 발생하는 건 어떤 이유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A: 직권조인이란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위원장의 독단으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법적으론 교섭권과 체결권이 위원장에게 있으므로 하등의 문제가 될 일이 없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직권조인을 어용노조의 상징으로 죄악시 해 왔다. 왜 그럴까? 민주노조운동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라면 민주노조의 정체성으로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 전투성을 꼽는 데에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민주노조의 정체성으로 일컬어지는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 전투성은 몇몇 활동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닌 남한 민주노조운동을 발생케 한 토양 자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


87년 이전 어용노조의 직권조인

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 남한 노조는 군사독재정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관변단체, 사측의 노무관리부서로서의 2중대, 노조위원장의 이익을 위해 조합원의 권리를 팔아먹는 어용노조밖에 없었다. 어용노조는 언제나 직권조인 했다. 조합원들의 민주적 의사를 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조합원의 민주적 권리를 주장하며 직권조인 한 위원장에게 대들다간 해고되거나 오지로 쫓겨 갔다.

따라서 독재정권의 노동자기본권에 대한 탄압, 사측의 무자비한 착취, 정권과 자본에 빌붙어 기생하는 어용노조를 끝장내기 위해선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주성, 어용노조 위원장 개인의 이익보다 조합원들의 권리, 조합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민주성, 정권과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계급성과 전투성을 갖추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건설, 민주노조 사수 투쟁은 정권과 자본의 어떠한 탄압과 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지켜나갔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를 만들 때마다 “민주노조를 포기하면 임금인상이든 고용보장이든 다 들어 준다”는 회유를 받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민주노조는 단호히 거부해 왔다. 민주노조는 일시적인 실리보다 더 중요한 노동자의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소중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죽을 순 있어도 물러설 순 없다”는 각오로 민주노조 사수투쟁을 전개해 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가 열사로 분신 자결하고 감옥에 가고 해고자로 살아가야 했다.

정권과 자본의 회유 공작

정권과 자본은 민주노조를 가장 손쉽게 파괴하기 위해 법적 체결권이 있는 위원장을 회유해 직권조인 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적인 투쟁인 현대중공업의 128일 투쟁도 서태수 위원장이 직권조인하고 도망간 것에서 비롯되었다. 93년 김영삼 정권의 임금가이드라인 탄압에 맞선 현총련 투쟁 당시 의장사업장이었던 현대정공의 김동섭 위원장도 직권조인하고 도망갔다. 직권조인 후 현대공정의 피눈물 나는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굳건히 세웠다. 조합원 대중들의 투쟁의지와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할 수 있을 때에는 직권조인의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민주노조는 타이타닉 마냥 침몰해 사라질 수밖에 없다.

2001년 전국 투쟁을 이끌었던 화섬 3사 중 효성노조는 투쟁에 돌입하기 전 10여 년간을 직권조인의 망령에 시달려야 했다. 화섬 3사 투쟁의 또 다른 핵심사업장인 태광노조도 위원장의 직권조인 한 방으로 몰락했다. 태광노조는 공장점거파업으로 파업현장에서 잠정합의안 찬반 논의를 진행하고 난 후 총회를 실시할 정도로 모범적인 사업장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 부결 후 위원장은 동사무소에 나가 협상한 후 직권조인 했다. 태광의 장기파업은 수습되지 않았고 조합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노조에 등 돌린 분노한 조합원 반대편에는 회사의 노골적인 탄압이 뒤따랐다. 파업대오가 무너진 태광노조는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붕괴되었다.

관료화와 직권조인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정권과 자본의 직권조인 작업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오히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의 관료화를 획책하는 방향으로 탄압과 회유를 강화해 왔다. 반면 노동조합은 민주노조운동 ‘위기론’이 대두됐다. 민주노조운동 위기론의 한 부분이 노동조합 민주성의 위기다. 투쟁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동자 민주주의는 20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아니 민주노조운동이 후퇴해 온 것만큼 오히려 후퇴해 왔다.

07년 현자지부 전주위원회의 직권조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무형태변경에 대한 잠정합의안이 1차에서 56% 부결, 2차에서 64%로 부결나자 김명선 지회장은 잠정합의안을 투표에 부치기보다 직권조인 해버렸다. 김명선은 직권조인과 더불어 불신임하려면 하라는 똥배짱을 부렸다. 과거 직권조인하고 부끄러워 도망간 위원장들과 비교해 볼 때 이는 상상도 못할 후안무치한 행위다. 과거 직권조인 한 위원장은 어용으로 규정되어 민주노조운동에서 매장되는 것은 물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살아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직권조인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직권조인 한다 해도 불신임 투표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지회장 신분 유지와 더불어 직권조인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파렴치한 꼼수를 쓸 정도로 타락한 것이다. 최근 직권조인 후 불신임투쟁에서 조합원들이 승리한 사례가 거의 없다. 불신임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조합원 2/3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규약 개정투쟁 때 지도부가 제출한 “조합원 2/3 찬성으로 불신임 한다”는 원안에 대해 “1/2 찬성으로 불신임 한다”로 낮출 것을 내용으로 한 수정안 발의를 했으나 패배했다. 민주노조운동이 후퇴하면서 직권조인 하고 불신임으로 문제해결하려고 하는 위원장, 지부장, 지회장이 늘어간다면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는 암흑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노사협조주의와의 투쟁과 노동자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직권조인은 외형적으로 두 가지 양상을 띤다. 첫째는 격렬한 계급투쟁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는 직권조인, 둘째는 조합원 투쟁동력의 부재를 핑계로 하는 직권조인이다. 둘의 유형은 다르지만 조합원들을 믿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87년 이후 90년대 초반까지는 첫째 유형의 직권조인이 90년대 중반 이후엔 후자의 직권조인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불신임투쟁에 승리한다고 해서 이미 중단된 파업투쟁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노조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업투쟁동력을 가졌던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당시 김광식 위원장은 “조합원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직권조인 했을 때 김대중 정권과 현자자본의 심장을 겨누었던 공장점거파업은 아침 산안개 흩어지듯이 사라졌고 “재파업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양정벌에 맴돌았다. 현장은 쑥대밭이 되었고 재협상, 직권조인, 총사퇴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현장이 쑥대밭 되는 와중에 ‘자본의 질서’는 되찾아졌다.

투쟁동력이 낮은 사업장은 민주파 위원장이 당선될 때 자본은 “직권조인 할 권한을 가져오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겠다”고 언제나 요구한다. 파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직권조인 할 것인가의 딜레마에 빠진 위원장 중 상당수는 투쟁동력을 핑계로 직권조인을 선택했고 조합원들은 그럴 때마다 또 한번의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2001년 총파업 전까지 장기간 직권조인의 망령에 시달렸던 효성노조가 이런 경우였다.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으로 사라지던 직권조인이 현 시기에 다시 고개를 쳐드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후퇴의 반증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민주노조 파괴를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직권조인에 대해 정권은 법적 권한을 강화해 주고 자본은 집요한 회유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객관적인 이유로 직권조인이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조합 관료화의 진전, 강화가 직권조인의 핵심 원인이다.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직권조인을 사전 예방하는 길은 노조 관료화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밖에 없다. 이는 정치적으론 노사협조주의와 내부투쟁를 강화하는 것, 조직적으론 노동자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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