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초등학교 영어도입 10년, 허와 실을 묻는다

양극화를 재촉하는 조기영어교육

조기영어교육” 혹은 “영어조기교육”에서 “조기”란 용어의 정의에 대하여 논란이 많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교육을 해온지 이미 10년(1997년부터 실시)이 되었고, 지난해에는 교육운동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초등학교 1~2학년까지 영어교육을 확대 실시하기 위한 시범학교(50개교)를 선정하였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은 조기영어교육이 아니고 “초등영어교육”으로 그 용어가 정착된 느낌도 준다. 따라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하는 영어교육이 조기영어교육이고, 초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은 “조기”라는 용어를 부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정부나 보수언론은 영어교육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조기 교육이 아니다?


이렇게 “조기”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입학 이전의 교육에 한정하는 사람들은 6세경에 이르면 모국어를 거의 습득할 뿐만 아니라 모국어의 문법 능력이나 말의 의미 이해에 큰 발전이 일어나며, 두뇌도 성인 뇌의 약 90%까지 발달하기 때문에 6세 이후의 외국어 특히 영어 교육은 조기 교육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요약하자면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조기영어교육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모국어 습득 능력과 뇌의 발달 정도만 가지고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조기 교육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실시된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사교육비 부담을 엄청나게 가중시키면서 유치원이나 유아원으로 조기영어교육을 확산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기영어교육”이란 용어를 유아원,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특히 1, 2학년)에서의 영어교육을 지칭하는데 사용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조기영어교육의 득과 실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선 우리나라의 조기영어교육 실시과정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교육부는 일찍이 1982년에 초등학교 영어교육 허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1991년에 검토 단계에서 영어교육 허용을 보류하였다. 이 때 교육부가 이를 보류한 이유에는 ①조기영어교육에 대한 반대여론이 많았고 ②“영어를 선택과목으로 할 경우, 거의 대부분의 국민학교가 선택과목으로 채택해 준 필수과목화 할 우려”가 있으며 ③교과서 편찬과 자격 있는 교사 확보 등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 등이 포함되었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교육부는 82년부터라도 초등.중등학교에서의 영어교육에 대한 유기적인 정책을 세우고 그에 따른 준비 작업을 했었어야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효율성과 실효성 논쟁


그 후 김영삼 정권은 위에서 제시한 문제점들은 해결하지 않은 채 교육부와 ‘세계화 추진위원회’를 앞세워서 1997학년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연차적으로 영어를 정규 교과목(주당 2시간씩)으로 성급하게 도입하였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시기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조기영어교육이 교사와 교재는 물론 설비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졸속 시행되어서 초등학생들이 무단결석한 채 해외 연수에 나서 학교 교육에 혼란이 생겨나고, 연간 4~5조원의 사교육비가 추가로 지출되고 있다”며 조기영어교육 재검토 의사를 밝혔었으나, 그 이후 깜깜 무소식인 채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영어조기교육의 효율성과 실효성에 대한 언어학적인 논쟁 그리고 인간이 언어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있느냐 없느냐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판가름이 나지 않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과학적으로 입증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또한 조기영어교육이 영어발음 향상에는 도움이 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어 보이나, 언어습득 장치 LAD가 선천적인 것인지 또는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결론을 보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외국어로서의 환경’에 놓여 있지 ‘제2언어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영어를 공부하는 교실 안의 환경과 교실 밖의 환경이 같으면 “제2언어 환경”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면 “외국어 환경”이라는 것이다. 외국어 환경에서는 영어를 공부하는 동기 유발이 되지 않고, 집중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다는 점은 언어학계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다. 여기서 영어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말해서 3가지이다. 우선 교실 밖의 환경을 교실 안의 환경과 같게 만드는 것인데,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영어를 제2언어로 채택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양극화의 심화 등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조기영어교육을 ‘하루 속히’ 정착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별 효과 없이 사교육비만 가중시키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조기영어교육은 의무교육에서 제외하고, 동기유발이 된 상태에서 집중적인 영어교육을 하는 것이다.



