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법원과 국민을 상대로‘정치’를 하려는 검찰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의 문제점

지난해 검찰은 한미FTA저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데 이어 재청구된 구속영장마저 기각되자, 법원의 기각결정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발하면서 이성을 상실한 듯 언론을 통해 법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검찰은 재청구된 구속영장까지 기각되자 곧바로 “불법집회사범 영장 재기각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라는 자료를 발표하며 법원의 태도를 강하게 반박하고, 구속영장제도 운영과 관련된 대법원 재판예규의 폐지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법원칙을 무시한 무리수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한 시위참가자들과 론스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기각 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검찰은 작년 한 해 동안 계속하여 무리수를 둔 반면, 법원은 인신구속에 대한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면서 구속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신청에 대해 계속하여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였다. 언론은 감정적으로 흥분한 검찰 고위간부의 민망한 독설을 대서특필하면서 ‘법원과 검찰의 한판 승부’를 즐기듯 부추겼다. 무수한 토론방송, 논평, 칼럼이 구속수사에 대한 헌법원칙을 무시하면서 ‘정의’를 수호하려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한편 법원의 태도를 고리타분한 ‘원칙론자’로 치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검찰과 일부 언론의 주장은 정당한가. 불법행위에 걸맞는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응당 필요한 일이고, 불법폭력시위를 엄단하겠다는 검찰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나, 검찰이 주장하는 ‘엄단’조차 반드시 수사과정에서의 구속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검찰의 인식과 주장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도리어 인신구속제도를 형벌의 일종으로 오용하고, 묵비권이라는 기본권 행사를 구속수사의 이유로 제시하는 검찰의 행태야말로 국가기관이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주장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국가의 대표적 법 집행기관인 검찰이 어떻게 법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기본권 행사를 구속수사 이유로 드는 검찰


형사소송법이 ‘구속의 사유’를 명시적으로 정해놓고 있다는 것을 검찰이 모를 리 없다. 법이 정하는 구속사유는 주거부정,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경우에 구속사유가 있다고 판단할 것인가에 있다. 주거가 불분명하거나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를 하려한 경우에는 명확하게 구속사유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특히 현행법에는 위반되나 사회 역사적으로 정당한 명분을 갖고 있는 반정부 시위, 항의에 수반되는 집회와 시위 같은 경우에는 증거인멸과 도주를 시도하지 않으므로 그런 ‘우려’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검찰은 그 ‘우려’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해당 행위가 ‘중대한 범죄’ 또는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을 따져본다(이런 판단기준은 법원도 동일하게 갖고 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중형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구속이 필요하다면 구속사유 있음을 밝히는데 주력하여야 한다. 구체적인 입증이 없지만 구속하면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고 증거를 확보하면 중대범죄임을 알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은 중대범죄가 입증되어야 구속할 수 있다는 법원칙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이다. 사진은 대검찰청.


그런데 구속사유를 이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우선 잘못된 것이라 할 것이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여 반드시 증거인멸, 도주우려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대범죄와 도주우려의 인과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정당성과 명분을 갖고 있는 반정부 시위와 집회 참가자들 같은 경우는 그것이 아무리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므로 처벌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법정절차 내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는 전혀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대범죄 행위자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성향과 조건에 따라 증거인멸과 도주우려는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대범죄’에 해당하기만 하면 ‘증거인멸, 도주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엄격한 법적 판단을 포기하는 것으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다고 하겠다.



구속해서 중대범죄 밝히겠다?


그런데 검찰의 더 큰 문제는 해당 사건 행위자의 행위가 ‘중대범죄’라는 구체적인 입증도 없이 ‘중대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만 한다는 점이다. 검찰은 법 집행기관으로서 범죄행위자를 수사하여 유죄증거, 중대범죄의 증거를 확보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한다. 그런 검찰이 중대범죄에 대한 최소한의 입증도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는 ‘아직 구체적인 입증이 없지만, 구속하면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고, 증거를 확보하면 중대범죄임을 알 수 있다’는 주장과 같다. 즉 구속해서 중대범죄라는 것을 밝히겠다는 것인데, 이는 구속을 하려면 ‘중대범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법원칙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중대한 범죄인지 여부는 처벌규정의 법정형, 범죄행위의 죄질, 피해 정도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의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보면 구속여부를 판단할 자료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시위 참가자에 대한 경우를 보면, 단순 집회, 시위자로서 화염병, 쇠파이프 등을 이용한 폭력이 전혀 없고, 인적 물적 피해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영장청구 이유는 ‘국가정책의 중대한 집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든지, ‘구속을 통해 유사한 범죄재발을 막고 엄단하겠다’는 의지만이 가득하다. ‘국가정책 집행’에 방해가 되거나 ‘유사 범죄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검찰의 수사목적이지 해당 행위가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검찰의 주장은 중학교 수준의 논리적 연관도 없는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검찰은 법원의 잦은 영장 기각으로 범죄수사에 중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그 책임을 법원에 떠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구속수사는 수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국가정책의 집행과 유사범죄의 재발방지의 필요성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형사소송법이 정하는 ‘구속의 사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혹이 집중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구속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법과대학 1학년만 되어도 알 수 있는 단순한 것이다.

