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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칼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 - 재벌들의 세습놀음

경상련이 어울리는 전경련

재벌들의 공식적인 이익단체가 전경련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본래 명칭인데, 사실 10년 전에 벌써 이름이 바뀌어야 마땅했다. 이미 2009년 현재 10대 재벌의 총수들은 롯데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상속받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나마 롯데그룹도 쉰 살이 넘은 아들이 그룹부회장을 하고 있으니, 상속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재벌들의 사교클럽 역할도 하는 전경련은 이제 전국상속인연합회로 이름이 바뀌어야 마땅하다. 더욱이 2세 경영을 넘어서 너도나도 3세 세습으로 가고 있으니 전경련 산하단체인 경총을 폐하고 세총(세습경영자총연합회)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예로부터 세습은 계급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신분제가 철폐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가계급이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습이다. 그래서 창업을 하여 악전고투 끝에 기업공개(상장)를 하여 주식대박을 맞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50대재벌로 뛰어오르는 경영의 귀재들이 만드는 성공시대는 하늘의 별따기인 만큼 장안의 화제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1920년대 부자들의 계보를 연구한 J.W 밀즈는 백만장자들의 70%이상이 상속을 통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미국에서 가장 벼락부자가 많이 나왔다는 시절에도 그 지경이었으니, 지금은 99%이상이 상속으로 대자본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습이 원칙과 기강이 된 재벌들

한국에서 재벌은 한국경제를 사실상 쥐고 있는 몇 안 되는 집안들의 대명사다. 이들은 수천에서 수십만의 피고용인들과 딸린 식구들의 경제적 삶에 송두리째 영향을 주는 존재들이다. 한국의 고유어 중에 영어백과사전에 올라있는 단어는 불과 몇 가지인데, \"재벌\"이라는 말이 김치, 한글과 나란히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재벌이 고유명사로 쓰인 것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미쓰이나 미쓰비시 같은 재벌들은 상사들이 혈연적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창업주의 기업에서 싹수 있는 종업원에게 사업자금을 대주고, 그들이 크면 영업, 자금 등으로 엮이는 그들 나름의 전통으로 뭉쳐진 인맥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세습을 하고 계열사 사장단의 상당수를 가족으로 채우는 경우는 없다.

수십 개 대기업군의 경영을 지휘하는 그룹총수라는 지위는 중요한 직책이고 막강 한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중요한 직책의 후임자가 조직 내에서 길러지고, 전임자의 판단이 결정적이지만, 그래도 선발과 선택의 과정으로 후임자가 내정되는 경우는 가뭄에 콩나물 나듯 일어난다. 창업주가 전문경영인에게 총수자리를 물려준 경우는 한때 미원으로 알려진 대상그룹이 있고, 지금은 현대에 인수되었지만 기아그룹이 있었다. 나머지는 모조리 못났든 잘났든 자기 자식에게 대물림되었다. 한국재벌들은 세습을 원칙과 기강으로 내세운다.

자본주의의 덧없음을 증명하는 세습재벌

자본주의는 개인에게 기회와 성취의 체제임을 항상 강조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지배엘리트들은 나름의 공정한 선발과정을 통과한 인재들과 개인의 각고의 노력과 성취의 산물임을 내세운다. 정부의 고급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고시원에서 몇 년 동안 폐인이 되어 행정고시 준비를 하고, 구의원이 되고자 해도, 동네를 이 잡듯이 쓸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유독 재벌들만이 예외다. 지금 이건희의 뒤를 이어 후계자 자리에 오른 이재용은 단지 이건희의 외아들이라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다. 경영능력으로 치자면 이미 10년도 전에 E-삼성이라는 것을 내세워 그룹 돈 1조원을 날려먹은 것으로 그 부절적함을 몸소 입증했다. 혹자는 어릴 때부터 자식들은 경영자수업을 받았으니, 객관적으로 경영승계를 하는데 그룹 내에서 그만한 적임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논리로 세습경영을 옹호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는 3.8선 북쪽에서 정권세습을 옹호하는 논리와 아주 흡사하다. 물론 외아들로 물려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야 이건희나 정몽구가 선발과정이 치열하기는 했다. 현대, 삼성의 창업주들은 자식이 10명도 넘어서 후임자 선발과정에서 장자상속의 전통이 무너지고 공식후임자가 죽기도 했으니 말이다.

