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성공의 조건?

처세술 책에 대한 불평불만

학교 다닐 때, 어떤 교양과목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수업의 교재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당시에 무섭게 팔려나가던 처세술 책이었다. 거의 10년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 책의 효과는 대단하다. 그 책을 기본으로 한 ‘프랭클린 플래너’라는 개인 수첩은 단순한 개인 수첩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가꾸는 좋은 습관?


처음 그 ‘7가지 습관’을 접했던 순간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내가 공부를 못 하는 것, 내가 어떤 일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내 시간을 효율적/효과적으로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타인의 맘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리더십이라는 게 사실 알고 보면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20년이 너무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나도 소위 ‘성공한 자’들처럼 모든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당장 큰돈을 들여 ‘프랭클린 플래너’를 샀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 쓰기 위해 그 무거운 플래너를 낑낑대며 메고 다녔다. 억지로라도 내용을 채워넣기 위해 하루에 한 가지라도 일거리를 만들었고, 채워지는 플래너를 보며 혼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도 열심히 내용을 채우느라 하루에 한 가지씩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도 한때, 성격상 그리 꼼꼼하지 못한 나는 결국 한 해를 겨우 채우고는 다시는 플래너를 사지 않았다. 그걸 채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그냥 ‘난 성공할 인물이 못 돼!’라고 맘 편하게 생각해보고 넘겨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처세술과 관련한 내용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플래너 류의 수첩을 선물로 받으면서 그에 관련한 내용들을 읽어보게 된 것이다. 어쩜 그렇게 닭살스럽던 지…. ‘나를 긍정하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라’, ‘시간을 잘 써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라’,… 뭐 다 좋은 말이지만 뭔가 꺼림칙한 기분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건 ‘성공’이라는 말의 뒤에는 ‘타인보다 잘 난 상태’라는 말이 숨겨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만 있고 ‘타인’은 없다


처세술을 설명하는 책들은 모두 ‘나’를 중심으로만 설명한다.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 나는 저렇게 해야 한다, 활짝 웃어라, 이렇게 이야기해라, 저렇게 행동해라… 물론 성공의 주체는 나이므로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 그 처세술 책들이 이야기하는 바는 모두 동일하다. ‘남들보다 나아지려면 이렇게 해라!’ 특히 처세술 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원만한 대인관계’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에서 과연 ‘원만한 대인관계’가 이룰 수 있는 가당키나 한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원만한 대인관계 자체가 아주 요원한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그래도 성격 좋고 매너 있는 데다 실력도 좋은 상사가 하나쯤은 있을 수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위한 대인관계’라는 것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사람을 대인관계를 잘 맺어야 할 목적으로 인식하는 것, 말하자면 도구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갖는 장점이 있고 특성이 있다. 사람이 기계에서 찍어내는 붕어빵도 아닌데 어떻게 모두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하고 살 수 있는가? 각자가 가진 특별한 성격이 비록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지라도 따돌림을 당하거나 비웃음을 살 만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특히 ‘나’를 바꾸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하는 그 부분에 나는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사실 실제 내용은 내가 그렇게 바뀌면 다른 사람도 내 행동에 따라 맞춰줄 것이라는 이야기이고, 이는 사실 매우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인간적인 관계의 매력을 찾고 싶다


관계, 라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적인 정이 묻어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보상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 없이 맺어져도 특별한 보상(?)이 따라오는 특이한 화학작용이랄까. 우리는 사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모든 것을 배운다. 태어나서는 부모님께 기본적인 생활 능력을 배우고, 더 자라서는 또래를 통해 사회구성의 원리를 배우며,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우고, 성인이 되어서는 더 많은 것들을 타인을 통해 알게 된다. 타인에게서 배우는 모든 것들은 어쩌면 나 스스로를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서 만들어 줄 수 있는 모든 조건인 셈이다.


『설득의 심리학』, 『상대의 마음을 읽는 심리기술』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난무하는 지금 상황은, 내가 타인에게 배웠던 모든 것들이 타인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성공이라는 협소한 목적으로 환원된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은 서글프고 미안하다. 처세술 책 안에 존재하는 ‘존중’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차이를 이해하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인정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기술인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나 스스로를 성공을 위한 도구로 빚어내는 일일 것이다. 정말 마음 가는 대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한 관계를 만들어보자. 원만한 인간관계는 좋은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바쁠 때 친구보다 편한 인터넷 대부업체를 찾으라는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친구를 사귀는 일이 뭐가 중요한 일일까 하는 회의가 든다. 성공을 위해서 아등바등 살다가 친구 역할까지 인터넷 대부업체에 맡기지 말자.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그래서 정말 존중받는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딱 하나의 원칙만 지킬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역지사지. 그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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