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흔적담기] 주체탑은 7시에 꺼지네




새벽에 잠이 들어, 다시 새벽에 깨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평양은 무거운 어둠 속에서 겨우겨우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지상에서 100미터 정도 높은 곳에 서 있었다. 내 숙소였다.


대동강 주변 짙게 깔린 검은 안개 사이로 붉은 별이 빛났다. 어둔 평양시내에서 홀로 밤새워 타오른 불이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꺼져버렸다. 사위는 여전히 어둑했다.
7시였다.


주체탑은 7시에 꺼졌다. 별로 신기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1미터짜리 물체를 판독해 낼 수 있다는 미국의 첩보위성이라면 저 거대하고 육중한 돌탑의 점멸시간 쯤이야 벌써 알고 있으리라. 물론 첩보위성에게 그 따위 정보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는 저 돌탑을 무너뜨리려 하고, 누군가는 숭배한다. 그 누군가’들’은 남과 북 모두에 있다. 멀리 아메리카에도 있다. 때로 잡아먹을 듯 적대시하던 누군가들은, 가끔은 서로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권력의 꼬라지’를 들여다보면 사실은 별로 희한한 일도 아니다. “전두환은 남파간첩을 필요로 하고, 부시는 ‘악의 축’을 필요로 한다” 쯤으로 쉽게 설명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기차는 8시에 떠나고, 주체탑은 7시에 꺼지네.


그것이 내가 그날 새벽, 머릿속에 써 넣은, 별것 아닌 메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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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 사진가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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