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열린칼럼] 개헌론의 이상과 현실

헌법이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헌법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 헌법을 개정하자고 하면, 우선은 귀가 솔깃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속내야 어떻건 이왕 헌법에 손을 댈 참이라면 기본권 조항의 자그마한 진전으로라도 생색은 내려니 하는 기대를 나도 모르게 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생각이 얼마나 낭만적인 것인지를 역사를 통해서 깨우쳐 준다. 대한민국 헌법의 누더기 같은 개정사에서 기본권 조항의 가장 큰 진전을 이루어냈던 것이 이른바 ‘5공 헌법’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의미하는 바는 명료하다. 워낙 유신헌법이 엉망이긴 했지만, 유신 이전 3공 헌법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획기적인 진전이 분명히 있었고, ‘국민의 힘으로 직선제를 쟁취’했다는 현행 헌법에서도 큰 변화 없이 골격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학살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급조된 ‘5공 헌법’이, 또는 급기야 전국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키며 종말을 고했던 그 정권이,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신장시켰다고 한다면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요컨대 저열한 ‘정치공학’ 수준의 음모론이 난무하는 개헌 논란을 경계하며 이른바 ‘국제적 인권 조약 수준으로의 기본권 확대’를 강조하는 식의 접근은, 그 선의야 나무랄 데 없지만 실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애당초 ‘정치공학’으로부터 비롯된 일이 ‘정치공학’ 수준을 맴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는 설령 생색내듯 몇 가지 기본권 조항을 ‘전향적으로’ 손본다 한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언제는 헌법에 ‘행복추구권’이 없어서, ‘평등권’이 없어서, 우리는 언감생심 행복추구는 꿈도 못 꾸고 평등 근처에도 못 가는 것일까. 국가보안법이 유지되는 것이 과연 헌법이 부실한 나머지 그 존재를 용인하기 때문인가. 물론 헌법이 좀 더 분명하고 확고한 어조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확인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권을 지켜주는 것은 헌법 자체가 아니라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지켜내겠다는 사회적 의지이며, 헌법의 조문이란 그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이 부실해서 기본권 보장이 미흡하다고 여기는 분들께는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1항을 정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도대체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는 고사하고 헌법에 열거된 기본적 인권의 의미나마 사회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적이 있었던가.


소수자운동의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으며 결코 현행 헌법에 만족할 성싶지 않은 어느 활동가에게 개헌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대뜸 “4년을 해먹든 5년을 해먹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단순한 ‘권력 구조 개편’이 아니라 기본권 보장에 관해 심각한 고담준론이 오가고 있다 한들 그의 반응이 달랐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의 기본권이 아니라 더 가진 자들만의 특권이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 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자리 잡던 그 시절,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었던” 자들의 정체가 그러했듯이!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변정수 | 미디어평론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