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다방] 음악의 힘

몇 년 전이던가 알 파치노와 미셀 파이퍼가 출연한 <쟈니와 프랭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비디오 가게를 뒤적이다 배우의 유명세만 보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그때만 해도 잔잔한 감동을 받아들이기에 미숙했던 나이였는지 나의 영화평은 ‘조금 지루하고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하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중년의 남녀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곡, 드뷔시의 <달빛>을 계기로 마음을 열어가는 줄거리가 당시의 나에겐 전혀 와 닿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곧 이 영화를 잊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뷔시의 <달빛>이 흐르는 또 다른 영화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 영화가 바로 <티벳에서의 7년>이다. 이 역시 뒤늦게 비디오 가게를 서성이다 골라들었고 말이다. 좀 다르다면 이번엔 배우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 ‘티벳’이라는 낯선 땅에 대한 개인적이고도 맹목적인 궁금증 때문이었다.


요즘처럼 마니아가 넘치는 세상에 비록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나 안목은 미천(?)했을지라도 나는 비디오를 켜는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 속에 잠깐, 아주 잠깐 등장하는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이 내 마음을 잔잔하게 깨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점령을 눈앞에 둔 티벳의 어린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티벳이라는 낯선 땅으로 들어선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위태로운 정세를 헤쳐 가야하는 달라이 라마가 작은 음악상자를 열고 듣는 <달빛>은 반어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음반을 뒤적여 드뷔시의 <달빛>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들어보았다. 그러면서 예전 <쟈니와 프랭키>를 떠올리며 그 중년 남녀의 진심 또한 읽어볼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드뷔시는 ‘음악은 색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가 그리려했던 음악의 색채가 나에게서처럼 사소하게 발견될 업적이 아닌 걸 잘 알지만 이런 계기로 음악이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색채를 찾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그의 음악이 갖는 위대함(어느 만큼은 영화 덕이기도 하다)인 것이다. 그렇다. <달빛>뿐이 아니라 음악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말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문태경 | 음악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