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3호]‘여전히’ 원칙을 저버리고 오락가락하는 사노련

그동안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에는 공식적인 사회주의정당 건설계획이 없었는데, 지난 3월 7일 사노련이 총회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 전면화를 위한 정치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지금의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는 질과 양에서 부족한 현재의 당건설역량을 어떻게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정치조직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이다. 따라서 「정치방침」에 대한 판단도 이러한 핵심적인 문제의식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이에 대한 내용은 아니며, 대신 「정치방침」이 담고 있는 기회주의적 측면과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

「정치방침」에서도 반복되는 사노련의 기회주의

사노련의 기회주의적 면모에 대한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해방>지는 지난 42호에서 “어제까지는 중도주의 조직이라고 비판했던 노동자의힘(현재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오늘은 왜 갑자기 사회주의당 건설의 주체로 대접하는가?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그것이 기회주의이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정치방침」은 심각하게도 우리가 비판했던 내용, 즉 관료주의세력인 ‘준비모임’ 측과의 공동활동을 여전히 당건설활동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사노련은 출범 때부터 노동자의힘과 해방연대를 “혁명주의와 개량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도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비판해왔다. 「정치방침」은 그동안의 중도주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사노련의 공식적인 문건 중 처음으로 다소 길게 중도주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중도주의 세력은 입으로는 (‘사회주의’와-인용자) ‘혁명’을 말하지만, 강령에서의 모호함으로 노동자계급 해방투쟁의 근본 방향을 혼란스럽게 하며, 실천에서의 불철저함으로 노동자투쟁이 단순한 전투성을 넘어 노동자권력 쟁취를 향해 힘차게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중도주의 세력은 모호한 정치노선 때문에 ~ 결국 자신들과 결합된 현장투사들이 조합주의로 퇴행하고 나아가 노동조합 좌파관료로 타락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정치방침」은 민투위사건과 ‘준비모임’을 의식한 듯 다음같이 말한다.

“게다가 중도주의 세력은 노동조합 좌파관료들을 철저하게 교정해 내지도 못하고 단호하게 축출해 내지도 못하면서, 노동조합 좌파관료들이 중요한 노동자투쟁에서 거듭 결정적인 배신을 저지르는데도 여전히 전투적 이미지를 갖고 노동자들 속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좌익적 포장을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정치방침」이 모순적인 것은, 준비모임의 관료주의적 타락을 이토록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이미 시작된 (준비모임과의 공동-인용자)토론회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정치방침」의 주장대로 토론회는 “지금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투사들을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투쟁의 주체로 조직하는 데서 매우 필요한 형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왜 이러한 종류의 토론회를 준비모임과 함께 하느냐이다.

사노련이 토론회를 진정으로 당건설운동의 주체를 조직하는 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면, 이를 관료주의세력과 함께 할 수는 없다. 사노련 주장대로라면 토론회를 함께 주최하는 것은 당건설을 위한 ‘조직화’의 공동주체로 나서는 것이기도 한데, 어떻게 관료주의세력이 이런 조직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정치방침」에서의 중도주의 비판의 일관된 결론은 준비모임과의 공동활동 거부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방침」은 스스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역행한다. 이것이 바로 말과 행동이 다른 기회주의이다.

실천적으로 무의미하고 내용적으로 빈곤한 ‘중도주의 비판’

사노련이 보여주고 있는 기회주의적 면모는 그들의 ‘중도주의 비판’이 실제의 활동에 있어서는 어떤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중도주의’는 실천적으로 무의미한, 죽은 ‘말’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현재 사노련의 중도주의 개념은 아래와 같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첫째, 「정치방침」은 중도주의의 필연적 결론이 관료주의적 타락이라고 말하는데, 노힘의 관료주의적 타락은 민투위사건이 증명하는 것이지만 해방연대의 관료주의적 타락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이 지점에서 중도주의 개념의 무분별함이 드러난다.

둘째, 여전히 중도주의 개념의 내용 자체가 불분명하다. 중도주의 개념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먼저 이에 대비되는 ‘혁명적 사회주의’의 내용과 실천이 과연 무엇인지 객관화가 돼야할 텐데, 사노련은 이점에서 특별히 역할을 한 바가 없다.

셋째, 준비모임 같은 관료주의세력의 변질과 타락의 원인을 단순히 “모호한 정치노선”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현실적 힘을 무시한 관념적 파악이다. 여기서 관료주의적 타락으로 이끄는 현실적 힘이란 물질적 이해관계와의 유착과 어긋난 실천들의 축적, 삐뚤어진 활동기풍, 전체 계급운동의 퇴보 등을 말한다. 반대로 모호한 정치노선이야말로 이러한 현실적 조건들의 산물일 수 있으며, 관료주의 문제가 노선만 교정한다고 해결될 리도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종합해볼 때 이르는 결론은, 사노련이 말하는 중도주의 개념이란 실상은 자신들을 구분시키고 제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네거티브적이고 주관적인 수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도주의 개념은 사회주의자들의 공동활동과 질적 발전을 자극하는 생산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반대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의 실질적 전진을 위해서라도 중도주의 비판은 쇄신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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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 사노준 , 중도주의 , 공동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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