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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2007년 대선강령' 비판

-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배제하는 사민주의 강령

민주노동당 내 전진그룹은 당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력 중 하나다. 당내 최대 다수파는 자민통 계열이 점하고 있지만, 07년 대선 후보로 나선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3인이 모두 친 전진그룹 후보라는 점에서 적어도 올해 대선 국면에 한정해서만큼은 전진이 당내 주류 중의 주류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노당 3인 후보와 전진의 대선강령

따라서 전진이 지난 5월 중순 제출한 <2007년 대선강령>은 단순히 당내 한 그룹의 입장을 넘어서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할 후보들 입장에서도 전진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선거 공약을 확정하는 데서 전진의 대선강령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장노동자>가 전진의 대선강령을 검토하려고 하는 것은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에 미칠 전진의 이 같은 영향력 때문이다.

전진은 ‘사회주의’를 자임하고 있는 세력이다. 따라서 전진의 강령을 검토하는 일차적인 기준도 강령이 과연 사회주의 이행을 올바로 담보하고 있느냐 여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전진은 작년 말부터 민노당 대선 전략의 일환으로 제기된 저 악명 높은 사회연대전략에 적극 찬동함으로써 자신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민주의 세력임을 이미 드러낸 바 있다.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인정, 존치하는 전제 위에서 정규직 책임론을 조장하고 비정규직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며 계급투쟁 대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계급협조를 지향하는 이 사회연대전략이 서유럽 사민주의의 대표적인 노동 정책이라는 것을 이제 선진 노동자들은 엔간하면 다 알고 있다.

그러면 이번 전진의 대선강령은 그 같은 노사협조적인 사민주의 정책과 철저히 결별하고, 진실로 사회주의적인 정책과 요구안을 담아내고 있는가?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열어주고 노동자해방 세상으로 이행의 방도를 제시하고 있는가?

“민노당 후보가 당선되면” 착수할 정책들

먼저, 30여 쪽에 이르는 문서를 훑어보면,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이 철저히 빠져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강령의 모든 조항이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되면” 착수할 정책들로 되어 있다. 대중운동과 완전히 단절된 선거강령이다. 선거 강령 ․ 공약이 현 시기 노동자투쟁의 과제와 무관하게 그저 ‘바람직한 정책’을 나열한 것 이상이 아니다. 대중행동을 조직하는 요구안이 아니라, 정부를 떠맡고 나면 그때서야 시행할 수 있는, 즉 대중행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부 정책과제의 형태로 제출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어떤 투쟁도, 어떤 행동도 제시, 호소하지 않는 강령이다. 노동자들은 후보에게 표를 찍어주고 당선되기만을 바라면 된다.

‘선거’ 강령이라서 그런가? 사회주의자들에게 선거강령 따로 있고 대중행동강령 따로 있지 않다. 노동자 대중을 행동으로 나서게 하는 투쟁 요구안을 담지 않는 선거강령은 사회주의자들의 선거강령이 될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의 강령은 그것이 선거 강령이라 하더라도 행동의 지침이 되어주지 못하는 강령, 전시용 강령이라면 박제화 된 죽은 강령일 수밖에 없다. 대중행동을 배제하는 선거강령이라면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그것은 부르주아적인 선거강령이다.

“이행적 요구”?

전진 대선강령의 총론 부분을 보면, “당면의 개별 정책과 당 강령 사이의 가교를 놓은 이행적 요구들을 축약”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또 “새 세상의 현 시기 가장 구체적인 상과 그 곳으로 나아갈 방도를 제출하는 것이 금번 선거 강령의 핵심”이라고 씌어져 있다. 그러나 그 “이행적 요구들”과 “새 세상으로 나아갈 방도”는 강령의 구체적 조항들을 놓고 볼 때 모두가 대중행동의 매개를 통해서가 아니라 후보가 당선되고 나서 정부 정책으로 실현될 것들이다. 그래서 실제 강령 조항들은 새 세상으로 나아갈 이행적 요구와 방도가 되기보다는 기존 부르주아 헌법의 틀과 의회 절차 안에서 행해질 입법 조처의 형태로 제출되어 있어, 새 세상은커녕 낡은 자본가 세상을 재생산할 뿐인 의회주의 노선과 정신으로 일관해 있다.

