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창문도 없는 독방에 말 안 듣는 사람을 가뒀고 대소변은 통에 받아 냈다. 약은 떠들거나 똥 싸서 뭉개거나 말을 안 들으면 먹였다. 술을 먹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에게도 약을 먹였다. 지금까지 약을 먹은 사람은 모두 죽었다.”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1,000만원 대출을 받았다고 원장이 말해주었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걱정된다. 식사와 간식은 인근 중학교에서 남은 급식을 원장이 직접 가져와 먹었고, 푸드뱅크를 통해 온 음식도 냉장고에 보관해 며칠에 걸쳐 먹었다.”
- ‘김포 <사랑의 집> 시설수용자 인권침해 진상조사’ 중 면접조사 내용 일부
미신고 복지시설 한 곳에서 시설 운영자에 의한 강간, 감금, 폭행, 명의 도용사기 및 횡령 등의 범죄가 발생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시설장인 정00 목사가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장애인들에게 향정신병 약품을 수십 알씩 먹여 8명을 숨지게 했다는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이다. 이 사실은 지난 5월 23일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에 의해 ‘김포 <사랑의 집> 사건’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많은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곧 잊혀졌다. 그 사이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약물 투약과 수용자가 숨진 것과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상해치사, 유기치사, 감금, 폭행 등 대부분의 범죄행위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채 정부 보조금 횡령과 성추행 혐의만을 적용해 정 목사를 기소했다. 어떻게 한 시설에서 이 같은 범죄 행위들이 한꺼번에 이뤄졌는지, 또 이러한 중범죄가 결국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처리되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의 집>에서 성폭력과 폭행 등 중대범죄의 피해자가 되었고 결국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이들은 과연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하는가.
보건복지부가 원인 제공
김포 <사랑의 집> 사건이 발표되자 장애인 인권과 시설비리 등의 문제에 주력하고 있던 시설인권연대 활동가들은 지난 5월 25일부터 28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관할관청인 김포시청과 하성면사무소, 김포 <사랑의 집> 등을 방문하여 자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설인권연대는 이 사건의 제보자를 비롯한 시설생활인들과 주변 마을주민 등을 면담했으며 곧 <사랑의 집>에서의 인권침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5월 30일 120여개 장애·여성·인권단체가 모여 ‘김포 <사랑의 집> 시설수용자 살해·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를 결성한다. 대책위원회는 이 사건의 1차적인 책임이 김포시와 정부의 사회복지시설 정책에 있다고 본다.
2002년 보건복지부는 미신고 복지시설이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인권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미신고 복지시설 관리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이 대책은 미신고시설의 양성화를 골자로 한 것으로 이를 위해 조건부 신고제를 도입, 유예기간을 두어 그 기간 동안 신고하지 않은 채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 사회복지사법 제54조에 의한 처벌을 유예하도록 한 조치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업)법과 그 관련법률 어디에도 이와 같은 ‘처벌 유예기간’을 둘 수 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헌법상 규정된 ‘모든 행정권 행사는 법률에 의해 할 수 있다’는 원칙을 법집행자인 행정부가 앞장서서 위반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바로 김포시가 이 대책에 따라 <사랑의 집>을 적발하지 않았다는 데서 보건복지부의 대책이 가진 문제점은 확인됐다. 하지만 이것이 김포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2004년 보건복지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질의에 대한 입장을 보면 “미신고 복지시설 관리종합대책은 처벌만을 유예한 것일 뿐 불법행위까지 유예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포시는 당연히 관할 내에 있었던 <사랑의 집>을 감독하고 불법행위를 적발했어야 한다. 그러나 시설생활자의 진술에 의하면 김포시나 면사무소 직원은 언제나 원장과 수급권을 가진 생활자만을 만났다. 또한 김포시는 “<사랑의 집>이 미신고시설로 있다가 지난 2005년 7월 이후 복지시설이 아닌 종교시설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여서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었다.”고 하나 최소한 그 이전까지는 ‘미신고 복지시설 관리종합대책’에 의해 관리감독을 하고 불법행위에 대해 퇴출 등의 조치를 강구했어야 옳다. 또한 복지시설이 아닌 종교시설로 운영한다는 시설 운영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실제로 복지시설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관리감독 대상에서 제외했다면 사회복지시설에 관련된 공무원의 최소한의 자질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관리감독 관청의 묵인과 외면