재벌2세, 3세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탈세와 편법이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신세계가 지분주식을 증여세분으로 국세청에 내놓은 것이 최초의 일이 되었으니, 그동안 삼성이니 현대니 하는 재벌들이 저지른 법질서, 경제정의 문란행위는 말로 다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들은 자본주의사회가 마련한 세습을 위한 비용조차 감내할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전경련은 한편으로 전국전과자연합회이기도 하다. 현대 정몽구씨는 감옥 갔다 왔고, 삼성 이건희씨는 감옥은 안 갔지만 명분상이나마 회장직을 사퇴하고 법정에 서야했고(그나마 지난 연말에 사면되었다), SK 최태원은 젊어서 벌써 감옥을 경험했으며, 재벌가의 열혈노년 한화그룹 김승연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쌈박질까지 개입해서 정부미를 드셨다. 물론 이들이 법의 심판을 온전히 받지는 않았다. 소위 개혁정부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들은 예외 없이 성은을 입으시고 사면을 받았다. 이런 자들이 해마다 임단투 때만 되면 전경련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엄격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나서는 꼴이라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재벌들의 존재를 오너 없는 회사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옹호하는 논리도 있다. 즉 기아그룹처럼 위에서 아래까지 모조리 회사 돈을 빼먹는 데 혈안이어서 주인이 있어 내부를 단속하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포스코(포항제철)는 벌써 거덜이 나있어야 했다. 비리는 오너가 있건 없건 통제받지 않고 은밀한 구석이 있는 조직에서 일어난다. 최근에 대우건설 인수하겠다고 나선 효성그룹에서 수천억의 비자금사건이 터지고 신동아건설에서는 일개부장이 천 억대의 회사 돈을 횡령한 사건이나 모두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나, 여기에서 비롯된 거대한 부가 통제받지 않는 개인에게 귀속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습재벌의 손에서 민중의 손으로

한국사회의 생산력은 이제 재벌들의 수중에서 통제되기에는 너무 거대해졌다. IMF 위기 때는 재벌들의 경쟁적인 중복투자가 경제위기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재벌해체가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벌들은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만들려는 시민단체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계속 확대해 왔고, 이제는 그들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를 비루하게 만들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거대한 생산력이 몇몇 가문에 머물러 있고, 그 가문의 소유를 영구히 하기 위해 세습이 이루어질 때마다 사회는 막대한 비용을 물어야 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이들이 그룹의 총수실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한 부정과 비리는 일상화되고 도덕은 유린되고, 정의는 무너진다. 이들의 주식대박을 위해 수천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억제되고, 이들의 불로소득을 위해 집값은 뛰고 주식시장은 조작되어야 한다. 수천만의 노동자 민중의 삶과 이들의 삶이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세습재벌들의 존재는 한국사회를 사회주의로 이끄는데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거대한 생산력의 집중은 사회적 통제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그룹 기조실에서 해마다 계획하고 조정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산업과 산업 간의 연관 속에 생산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이 축적되었다. 그리고 세습재벌들이 존재는 경제통제가 충분한 정보와 조력이 있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예이다. 오히려 건전한 상식과 일반적인 경험을 한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제 세습재벌의 안방에 있는 통제권은 노동자와 민중의 토론의 광장으로, 그리고 건강한 노동자의 손아귀로 넘어와야 한다. 거대한 생산력이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불안전하게 하고, 빈부격차와 박탈감을 낳는 원인이 되는 것은 그것이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의 수중에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적 소유, 사회적 통제를 통해 괴물이 된 자본주의 생산력을 편안히 다스려 인간에게 봉사하는 생산력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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