이러한 의회주의 노선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진의 대선강령은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배제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자본가의 소유권을 침해해 들어갈 이행적 요구와 방도를 실제로 담아낼 수가 없으며, 단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정책들을 전시용으로 늘어놓는, 즉 정책 조항들 간의 어떠한 상호연관과 내적 논리도 없이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마는 죽은 강령이 되어버렸다. 전진의 강령은 새 세상으로의 이행이 목표임을 선언하고 있지만, 그러한 목표가 현재의 계급투쟁에서 어떻게 행동으로 추구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책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행적 요구들을 축약”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그러한 이행적 방책들은 30쪽에 이르는 문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기피하는 의회 백치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철폐”가 없는 강령

강령의 구체 조항들을 검토함으로써 강령이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실제로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일종의 노동의제를 다룬 장이라고 할 수 있는 “1장. 양극화에 대한 긴급 처방을 제시한다”를 보면,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기본권, 최저임금제, 일자리 창출 등의 현안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처방”들을 뜯어보면 모두 민노당 집권 후 국회 입법 수단에 의해 해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비정규직 철폐” 요구가 없고 모든 것이 비정규직 관련법 문제로 해소되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법을 18대 국회에서 원점부터 재논의 하되 최종적으로 민중이 결정하게 한다. 즉, 복수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 비정규직 개악법안, 즉 “비정규직 보호입법”은 즉각 철폐되어야 한다. 이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비정규직 철폐!” 요구가 법안 문제로 환원될 수는 없다. 현재 “비정규직 철폐!” 요구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일반화된 요구가 되어 있다. 그 요구는 비정규 개악법을 철폐하고, “기간제 사용 사유의 엄격한 제한, 기간제 노동자의 시간임금 역차별, ,... 기간제 노동자의 자동적인 정규직 전환, 파견근로제의 철폐, 원청 기업의 사용자로서의 책임 강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포함하는 법안을 도입하는 문제로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요구이다. 그러한 법안을 통해 남한 자본주의 체제가 쏟아내고 있는 비정규직 양산을 저지, 완화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되지는 못한다. 비정규직 양산의 완화, 비정규직 차별 철폐로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요구의 수준이 낮춰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설사 법안 도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위로부터 주어지는 개량으로 그칠 뿐, “새 세상으로 나아갈 이행적 요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본가 체제를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비정규직 철폐가 가능하지 않다는, 따라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서는 자본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확인한다. 그러므로 “이행적 요구”이려면, 국회를 통한 위로부터의 비정규직 입법조처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고 이 대중행동이 자본가 체제에 대한 투쟁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급투쟁 요구여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는 자신의 현안 요구를 걸고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현재 자본가 체제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결집시키고 있고, 의회에서의 비정규 권리입법을 강제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전진의 대선강령은 이와 같이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강령에 포함시키기를 거부함으로써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배제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비정규 권리입법 요구로 해소하지 말라! 계급투쟁의 확대 강화를 차단하지 말라! 대중행동을 국회 입법활동을 위한 압력 수단으로 제한시키지 말라!

구조조정 분쇄 등 당면 투쟁과 무관한 강령

“비정규직 철폐!”와 함께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일반화된 슬로건으로 자리 잡은 “구조조정 분쇄!”에 대해 전진의 대선강령은 어떠한 요구와 정책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놀라지 말라. 강령 어디에도 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대해 언급조차 없다. “양극화에 대한 긴급처방을 제시한다”고 하면서도 이 양극화의 최대 주범 중 하나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대해 ‘처방’은커녕 구조조정의 ‘구’자도, 정리해고의 ‘정’자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강령이 대중투쟁을 배제하는 철두철미 의회주의 노선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 의회 활동을 통해서는 구조조정을 분쇄할 수도 없고 정리해고를 저지할 수도 없음을 스스로 토로하고 있는 것인가? 정리해고도 저지할 방책도 없이 어떻게 “새 세상으로 이행”하겠다는 것인가? 이 얼마나,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거리가 먼 강령인가!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거 창출”해 줄 테니 그것을 믿고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맞서는 투쟁을 포기하라는 이야기인가?

