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반성 없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베트남 레 탄동(Le Tahng Dong) 굿윌(Goodwill) 대표

“우리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아세요.”
재홍이 일어나며 말했다.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이여 지도를 펴고 한반도를 보라. 조국은 싸우고 있다. …”
반 레가 일어났다.
“우리가 얼마나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서베를린에서는 2만여 명의 시위대가 호치민을 연호하며 우리의 싸움에 연대를 표시했고 파리에서는 학생들이 쎄느 강 좌안의 중심가를 ‘영웅적인 베트남 지구’라는 이름으로 바꿔 불렀죠. 소르본느 대학 도서관에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 ‘우리 함께 하리라.’, ‘호 호 호치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게 승리를.’ 이 구호가 온 세계에 메아리쳤죠. 우리는 세상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중에서



지난 3월 12일 베트남, 동티모르, 웨스트파푸아, 버마, 필리핀 등 5개국 인권활동가를 초청하여 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했던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의 ‘평화공감 오인오색(五人五色)’ 행사 첫 순서. 한 이국 청년이 ‘민간인학살, 국제결혼, 성매매를 중심으로 한 양국 시민사회의 노력들’이란 주제의 발표문을 유창한 한국말로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국이 곧 세계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1960년대. 세계의 중심, 반제국주의 투쟁의 상징이자 최전선이었던 나라 베트남에서 온 레 탄동(Le Tahng Dong, 28)이란 이름의 이 청년은 40여 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학살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옮기고 있었다.



홍명보의 플레이에 반한 베트남 소년



그는 베트남 호치민대 한국학과를 2003년에 졸업하고 한국으로 와 이화여대 어학원을 거쳐 성공회대 NGO학과에서 공부한 ‘한국통’이다. 2001년 호치민대학 한국학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굿윌(Goodwill)이란 단체에서 활동 중인 그는 현재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00년에 호치민대학교 동양학부 한국학과에 입학했어요. 지금도 한국학과는 90% 이상 여자에요. 2002년 이전에는 남자가 한 명도 없었어요. 나도 이상해서 왜 그런지 물어봤더니 한국에 대한 공부와 연구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 드라마 보면서 관심이 많아져서 그렇다고.
제 경우는 그런 건 아니고,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데 1994년에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렸어요. 당시에는 흑백 TV였는데. 어느 날 아침에 한국과 스페인이 경기를 했어요. 85분까지 스페인이 0대2로 앞서가다가 남아있는 5분 동안 한국이 2대2를 만들어 비겼죠. 그때 홍명보가 정말 멋있었어요. ‘대한민국’이란 말을 그때 처음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말과 발음이 똑 같아서 더 관심이 갔어요. 삼성, 대우, 현대도.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알게 되었죠. 2차 세계대전 때 같이 식민지였다는 것이나 이후 비슷한 분단과 정치상황….
굿윌은 한국군 민간인학살과 관계가 많은 단체죠. 구수정이란 <한겨레21> 기자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민간인학살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그리고 나서 한국의 베트남진실위원회가 베트남에 와서 민간인학살을 조사하고 그것이 99년인가 <한겨레>에 보도되었죠. 그리고 ‘나와 우리’란 단체에서 생존자들 인터뷰를 하러, 건치(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가 무료치료를 하러 베트남으로 왔어요. 여기에 호치민대 한국학과 학생들이 통역을 하게 되면서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서 2001년 굿윌을 만들었어요.
굿윌은 ‘나와 우리’와 함께 베트남에서 평화캠프도 같이 진행하고, 학살 피해자를 도와주기도 하고, 캄보디아와의 국경에서 성매매 위험에 있는 아이들과 놀이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베트남은 홍수가 많이 나기 때문에 홍수로 집을 잃은 사람들 도와주기도 하고. 베트남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이 별로 없어요. 전쟁 이후에 모두들 어떻게 잘 살 것인지, 경제에 관심이 가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문제를 알리기 위한 일도 하고 있지요.
졸업하고 2개월 정도 미국회사에 다니다가 굿윌 활동만 하고 있어요. 번역이나 통역을 하며 돈을 벌고. 한국에 와서 NGO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베트남에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성공회대 NGO학과를 다니게 되었죠.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회사에 들어갔고 나도 미국회사 다닐 때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왜 이런 일 하냐고 하는 친구들도 많죠. 처음 활동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허가를 받는다던가 하는 절차가 아예 없으니까. 그리고 2년 정도 활동할 때 정부가 우리를 감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굿윌이 베트남 언론에도 나오고 하면서 뭐 지금은 그냥 신경 안 쓰고 활동하고 있죠.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본다?