구속이 필요하다면 구속사유 있음을 밝히는데 주력하여야 한다. 구체적인 입증이 없지만 구속하면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고 증거를 확보하면 중대범죄임을 알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은 중대범죄가 입증되어야 구속할 수 있다는 법원칙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이다. 사진은 대검찰청.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진술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가 주거불명 또는 도망의 염려가 있거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면, 구속하여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의 주소가 일정하고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면 불구속 상태에서 그를 심문하고, 다른 자료를 입수하여야 한다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기본이고, 범죄수사의 원칙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피의자들은 현재까지 수사기관의 소환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수사를 받아왔고, 달리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그와 같은 사정 아래에서 피의자들을 구속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피의자들이 구속되어야만 수사가 원활할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은 피의자를 구속시켜 심리적, 육체적으로 압박한 상태에서만이 자백을 받아낼 수 있다는 과거의 낡은 수사방식을 고집하는 것에 불과하다.



영장발부는 법원의 고유한 업무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검찰이 이러한 영장기각 사태를 국민의 법감정에 호소하여 비난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것도 재판에 있어 고려해야 할 여러 사유 중 하나이기는 하나, 그것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하는 ‘인신구속의 원칙’에 우선할 수는 없다. 게다가 국민의 법감정이란 것도 여론호도와 선동으로 인해 왜곡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칙에 따른 재판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검찰이 법원의 영장기각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검찰은 범죄수사를 하여 기소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고유한 업무로 하고 있고,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영장의 발부 여부를 판단한다. 영장발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고유한 재판업무 중 하나이다. 법원의 재판업무에 대해 감시·감사하는 일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 권한이지 검찰의 권한이 아니다. 검찰의 비난은 정당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권한범위 밖의 일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행동은 정치적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극히 저열한 수준의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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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생명처럼 밝혀왔고, 검찰청법에도 이를 명시하고 있는 마당에 검찰의 행위는 기성정당의 정치행위와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자기 일에도 충실하지 못하면서 법원의 재판업무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곱게 볼 사람은 없다. 구속이 필요하다면 ‘구속사유 있음’을 밝히는데 주력할 것이지 남을 헐뜯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다. 구속영장발부는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요한 결정으로,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구속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지, 수사의 원활이나 수사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영장이 검사가 청구한 대로 발부되지 않았다면 구속사유를 더 보강하던지 아니면 그 이외의 다른 수사방법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마치 구속수사는 검찰의 권한인데 법원이 자의적으로, 또는 권한을 넘어 검찰의 수사를 방해 또는 지시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면, 인신구속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부여한 형사소송법의 기본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스스로 공익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는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중추임에도 자신들의 지위와 위상에 걸맞지 않는 행동과 언행으로 법률에 따른 절차에 의하지 아니한 채 언론이나 국민감정을 이용하여 법원을 압박하고자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대하여 불복이 있다면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 시정을 요구하는 등 책임 있는 기관으로서 기능과 역할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야 하고, 마치 정부청사 앞의 악성 민원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사법부를 위협하려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검찰 때문에 불안해진다면…


최근의 검찰의 정치적 행보를 보며 가장 불안한 사람들은 국민이다. 검찰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누구든지 법적인 ‘구속사유’가 없더라도 구속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법집행은 국민이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범죄행위자를 엄단하는 것이다. 그런 검찰이 최근에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법치주의가 문명사회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민들이 적법하게만 생활하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법적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어야만 국민들은 예측가능성을 갖고 적법과 위법을 구분하며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치주의 구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고, 그 한가운데에 검찰이 있음은 검찰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법치주의의 근간이라 할 법원칙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행태를 계속하여 보여준다면 국민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고, 국가는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가 없다. 선거를 통해 국정을 담당하게 되는 사람들이 국민의 불신을 받는다면 다음 선거에서 그들을 재선시키지 않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책임정치의 기본이다. 그러나 책임정치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선거가 아닌 공무원 채용절차에 따라 공무원이 된 검찰의 경우는 국민적 불신을 당하는 경우 이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검찰이 낡은 수사관행과 자신만이 정의라는 착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검찰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민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의 최근 위험한 행보는 스스로의 권한과 기능, 조직을 위협하는 제 얼굴에 침 뱉기라 할 것이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진리를 검찰은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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