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마니아가 넘치는 세상에 비록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나 안목은 미천(?)했을지라도 나는 비디오를 켜는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 속에 잠깐, 아주 잠깐 등장하는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이 내 마음을 잔잔하게 깨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점령을 눈앞에 둔 티벳의 어린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티벳이라는 낯선 땅으로 들어선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위태로운 정세를 헤쳐 가야하는 달라이 라마가 작은 음악상자를 열고 듣는 <달빛>은 반어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음반을 뒤적여 드뷔시의 <달빛>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들어보았다. 그러면서 예전 <쟈니와 프랭키>를 떠올리며 그 중년 남녀의 진심 또한 읽어볼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드뷔시는 ‘음악은 색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가 그리려했던 음악의 색채가 나에게서처럼 사소하게 발견될 업적이 아닌 걸 잘 알지만 이런 계기로 음악이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색채를 찾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그의 음악이 갖는 위대함(어느 만큼은 영화 덕이기도 하다)인 것이다. 그렇다. <달빛>뿐이 아니라 음악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말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