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말 편리해졌을까?
며칠 전, 핸드폰에 이상이 생겨서 수리를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비용문제가 걸려 우선 문의나 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비스 센터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그 인터넷 사이트에 보니 A/S 자가진단 메뉴도 있었지만 다 훑어봐도 나와는 상관없는 내용들. 다시 다른 웹페이지를 뒤지다가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상큼한 ARS 음성이 들린다. ‘고객님의 빠른 서비스를 위해 고객님의 전화번호와 우물 정(#)자를 눌러주십시오’ 안내를 다 듣고 번호를 누르다가 아차, 그만 숫자를 잘못 눌렀다. 잘못 누르면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자서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바로 ‘잘못 누르셨습니다. 다시 눌러주십시오’라는 안내가 나온다. 이번에는 제대로 눌러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우물 정(#)자와 별(*)표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 동안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잘못 누르셨습니다.’ 세상에! 그 몇 초 늦은 것 때문에 나를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겨우 번호를 눌러서 상담원과 통화연결이 되었다. 그런데 상담원 왈 ‘여기는 A/S 센터가 아니라서 문의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가까운 A/S 센터에 다시 전화하셔야 합니다.’ 대체 핸드폰 수리 문의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인지. 수리를 당장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비용이나 한 번 물어보겠다는 건데 말이다!
우리 어머니는 50대 후반이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실 줄 모른다. 우선 입력하기 위해 접근해야 하는 메뉴 단계가 복잡하고, 두 번째로는 문자판이 너무 작아 잘 보이시지 않기 때문이다. 실버폰을 사면 되지 않느냐고? 실버폰은 거의 팔리지 않아 단종 된 지 오래라고 들었다. 전화 걸기, 받기, 문자 메시지 보내기 등의 기본 기능만 있는 전화기를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핸드폰은 거의 카메라, MP3, 무선인터넷 기능은 기본이고 DMB에 모바일 뱅킹이나 전자수첩, 전자지갑기능까지도 다 담고 있다. 이런 수많은 기능을 정말 자유자재로 충분히 활용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핸드폰에 전자수첩 기능이 있어도 수첩이나 다이어리 없이 다니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핸드폰 카메라가 있어도 디카는 여전히 ‘머스트 해브 MUST HAVE’ 아이템이다. 대체 왜 핸드폰에 이런 기능을 다 모아두려고 할까?
‘사람을 위한 기술? 기술을 위한 진화!
노래 못하는 음치, 박자를 못 맞추는 박치, 춤을 못 추는 몸치, 길을 잘 잃는 길치, 방향치… 이런 ‘~치’들은 조금 놀림을 받을지언정 사는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기계를 못 다루는 기계치는 가전제품도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일상생활도 제대로 영위하기 힘들다. 세탁기에는 스팀 기능, ‘에어 워시’ 기능도 있지만 기본 세탁기능만 다룰 줄 아는 사람들. 김치 냉장고로 문화를 즐기라고 말하지만 그저 김치만 담아두고 사계절 내내 같은 맛의 김치만 꺼내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다. 그런데 기계의 발전 속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 베란다에 나갔다가 실내로 들어오는 문을 못 찾아서 헤매거나, 집에 전화를 걸어 알아서 불을 켜두고 보일러 온도를 맞춰주는 시스템을 쓸 줄 몰라 ‘바보’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집에 사는 여성들은 서로를 알아본다는 우아한 미소를 슬쩍 흘리면서 기계치들을 좌절에 빠지게 한다.
예전에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 추가될수록 더 살기가 편해질 줄로만 알았다. 영애 씨가 멋진 고층아파트에서 단추 하나만 누르면 뭐든 척척 알아서 해주는 아파트, 아파트의 최첨단 시설을 활용해 옆집 개까지도 찾아주는 모습을 보고 저게 바로 내가 원하던 세상이려니 했었다. 그런데 이건 대체 어느 버튼을 어떻게 눌러야 불이 켜지는지, 인터폰은 어떻게 켜고 끄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가사노동은 어떤가? 힘들게 손으로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청바지 하나를 세탁하는데 드는 노동량을 줄여준 것이 사실이다. 시간도 줄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전체 세탁시간이 줄었는가? 웬걸, 세탁이 쉬워져서 옷은 더 자주 빨 수 있게 되었고 덩달아 청결의 기준도 높아졌다. 당연히 세탁시간도 늘어났다. 그뿐인가, 한 번 정성들여 쓸고 닦은 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조금만 신경 쓰면 됐던 것이 지금은 터보엔진이 달린 청소기로 밀어주고 스팀 청소기로 또 다시 밀어줘야 되며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마구 집안을 어질러 놓아도 스팀 청소기로 또 한 번 밀기만 하면 된단다. 이건 알아서 깔끔하게 생활하던 사고방식을 ‘치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청소할 일만 늘었다. 부엌에서도 이젠 가스레인지 불만 켤 줄 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전자레인지도 쓸 줄 알아야 하고 분쇄기도 능숙하게 다뤄야 하며 오븐과 그릴은 요리하는데 필수적인 도구로 차츰 변화하고 있다. 손맛을 배우는 것도 힘든데 가전제품 매뉴얼도 외워야 할 판이다.
‘‘편리’의 주체가 없다
귀찮음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처럼 설명되는 기술이 사실은 더욱 귀찮음을 유발한다. 단지 귀찮음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인관계의 단절을 만든다. 새로운 기계가 등장할 때 마다 제품별 사용자 동호회가 따로 구성되기도 한다고? 그거야 기계치가 아닌 사람들 얘기일 뿐이다. 이미 기계에 동화되어 메시지를 툭 던지는 일방적 소통에 길들여진 딸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기계치인 우리 어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손놀림을 빨리 하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소통의 편리함을 위해 개발된 기계인 휴대폰이 소통의 방식을 획일화 시켜버린 것이다. 휴대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도 어머니는 연락도 없이 늦는 딸을 마냥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도란도란 엄마와 수다 떠는 재미를 잊어버린 이 매정한 딸은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도 귀찮아하고 있을 것이고.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