영어교육과 함께 배워야 할 문화적 다양성


그간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조기영어교육에 대한 논쟁을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찬성론자들은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①경제적 발전을 위한 국가 사회적 요구와 필요 증가 ②개인적 발전과 출세를 위한 필요(요즘은 영어성적이 문화자본이 되었다) ③세계적 추세에 적응하려는 국민적 여론에 부응해야 할 필요 ④현행 영어교육 체제하에서 발생하는 개인적, 국가적 낭비를 최소화 할 필요(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어공부를 10년이나 하고도 말 한마디 못한다는 지적이다) ⑤도시와 농어촌 간의 영어 학력 격차를 최소화할 필요 ⑥영어교육의 효율성을 최대화할 필요 ⑦영어조기교육의 세계적 현상에 부응할 필요 등을 근거로 조기 영어교육을 찬성하고 있다.


반면에 반대론자들은 ①문화 식민주의.사대주의와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 ②초등학교 기초교육으로서의 국어교육 약화 ③타 교과목 학습의 소홀 ④학습 부담의 증대 ⑤초등교육 전반, 기존 중등교육에 대한 교육 투자 여건상의 차질발생 ⑥대도시와 농어촌간,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간의 교육격차 발생 ⑦영어 과외와 조기어학연수 과열 초래의 우려 ⑧외국어 상황에서의 영어교육의 비효율성과 비경제성 등을 이유로 조기영어교육의 확산을 반대하고 있다.


이 찬반 논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세계화, 국제화 경향에 따른 조기영어교육 필요성에 대한 현실론이다. 이 찬성론에 따르면, 전 세계 라디오 방송의 60%, 전 세계 우편물의 70%, 전 세계 전화통화의 85%, 전 세계 컴퓨터에 입력된 정보의 80%, 또 전 세계 정보의 약 85%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현실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영어의 필요성이 일상화되고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간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사용이 급증하면서 더욱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영어의 제국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방법은 조기영어교육으로 마련되지 않는다는. 물론 영어교육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하는 목적의식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집중적으로 영어교육과 공부를 해야지만 이렇게 엄청난 영어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응용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우리말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진단이 필요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어는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마치 제국처럼 영토적 경계를 넘나들고, 역사를 벗어나고,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며 평화를 위하는 것인양 지구를 지배하려하고 있다. 이러한 영어 제국화 현상에 대한 전 지구적인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언어적 다양성이 없게 된 세상은 영어의 독재 하에서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단순하게 민족주의, 국수주의의 이름으로 한글을 고수하고 영어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듯이 지속가능한 발전은 언어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 위에서 가능하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이 찬반 논의에서 지적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조기영어교육이 경제적인 양극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양극화도 가속화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찬성론자는 조기영어교육이 ‘도시와 농어촌 간의 영어 학력 격차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는 “도시와 농촌 간,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 다시 말해서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의 교육 격차 양극화를 우려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초등학교 1~2학년 영어조기교육 실시와 관련하여 사교육비(과외비, 학원비, 학습지비 등)가 증가하여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찬성론자는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찬성론자는 사교육비를 공교육이 줄여야 하며, 설사 사교육비가 늘어난다고 해서 조기영어교육 실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공교육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10년 전 초등학교에 영어를 도입한 교육부의 논리와 다를 바 없는 것이고, 10년 교육에 대한 평가에 의해서 다시 검토해야 할 사항이다. 아래 표에 의하면,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이 2006년 10월 30일~11월 3일 서울 시내 초등학교 6학년생 1,607명을 대상으로 서울시 교육청 영어수업개선지원단에서 출제한 듣기시험을 치르게 했더니 주거지역의 경제 수준이 높고 사교육에 지출액이 클수록 영어 성적도 높은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는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차원에서 세계화(globalization)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면, 지구화/지방화(glocalization), 즉 지구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정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긍정적인 점들보다는 부정적인 점들이 더 많은 조기영어교육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하고 그 토대 위에서 시행되는 유기적인 영어교육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