“새 세상으로 나아갈” 이행의 담보는 당면 투쟁과 무관하게 확보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조정 분쇄투쟁 같은 당면투쟁을 확대 강화시키는 방향의 요구를 통해서 이행의 고리를 찾아야 한다.

노동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자본에 의해 항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정리해고와 계약해지, 그리고 상시화된 구조조정 공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 투쟁들을 전투적 혁명적 방식으로 조직하고 지도할 전술 지침과 요구안이 필요하다. 이 투쟁들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노동자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가게 할 매개적 이행적 요구강령이 필요하다. 여기서 ‘노동자 생산 통제’와 ‘기업비밀 철폐’ 요구가 제기된다. 자본가들의 ‘경영권 행사’에 따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계획에 대한 체계적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생산통제권과 현장권력을 쟁취해야 한다. 또한 자본가들이 내세우는 구조조정 이유에 대한 노동자의 조사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노동자들로 구성된 특별 통제위원회를 설립하여 회사의 회계장부와 영업실적 공개를 요구하고 조사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업비밀 철폐를 당면의 실천과제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통제와 같은 이행적 요구들을 배제하는 강령

이 같은 노동자 통제체제와 현장권력은 공장과 사업장 내 이중권력을 이룬다. 자본의 경영권/소유권을 침해해 들어감으로써 누가 공장의 주인인가를 제기한다. 노동자들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앉아서 그냥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체제와 현장권력이 와해되어 자본가의 지배권 회복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멈춰서 있을 수가 없으며, 즉각 전 산업과 사회로 확산되고 정치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전진의 강령이 양극화에 대한 처방을 말하면서 정작 양극화의 최대 주범 중 하나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대해 그 어떤 대응방책과 요구안도 제시하기를 기피하는 데는 바로 노동자 통제/ 영업비밀 철폐와 같은 이행적 요구들이 전진의 의회주의 노선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사정 때문이다.

한편 이 같은 현실 투쟁의 필연적 전개 방향으로부터 도출되는 이행적 방책에 대해서는 회피하면서 대신 그 공백을 “연대의 사회”라는 공상적인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것으로 메우려 한다. “연대의 사회는 자본주의 자체의 극복을 위한 이행의 역량과 의지를 잠재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산별노조가 이 “연대의 사회”를 예시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산업노동조합은 이러한 권한[산별협약에 따르는 노동조합 권한들]을 바탕으로 임금, 숙련,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의 3대 연대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산별노조가 이행의 지렛대로, 산별협약에 기초한 사회적 노동정책이 사실상 이행적 방책, 이행적 요구로 제시되고 있다.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은 끼일 자리가 없다. 자본가의 경영권과 소유권에 도전하고 침해해 들어가는 생산통제권/ 현장권력 쟁취투쟁은 “연대의 사회”를 구현하는 산별노조와 산별협약의 안착을 교란시키는 불청객이다.

공공성 확대?

경제 강령 또한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배제하고 있는 점에서 노동 의제와 한 치의 차이도 없다. 따라서 행동의 지침이 될 이행적 요구가 철저히 빠져 있는 것도 똑같다. 그 때문에 노동 공약과 경제 공약 간에는 아무 상호연관이 없이 그냥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경제 강령의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4장. 경제의 미래는 공공성의 확대에 달려 있다”를 보면, “노동자, 민중이 주체로서 참여하지 못하고 모든 경제운영이 자본주의 사유화 논리, 시장만능주의 경쟁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민주성 원리이며, 사회경제적 공공성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남한 경제의 문제가 원리 대 원리의 문제로 추상화되고 있다. 대안이 대중행동의 방책/ 요구안으로 제출되지 않고 이상적인 상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4-1. 기간산업의 공기업화를 통해 공적소유를 확대하고, 공공성을 담보한다” 항목을 보면, “전력, 수도, 에너지, 통신, 교통 등의 기간산업(네트워크 산업)은 .... 공기업으로 운영한다. 현재 공기업으로 운영 중인 기관들은 당연히 공기업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며, KT와 같이 현재는 사유화된 과거 공기업들도 다시 공기업화를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한통, 발전, 철도 등에서 벌어진 민영화/사유화와 해외 매각, 공사화, 외주화 등, 그리고 이에 맞선 민영화 저지투쟁, 매각 저지투쟁, 공사화 ․ 외주화 반대투쟁, 구조조정 반대투쟁의 기억이 여기서는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공성 확대”라는 지극히 평화적인 문투로 ‘공기업 유지’와 ‘다시 공기업화 추진’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계급투쟁의 맥락을 잃은 공기업화 요구

