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5호]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의 지리멸렬함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

사회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활동가들은, 현재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이 기세 높게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무언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의 핵심을 찌르는 활동과는 한참 거리가 먼 활동인 것도 분명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곳곳에서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의 전면화’라는 기치가 외쳐지고 있지만, 실제 전개되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활동 내용은 이 기치가 외쳐지기 전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가까운 길을 놓아두고 먼 길을 돌아가는 사회주의자들

해방연대(준)은 수년 전부터 반복하여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위해서는 조합주의적, 경험주의적 활동으로부터 탈피하여 실제로 사회주의적 실천을 강화하여야 함을 강조하여 왔다.

그 이유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조합주의적, 경험주의적 활동으로의 후퇴가 오랜 기간 심각하게 진행되어 이의 극복이 몇 번의 결의와 각오로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로 관성화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부터가 이점을 사회주의활동 강화를 결의한 이후,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체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1년간 공유가 확대되어 생각만으로 본다면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이 지점 이후부터이다.

그러면 사회주의적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실제로 행동이 그렇게 되고 있는가? 당건설을 위한 사회주의적 실천은 실제로 본격화되고 있는가? 이제는 사회주의적 실천이 본격화되어 그 실천의 구체적 방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상태이다. 1년 전과 비교하여 활동지향은 사회주의적 활동강화로 변화하였지만, 실제 활동이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한계는 여전히 한계로 남아 있을 뿐이다. 활동은 여전히 조합주의적 활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당면투쟁은 다양한 정치세력을 포괄하는 공투체활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활동 방식이 무의미하거나 오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불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은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사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조직들이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공투체 활동이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당면정세에 긴급히 대응하기 위해 공투체 활동은 필요하다.

문제는 이 공투체 활동이 필요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이 공투체 수준을 넘는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이다. 무슨 시도와 고민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사실상 공투체 활동이 전부인 것이 실정이다.

각각의 사회주의조직들은 과거처럼 자신들의 기관지를 통해 사회주의적 선전과 선동을 벌이고,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수년 전에도 했던 일이다.

그러면 사회주의적인 정치투쟁은 실제 어떻게 하고 있는가? 여기서부터는 빈 공간으로 남는다. ‘이것은 역량상 당장 하기 힘들다. 그래서 다음을 기다리며 공투체수준 활동에 머무른다.’ 이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실제 상황이다.

해방연대(준)이 고민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의 돌파이다. 역량의 부족을 이유로 이를 정면돌파하지 않으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사회주의 역량은 결코 강화되지 않는다.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역량의 부족 때문에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갖고 있는 역량을 규합하여 작더라도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을 당장 전개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만 사회주의역량이 확대되어 앞으로 실제로 대중적인 사회주의적 정치실천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진지하게 시도하고 실천할 때. 왜 사회주의자들이 통일되어야 하는지가 사회주의자들의 머릿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절감되고, 또 사회주의활동 강화에 대한 사회주의자들과 변혁적 활동가들의 고민이 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조합주의적이고 공투체 수준의 활동은 현재의 조건에서도 당장 가능하고 편할지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역량은 결코 강화되지도 않고 사회주의세력의 대중적 영향력도 결코 강화되지 않는다.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토대 역시 강화되지 않는다. 조합주의적이고 공투체수준의 활동이 반복될 뿐이다.

이 점에서 현재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은 사회주의정당 건설로 향하는 가까운 길을 놓아두고 현실의 한계에 안주하며 먼 길을 돌아가는 격이고, 그만큼 역량은 낭비되고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의 실천이 늦추어지면 늦추어지는 만큼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시기도 늦추어진다.

우리가, 초기에는 소규모일지라도 사회주의정치실천단을 사회주의자들이 구성할 것을 제안한 것은 이러한 고민과 문제의식 때문이었고, 이것이 곧바로 성사되지 않는 조건에서 이런 고민을 말로만 끝내지 않고 사회주의정치실천의 날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관료주의적 변질과 단호히 단절하지 않으면서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항아리에 물을 담으려면 먼저 그 항아리가 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항아리가 새면 물을 아무리 부어도 물은 그 안에 차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이다. 이 말은 관료주의적 변질과 단호히 단절하지 않으면서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에 반성적 교훈을 반영하지 못하는 사회주의는 대중의 동의와 감동을 끌어낼 수 없다. 복잡한 논의를 하지 않더라도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핵심적인 이유는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되어 관료독재가 출현하고 이 관료독재가 노동자계급의 공산주의적 지향을 왜곡, 억압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안적인 사회주의상의 핵심중의 핵심은 반 관료주의, 노동자민주주의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운동이 무슨 제도를 도입하는 운동이 아니라 계급해방, 인간해방운동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운동과정에서 끊임없이 관료주의와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노동자계급을 배신하고 있는 관료주의적 변질과 단호히 단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주의정당 건설 운운하며 이의 한 주체를 자임하고 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고 있다.

이들은 사회주의정당 운운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이런 세력을 그 내부에 안고 출발하는 사회주의정당은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하더라도, 미래를 볼 것도 없이 이미 현재에 실패한 사회주의정당이다.

해방연대가 2005년 이후, 민투위문제 해결을 ‘노동자의 힘’에게 요청하고 결단을 촉구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은 충분한 시간과 계기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이를 회피하였다.

이미 「노동자의 힘의 답변에 대한 입장」(2008.10.30)에서 밝혔듯이 “노동자의 힘은 민투위 소속 회원들의 징계라는 내부혁신을 통해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의 주체로 진정성 있게 서라는 동지적 충고를 무시하고 해당관련 회원들의 징계를 회피함으로써 운동적으로 부패한 이들과 자신 사이에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어떻게든 이들을 보호하고 이들과 같이 하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름만 바꾼 채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의 한 주체를 자임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이들이 당건설의 주체자격이 없다고 규정하였다. 이 입장은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다.

