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한 시루의 콩나물도 모두 다르다

언니네트워크

우리사회에서 여성주의자 내지는 페미니스트로 자임하는 것은 일종의 커밍아웃이다. 정체를 밝히는 순간 조심해야할 대상으로 규정된다. 전투적인 집단 내지는 이기적인 여자들의 종합세트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기이(?)집단에 편입되고 나면 무슨 일이 발생할 때마다 십중팔구 이런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여성계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접했을 황당질문 No.1. 더 이상 이런 질문에 열 받고 짜증내며 에너지 소모하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성계는 어떻게 생각하는데?”라고 되묻자는 경쾌하고 발칙한 언니들의 모임, 언니네트워크를 만났다.



경쾌하고 발칙한 언니들의 모임, 언니네트워크


언니네트워크는 2000년 ‘여성주의’라는 커다란 틀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모여 있는 포털사이트로 시작했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블로그 형식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고민을 표출하고 다른 회원들과 의견을 나눈다. 참여자들이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기 시작하면서 포털사이트의 기능과는 맞지 않다는 의견이 일었다. 그러면서 여성주의 감수성이 존재하는 공간, 여성주의 운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게 되었고 2004년 11월 <언니네>를 오픈했다.


언니네트워크에서 <언니네>사이트를 운영하지만 활동내용이나 역할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언니네>는 다양한 여성들이 사이버환경에 기초해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지지해주는 사이버 커뮤니티다. 언니네트워크는 사이트 중심의 운영을 넘어 운동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언니네>를 언니네트워크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올해 목표는 언니네트워크를 알려내는 거예요.” 어라 활동가의 울분과 다짐에 나 역시 둘을 동일체로 보아 왔던지라 민망할 따름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라 활동가는 내가 ‘언니네’라고 부를 때마다 ‘언니네트워크’라고 정정해 주었다. ^^ ’;


활동하는 사람이 운동의 대상이자 주체


언니네트워크의 활동은 각 팀별로 진행된다. 언니네트워크 회원들이 모여 토론하고, 다양한 여성주의 액션과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액션나우팀, <언니네>를 통해 여성주의 이슈에 대한 콘텐츠와 출판을 기획하는 출판기획팀, 오프라인 상의 행사를 기획하는 문화기획팀, 그리고 국제연대팀이 있다. 각 팀의 구성활동가들은 활동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학생, 교수 등의 다른 사회적 위치를 겸하면서 활동을 병행한다. 다른 단체로 보면 자원활동가와 비슷하지만 언니네트워크는 이 활동가들에 의해 운영되니 등치시키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런 활동가들이 대략 30여 명이고 상근활동가 2명이 사무국을 운영한다. 사무국은 단체운영을 위한 실무와 활동지원이 목적이다. 언니네트워크의 사업논의를 위한 구조는 각 팀의 활동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이뤄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사업은 <언니네>의 운영. <언니네> 회원이 4만 8천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다보니 사이트 유지를 위한 인력은 필수적이다. 웹마스터 깡뚜껑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컴퓨터를 떠날 줄을 모른다.



여성운동 야사, 여성주의 액션 박람회


액션나우팀은 매달 이슈가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감자모임’을 진행한다. 감자모임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하는 주제들에 대해 내부토론을 격렬하게 진행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재미와 열기가 더해졌고 좋은 건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도록 오픈했다. 감자모임을 통해 어떤 사안에 대한 언니네트워크의 입장을 정리하기도 하고 여성주의 액션에 대한 회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오프라인의 열기를 몰아 온라인에서도 토론해보자며 ‘온라인 토론방’도 개설했다. 아쉽게도 온라인 토론방은 감자모임만큼 활발하지 못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만큼 온라인 토론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2007년은 액션나우팀에게 남다르게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숙원사업이었던 ‘여성주의 액션 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액션 박람회’는 역사 속 여성운동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되거나 축적된 초기 여성운동의 역사는 전무하기 때문에 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의 역사를 찾아 실제로 당시의 액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잊혀진 사람들을 찾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다양한 여성운동 포스터들을 모아 전시도 할 거라고 한다. 문화기획팀에서 진행했던 여성주의 캠프에서 이미 비슷한 시도가 있었고, 참가자들을 통해 다양한 자료들을 모은 상태다. “내가 했던 이 행동도 하나의 여성주의 액션이었구나. 이럴 땐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겠네. 나도 할 수 있겠네 라고 독려하는 거죠.” 어라는 액션 박람회는 박물화된 것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현재화하는 거라며 한껏 고무된 눈치다. “여성사전시관이 정사라면 우리는 야사죠.” 언니네트워크 대표 난새가 액션박람회의 성격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사회적으로는 잊혀지고 묻혀진 여성운동의 발굴과 재현, 올 6월 홍대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여성주의 여행에서 국제연대로