더 심각한 문제는 2004년 상반기 보건복지부가 각 시군구에 미신고시설의 생활과 인권실태를 점검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침이 김포시에서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담겨있는 현장점검 내용이 ▲생활공간 및 생활상태 ▲폭행, 징벌 ▲성폭행여부 ▲수급자급여 관리 등임을 볼 때, 이 지침만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형식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특히 유의”하라는 단서까지 붙여가며 “생활자와 직접 면담을 통해 생활 및 인권상태 조사”를 하도록 한 지침은 결국 실시조차 되지 못했다. 김포시는 이에 대해 하달된 공문 자체를 받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은 명확한 진상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 결과를 떠나 김포시는 물론 지침 하달에 이어 그 시행여부를 확인해야 했을 보건복지부와 경기도 등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2005년에 있었던 ‘미신고복지시설 지원 및 관리대책’에 의한 민관합동 조사에서도 김포시는 조사 자체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보건복지부는 이 사실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관계기관의 협조와 관리체계가 얼마나 엉성하고 요식행위로 이뤄져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책위원회는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탈시설화 또는 지역사회보호”라는 사회복지의 제1원리를 무시한 무분별한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진단한다. 보건복지부는 미신고시설 양성화정책에 맞춰 신고조건에 미달하는 시설의 지원은 대폭 확대했지만 정작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포 <사랑의 집> 사건은 보건복지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그 첫 단추가 꿰어지고 무책임하게 직무를 방기한 김포시 등 관할관청의 무사안일하고 행정 편의적인 행태가 맞물려 불러온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물론 중대범죄를 불기소한 검찰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원장이라는 시설 내에서의 절대 권력자에게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리며 성폭력 등을 겪은 피해자의 심리적 특성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 또한 향정신병 약품 강제복용으로 인한 살해혐의,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한 대가로 착복한 혐의, 5억 7천 여 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 후원금 등을 횡령한 혐의에 대해 대부분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고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 한 것이다. 이는 시설생활인과 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검찰의 이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과 함께 과연 검찰이 엄중한 수사와 처벌의지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제2의 <사랑의 집>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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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원회는 “김포 <사랑의 집> 사건은 사회복지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장애와 가난 등을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소개나 추천으로, 또는 시설에서 직접 서울역 등지에서 데려오는 형태로 시설생활자를 모집한다. 시설 운영자는 시설생활자 또는 그 가족으로부터 매달 30만원에서 50만원까지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서도 학교급식의 잔반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등 생활자의 복지에는 안중도 없다. 신체장애가 심한 사람들을 감금하기 일쑤이며 폭력이 난무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전무한 상태인 시설에서 문화생활은 물론 참정권, 종교의 자유, 프라이버시 등의 기본적인 인권을 찾는 것은 사치에 불과할 따름이다. 기초생활보호수급권자의 통장은 시설 운영자가 관리하여 장부도 없이 어딘가에 지출되고, 지적 능력이 부족한 시설생활자를 대상으로 명의를 팔아 돈을 챙기는 일도 생긴다. 장애여성의 경우는 수년간의 지속적인 성폭력에 시달려야 한다. 이러한 범죄행위들이 시설장의 말을 잘 따르는 중간 관리인에 의해 구조적으로 자행되면서 내부 위계구조를 통해 범죄들은 은폐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관리감독을 해야 할 정부기관은 “종교시설인 기도원이다”라는 말 한마디로, 사회복지시설임이 분명함을 알고 있음에도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의 부주의한 실수라는 잘못된 사회통념에 기대어 직무를 방기한다. 그 결과 정신장애인에게 복용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강제 투여라는 방식으로 8명이나 되는 시설 생활자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바로 김포 <사랑의 집> 사건의 전말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데서, <사랑의 집> 사건은 우리 사회 ‘시설’ 문제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며 그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책위원회는 이 사건이 일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시설 운영자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에서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인권침해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대책위원회는 시설수용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김포시와 보건복지부장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정부의 사회복지시설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주장한다.
2003년 성질정양원, 은혜 사랑의 집, 2004년 영락원, 심신 수양원, 2005년 바울 선교원, 지인언어치료실 등에서 이미 확인 된 상황이고 앞으로도 얼마나 터져 나올지 모르는 무수한 사건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 1,200여개 미신고복지시설에 2만여 명의 ‘시설생활인’은 인간임을 포기당하고 ‘죽지 못해’ 하루를 살아간다고 대책위원회는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책위원회가 김포 <사랑의 집> 사건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대책위원회는 현재 철저한 재수사와 함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미신고복지시설 전담기구 마련과 민간단체 참여 △지역 사회 자립생활 운동과의 연대 등을 계획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 복지시설 운영자에 대한 관대한 사법당국의 태도를 비롯한 일반인들의 시각, 정부의 정책이 수용시설중심에서 탈시설 자립생활 중심으로 사회복지시설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김포 <사랑의 집>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며 앞으로 발생이 예고되어진 문제일 수밖에 없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