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삼성, 두렵지 않습니다

삼성 에스원 해고노동자의 투쟁기

지난해 8월 9일 아침, 여느 날과 다름없는 출근길이었습니다. 근무하는 (주)에스원 부산해운대지사 사무실 제 책상위에 지사장이 문서 두 장을 올려놓았더군요. 한 장은 서울 남대문 경찰서 질의회시 건에 대한 회신문이었고, 한 장은 계약해지서였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경비업법상 영업딜러는 위법’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회사는 불법을 저지를 수 없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해서 지사장에게 물어 봤더니 “잘 모르겠다. 질의 회신 건 때문에 전국 지사의 모든 사람을 계약해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계약해지서에 아무 말 없이 도장을 찍는 사람도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억울하게 당할 수는 없다 싶어서 그 길로 민주노총 부산본부로 달려갔습니다.

사진 | 박김형준


단 한 장의 문서로 생명줄을 끊을 수 있다니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자문을 구하니 “유령회사 A를 두고 도급을 준 것도 아니고, 개인에게 도급을 준 지금의 형태는 문제가 없다.”라더군요. 그래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로 하고 경기, 경인본부 등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 ‘삼성에스원 세콤 노동자연대’를 결성하기로 했습니다.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우리를 받아줄 산별노조도 특별히 없는 상황이라 그냥 노동조합도 아닌 노동자연대의 이름으로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모이기 시작하니, 전국적으로 해고된 이가 1,700명이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어이가 없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삼성이 대단하다, 생각하며 살았지만 이렇게 단 한 장의 문서로 여러 사람 생명줄을 하루 만에 끊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노동자면서도 노동자로 불릴 수 없는 우리처지와 삼성 내에서 ‘노동 ’이란 단어조차 꺼낼 수 없던 세월이 처참하기만 했습니다.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해도 역시 경비업상 단순영업은 위법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경찰청 회신문 자체가 오히려 위법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잇따랐습니다. 자신을 얻은 우리는 지난 9월부터 에스원 본사, 삼성본관, 이건희 회장 집, 경찰청, 청와대 등에서 1인 시위를 했고 수원남문, 탑골 공원, 서울역, 삼성본관 맞은편에서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집회를 수차례 열었습니다.


노동조합이라고는 본 적도 없었던 우리의 투쟁은 쉽지 않았습니다. 구호를 외치는 것, 집회신고를 하는 것, 다른 투쟁현장 연대집회에 참석하는 것 등 모든 일들이 낯설고 어색하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8월 중순부터 집을 떠나 집단 합숙을 하면서 투쟁을 시작하고 보니, 가족들이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항의나 요구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사측 때문에 분노의 마음은 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대원들을 회유하고 감시하고 미행하는 예의 삼성식의 인권유린을 맛보고는 그 울분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습니다.


어느 날 연대원 A의 집에 찾아온 지사장은 가난한 A가 월세를 못 낸 것을 알고는 회사에서 월세를 내 줄 테니 빨리 연대를 탈퇴하라고 종용했습니다. 해고되던 당시 갓 태어난 아기의 우유 값조차 댈 수 없는 A의 사정을 이용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에스원 최중락 고문과 경인본부 인사팀장이라는 자는 대출금 압박 때문에 처갓집으로 이사한 B의 장인을 찾아가서 “좀 있으면 분신 사건 난다.” “감옥 간다.” “고공농성을 시키고 지도부가 뒤에서 밀 거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힘든 가족을 이용하고 가족의 심장에 못을 박는 그들의 행동에 우리는 치를 떨었습니다.



끄떡없을 것 같던 삼성 앞에서 민주노조 깃발을 날리다


그래서 우리는 1,700명 대량해고, 개인과 가족의 삶을 뒤흔든 무자비한 폭력 앞에 침묵하는 언론과 우리 사회를 향해 몸을 던지는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외침을 들어 달라고 삼성 광고탑에 오르는 고공시위를 벌였고, 12월 차가운 한강물에 몸을 던지는 도하투쟁을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의 태도에는 전혀 변화의 조짐이 없었습니다. 몇몇 진보언론을 제외하고는 언론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2일 우리가 법제처에 질의한 내용의 답변이 왔습니다. ‘영업딜러의 영업행위는 경비업상 합법’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주장했던 대로 부당한 해고사유가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었죠. 사측은 우리의 주장대로 해고한 노동자들을 전원 원직복직 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측은 계약해지가 정당하다고 합니다. 일류 기업 삼성은 법 앞에도 끄떡없습니다.


지난 19일, 처음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삼성본관 앞에서 합법적인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삼성 본관 앞의 집회가 희귀한 일이기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우리가 한강을 도하하고 광고탑을 오를 때 침묵하던 그 언론들은 ‘허를 찔린 삼성’이라며 그저 삼성 본관 앞의 집회에 대해서만 열중했습니다. 같은 날 아침에는 우리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 모인 사회단체 사람들이 ‘삼성에스원 1,700명 대량해고만행 및 경찰청 유착 규탄, 해고자 원직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경찰청 앞에서 진행하기도 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13명이 연행되었습니다. 3시에 열릴 본관 앞 집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경찰과 삼성의 짜고 치는 더러운 유착이 어이없는 사태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연대원들은 남아 있는 4명만으로 삼성 본관 앞 집회를 아주 멋지게 진행했습니다.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남대문경찰서에서 48시간 동안 숨바꼭질을 했던 노력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남대문경찰서에 365일, 24시간 상주하는 삼성 직원들이 아무리 경찰과 짝짜꿍이 되어도 우리를 막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날 집회에서 삼성 본관 앞에 민주노총의 깃발을 휘날렸습니다. 무노조를 자랑하는 삼성자본에게 노동자의 힘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이날의 감동은 우리에게 오래갈 것입니다. 우리가 정당한 만큼, 지금보다 더 어렵고 힘든 길이겠지만 꼭 자존심을 걸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현장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투쟁을 시작한지 벌써 6달, 그 사이 부산 집에 세 번밖에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7살, 10살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이지만, 눈물을 훔치며 노동자로 자라난 우리 연대 동지들과 승리의 기쁨으로 함께 얼싸 안아보지 않고는 그 마음도 누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투쟁을 승리하고 현장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선량한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내밀었던 손길이 5명이 되고 10명이 되고, 100명이 되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제 자신도 작은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동지들이 있는 한 결코 삼성도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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