현 시기에 기간산업의 국유화 강령은 이러한 계급투쟁의 교훈들을 담아내야 한다. 민영화 저지, 매각 저지, 공사화 ․ 외주화 반대 같은 대중투쟁 요구들과의 연관 속에서 제출될 때 기간산업 국유화 요구는 계급투쟁적 맥락을 가질 수 있고, 이행적 요구가 될 수 있다.

단순히 공적 자금으로 지분 매수를 통해 정부 지분을 확대하는 방식의 공기업화 추진은 해당 산업 노동자를 종업원으로 간주하는 정부관료의 정책방침이지 해당 산업에 대한 통제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의 행동강령이 아니다. 현재 공공부문 노조 지도부들이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막연한 구호를 가지고서 마치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이행적 요구안인 것처럼 자기 최면을 걸고 있지만, 실제로 이 구호가 계급투쟁에서 하는 역할은 정반대다. 구조조정 분쇄와 외주화 저지 등 당면투쟁을 회피하는 면피용 구호가 되어 절박한 투쟁 요구들을 주변화 시키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조합 관료들에게 복무한다. 전진의 ‘공공성 확대’ 강령도 정확히 이런 맥락 속에 있다. 기간산업에 대한 이행적 요구는 ‘노동자 통제 하의 국유화’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

재벌 몰수 대신 부채출자전환을 통한 공기업 전환

한편 남한 경제에서 상시적인 현안 문제가 되고 있는 재벌에 대한 강령 조항을 보면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배제하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난다. “부정과 비리가 드러난 재벌 지배 대기업은 부채출자전환 등의 방식을 통해 공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강령의 총론에서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이행을 담보하겠다고 하면서 구체 조항에서는 단지 부정 비리 재벌 기업만을, 그것도 몰수/국유화가 아니라 “부채출자전환 등의 방식을 통해 공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강령에서 어떻게든 배제하려고 하다보니 자본주의 극복과 사회주의 이행이 재벌 앞에서 완전히 말장난으로 전락하고 있는 대목이다. 재벌 문제와 관련하여 이행적 요구안이 되려면 삼성, 현대․ 기아차, 엘지, SK를 비롯한 “10대 재벌 대기업들의 몰수/ 국유화”로 정확히 정식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일 때만이 재벌 대기업들에서 노동자 통제권 쟁취투쟁을 통해 노동자 경영체제로 이행하는 투쟁 요구와 맞물릴 수 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노동의제와 경제 강령이 아무 상호연관도 없는 별개의 요구들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내적 논리를 갖는 요구체계를 이룸으로써 자본주의를 침해해 들어가고 노동자권력 쟁취투쟁으로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사민주의 세력

이상의 검토에서 보듯, 전진의 대선강령은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현 시기 정세에 대한 인식을 결여 혹은 회피하고 있고, 따라서 정세인식에 기초를 두지 못하다 보니 정세가 제기하는 투쟁 과제들과 완전히 괴리된 채 추상적인 정책들의 나열로 일관하는 전시용 강령으로 전락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진의 강령은 전진의 뿌리 깊은 의회주의 노선 때문에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분쇄 등 현재의 당면 투쟁과 전진이 말하는 “새 세상”이라는 목표 사이에 아무 연관도 가질 수가 없는 강령이 되어버렸다. 부르주아 헌법 질서와 의회 절차 안에서가 아니면 어떠한 실현 방법도 갖지 못하는 전진의 대선강령은 전진이 의심할 바 없이 사민주의 세력임을 말해주고 있다.

양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