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한상희의 쇳소리] 국정원, 끝나지 않은 악몽

탈정치 넘어 글로벌 정보기관으로” 국정브리핑 최근호는 국정원의 개혁을 이렇게 표현한다.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국민들의 비난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국정원이 이제 “산업보안·국제범죄를 막아내는 첨병”이자 “각종 서비스 제공자”로서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런 “탈정치·탈권력화”의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정치사찰은 의연히 지속된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국내정보활동을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등과 관련한 국내보안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에 한정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위반하여 전방위적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이를 통해 권력의 의지에 종사하는 구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자주민증, 형사통합망사업, 여권의 생체정보화 등 현정권들어 부쩍 강화되고 있는 국가감시와 더불어 새삼 권위주의 정권의 트라우마가 반복재생산된다.


중국산 조기가 영광굴비로 둔갑하는 과정을 추적한 국정원의 보고서는 시장안보가 곧 국가안보인 시대를 핑계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해 정국을 휘감았던 X파일사건의 주축이 국정원의 전방위적 감시활동이었다는 사실이, 올해에조차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최근의 각종 부정의혹사건은 하나같이 국정원의 보고문건에서부터 출발한다. 모백화점 대표가 정·관계 로비를 하고 부장검사에게까지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는 국정원의 조사결과이며, 청와대의 도덕성 문제까지도 위협했던 제이유그룹 사건에서도 국정원은 주요한 정보제공처로 활약한다. 특히 이 제이유그룹 사건의 경우 국정원은 백억 원대의 로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뿌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를 세 차례에 걸쳐 직접 청와대에 보고하였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기사화되어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도 모자라 국정원은 휴대폰 감청을 허용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까지 추진한다. 국정원이 인터넷 등 각종 IT의 정보보안인증업무까지도 장악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제 그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감시의 결과는 더러 일심회와 같은 “보안”사건의 형태로, 혹은 부정부패에 대한 고발의 형태로 혹은 청와대 등의 정치집단에 대한 정세동향보고의 형태로 활용된다.


권력의 위력은 위협에서 나오며, 그 위협은 벤담이나 푸코의 파놉티콘이 말하듯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집요하고도 치밀한 감시에서 나온다. 지난 날 권위주의적 통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개혁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국정원의 폐지론은 물론 개선론에서조차 국정원의 국내정보활동을 축소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었음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적어도 국민의 사회생활이나 경제활동 혹은 그 일상에 관한 사찰은 국정원과 같은 비밀기관에 맡겨서는 아니 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경력을 장식 삼는 이 참여정부 또한 과거의 폐단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편승하여 국정원은 다시 기사회생한다. 여전한 ‘음지의 권력’으로 말이다. 국정원과거사위원회가 참으로 머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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