“어떤 시선에도 구애받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굉장히 판타스틱한 영상을 만들지 않나요?” 난새는 언니네트워크에서 유일하게 남성이 배제된 행사라며 여성주의 캠프를 소개했다. 2004년부터 매해 진행하는 여성주의 캠프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에게 덧씌워진 허울을 벗고 자신 안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견하는 공간. 이 긍정의 힘이 도전과 용기를 북돋아 일상을 헤쳐 나가는 에너지를 생성한다. 여성주의 캠프가 지닌 의미가 입소문을 만들어 지난해에는 14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가 되었다. 규모가 커질수록 많은 참여자가 소외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새로운 숙제가 되고 있다.


문화기획팀에서는 여성주의 캠프와 함께 여성여행을 기획해 왔다. 이는 ‘여성여행 커뮤니티 시스투어’를 중심으로 국내외 여행을 기획, 각지의 여성주의자들과 만나는 기회다. ‘여성주의 여행’이란 말은 좀 생소한 감이 없지 않냐고 하니 여행지 선정과 기획의도부터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을 간다고 하더라도 한겨레에서 접근하는 것과 언니네트워크에서 접근하는 것은 다르다는 거죠. 베트남 전쟁이 베트남 여성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침략국의 여성으로 그녀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과 차이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어라는 접근 방식의 차이라고 말한다. 2006년 2월 ‘나와 우리’라는 베트남 관련 단체와 함께 여행을 기획, 진행했고 여기서 만난 여성주의자들과 어떻게 연대를 이어갈 것인가 고민했다. 그래서 국내외 여성들이 교류할 수 있는 사이버공간 unninetwork@asia 사이트를 개설했다. @asia는 영문사이트로 국내 이슈를 해외에 소개하고, 아시아소식을 국내에 알리는 거점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올해부터는 아시아여성단체와의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확장해 갈 예정이다. 서구 여성주의와는 다른 아시아라는 공통성을 바탕으로 여성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문제를 보고 함께 협력하자는 취지다.



운동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


언니네트워크는 여성에게 씌워진 문화적 금기를 깨뜨리고자 하는 영 페미니스트의 선두그룹이다. 그러나 이 영 페미니스트란 말은 ‘어려서 뭘 모르고 더 배워야할 아이들’이란 부정적인 뉘앙스 속에 기존 여성운동에 반대하는 양 비쳐진 면도 있다. “선배들의 활동, 기존 여성운동을 비판했지 비난한 건 아니죠.” 난새는 변화와 성찰을 가로막는 분리주의적 사고를 일축한다. 현재 일부 여성단체에서 보이는 관변화, 운동성 상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운동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마도 가장 성찰이 필요한 곳은 여성가족부가 아닌가 싶다. 언니네트워크는 여성부가 여성청소년가족부로 변신해 가는 과정은 여성들이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출하고자 했던 바로 그 지점으로의 회귀임을 지적한다. 여성가족부가 여성정책 담당부처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저버린다면 차라리 간판에서 ‘여성’을 떼는 것이 옳다! ‘여성’을 주체가 아닌 어떤 ‘역할’에 위치시켜 지원하려는 것은 또 다른 타자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언니네트워크의 활동이 즐겁고 활기차 보이는 것은 ‘주체’로서의 참여와 역할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들로 구성된 수평적 네트워크,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면서 더불어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언니네트워크의 장점이 아닐까. 다양한 주체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모든 종류의 차별과 억압이 해체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스위치는 켜졌다.




사진 박김형준 |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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