계급해방, 인간해방을 사회주의자연하는 장식품쯤으로 생각하는 행세식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왜 사노준(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이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고 당건설을 이미 일정에 올린 조직임에도 조직에 활력이 없는지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사노준이 이 상태로 간다면 사노준은 해방의 주체가 아니라 해방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사노준은 사회주의정당건설을 말하기 전에 자기혁명부터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작년 11월 22일자 「해방」39호의 기사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의 실질적 전진을 위하여」에서 이미 밝혔듯이 우리는 작년에 조직적 결정에 따라 진지하게 사노련에 공동활동을 제안한 바 있는데, 사노련이 우리의 공동활동제안의 핵심(공동이론지 발간, 사회주의정치실천단 구성)을 대부분 수용하지 않아 공동활동이 성사되지 않았다. 같은 기사에서 밝혔듯이 “아직도 우리는 사노련이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분명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작년에 공동활동을 제안하고 대화를 진행하다가 중도에 공동활동 추진을 중단하는 경험을 거치면서 우리는 사노련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부터 명확히 정리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공동활동과 관련한 대화는 피곤함의 연속일 뿐,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없다는 실천적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결론은 이후 대략 6개월이 경과되면서 더욱더 강화되었다. 최근 「해방」지의 실명 기사를 통한 회원들의 일련의 사노련 비판은 우리의 이러한 입장의 표출이다. 우리는 사노련의 무원칙한 기회주의적 행보와, 이것이 어떤 문제점을 갖는지에 대한 자각 자체의 결여를 충분히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노련의 ‘노동자의 힘’에 대한 입장이 탄압 사태 이후, ‘사회주의자 선언운동’을 제안할 때부터 이미 변화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를 가장 명확하게 확인해준 것은 양효식(이하 존칭 생략)의 「당건설투쟁전술결의(안)」이다.

이 글에서 양효식은 “정치방침 초안(이하 초안)은 사실상 사노련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 우리가 주관적으로 분류하고 있는, 그리고 아직 대다수 선진노동자들과 계급투사들 사이에서 객관화되지 못한 ‘혁명적 사회주의 대 중도주의’라는 구도를 들이미는 것으로 그러한 태도를 정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태도는 종파적 고립주의를 가져올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 군더더기를 빼면 사노준과 같이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분명한 입장 선회인데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이글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장점은 갖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오히려 혼란스럽고 애매한 것은 사노련 총회에서 채택된 다수파의 안이다. 이 안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사노련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아직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거나, 자신들의 입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거나이다.

이미 회원들의 기사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개진하였기 때문에 이를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사노련이 사회주의조직다운 언행일치를 보여주고 자신과 다른 동지들에게 솔직해졌으면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사노련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하고 사노련과 어떤 공동활동이 가능한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할 것이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할 것이다.

사노련은 소부르주아세력처럼 갈팡질팡 동요하고 있고 언행불일치 때문에 속물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강령토론을 우리 못지않게 강조하던 사노련이 자신의 평소의 말과는 달리, 해방연대(준)의 강령초안이 공개된 후, 스탈린주의자들조차 의견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3개월여 동안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고 있는 것이 소종파정치에 깊숙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닌지, 진정성이 우리 회원들 사이에서 의심받고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이런 내용을 기관지에 싣는 것은 기관지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솔직히 전달하는 것이 뒤에서 비생산적인 억측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사회주의자다운 행동인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노련과의 공동활동 추진을 폐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가 불분명한 사노련에게 공동활동을 다시 제안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화과정에서 불신만을 키우고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사노련의 행보를 지켜볼 생각이다.

공동활동에 난관을 조성하는 주관주의적이고 소아적인, 자기중심주의적인 사노련의 모습에 대한 경험은 작년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다시 접할 생각이 없다. 공동활동은 이런 양태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사노련의 자각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극복된 후에나 실질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사회주의자들부터 문화혁명해야

오늘 글은 우리가 사회주의자들에게 공동활동을 새롭게 제안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이런 성격의 글이 아니라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이 겉돌고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를 비판적으로 규명하는 일종의 운동문화비평적 성격의 글이다. 새로운 제안은 다른 기회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제안을 지금과 같은 주체적 조건, 문화적 조건에서 한들, 공동활동이 성공하기 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우려이다.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겠다고 말은 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의 진정성은 매우 낮은 수준에 있다는 것이 현 실정에 가깝다.

사회주의적 실천은 전혀 강화되지 않고 있는데, 어떤 토대에서 사회주의정당이 건설될 수 있겠는가? 조합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라는 옷을 형식적으로 걸친다고 사회주의정당이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자 없는 사회주의정당이 가능한가?

관료주의와 야합하는 자들이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운운하면 그 사회주의정당 건설운동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들과 함께 해서 건설되는 정당은 관료주의적으로 변질된 조합주의정당이지, 결코 반 관료주의투쟁을 전개하는 사회주의정당이 될 수 없다.

사회전체의 문화혁명을 말하기 전에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먼저 문화혁명이 선행되어야 할 때이다.

진지하게 사회주의적 실천을 시도하는 것, 소부르주아적인 자기중심성과 종파주의를 타파하고 노동자계급적인 진정성을 갖는 것, 사회주의자답게 언행을 일치시키는 것, 말로만 노동자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변질과 비타협적으로 철저히 투쟁하는 것 등등, 사회주의자들이 자기혁명, 문화혁명을 해야 할 때이다. 이것만이 겉도는 당건설운동, 지지부진한 당건설운동의 극복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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