‘박정희 군대.’ 한국군 참전 초기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군을 그렇게 불렀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방현석 소설가는 여기서 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의 참전을 어떻게 바라봤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의 뜻이 아니라 지배자의 뜻에 의해 온 침략군. 하지만 이것은 베트남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했음이 곧 드러났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보자.”라고 말한다. 그만큼 베트남 정부는 한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베트남 역사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볼 필요도 있다. 베트남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무력으로 제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으며 곧 이은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마침내 승리를 거둔 나라다. 하기에 비교적 작은 상처는 일단 묻어주자는 승자의 배포를 엿볼 수도 있다. 실제로 베트남의 각 지역 인민위원회는 전쟁피해와 학살의 기억을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전후세대인 레 탄동에게 베트남전은 무엇이었을까.




대학에 들어가서 굿윌 활동을 하기 전까지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이야기는 전혀 몰랐어요. 저는 80년에 태어났으니까 전쟁을 몰랐죠. 제 고향은 중북부에 호치민 할아버지 고향 근처에요. 거기는 전쟁나기 전에 북베트남 소속이어서 사회주의 사회였고 전쟁 때는 폭탄이 많이 떨어졌죠. 우리 할아버지 자식이 9명인데 다 전쟁에 참여했어요. 남자들은 직접 참가했고 여자들도 간접적으로. 외삼촌 한 분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가셨고 우리 아버지도 부상을 당하셨죠. 2002년 ‘나와 누리’의 평화캠프에 참가하면서 한국군의 학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일단은 부끄러웠죠. 우리 역사인데 우리는 잘 모르고 한국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다음에는 분노도 느꼈지만 우리는 전쟁이 많았고 그때는 미국이 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분노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생존자들을 만나고 이야기 듣다보면 화가 많이 나죠.
2004년에 <한겨레신문>에서 하는 베트남 기행에 참가하면서 참전 군인도 만날 수 있었어요.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들에게 사과하라고 하지 않아요. 참전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왜 피해자들은 그러지 않는데 한국 단체들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거기에는 베트남 정부의 잘못도 있어요.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죠. 지금도 사람들은 미군보다 한국군이 더 무서웠다고 말해요. 그만큼 더 심각했다는 거지요. 결국 이 문제는 어느 한쪽 나라에서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같이 해야 해결될 문제라고 봐요.



되풀이되는 역사, 그 악연을 끊는 길



한국 정부의 태도 또한 ‘과거에 유감스런 일이 있었다’는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학살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베트남 진실위원회가 다녀간 지역마다 한국의 지원 아래 병원이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한국은 훨씬 고단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화해가 있을 리 만무하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악연으로 곪아가기 마련이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인과 결혼한 베트남 여자가 많았고 라이따이한(한국군인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가리키는 말)이 많이 태어났잖아요. 이번에 한국에 올 때도 라이따이한 한 명이 제게 편지를 보냈어요. 한국인 아버지를 찾아봐 달라고. 하지만 찾을 길이 없죠. 어디에 가면 10명 중에 6, 7명이 라이따이한인 곳도 있어요. 그들은 참 힘들게 살았죠. 그런데다가 20~30년 있다가 갑자기 찾아와서 내 아들이라고 하고, 죄송하다고 하면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죠.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지금도 베트남 여성들과 국제결혼이 많아요.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든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죠. 조사를 해보면 잘 사는 경우도 있지만 이혼하는 경우도 많죠. 우선 말도 통하지 않고, 날씨도 춥고, 더군다나 베트남에서는 한국생활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한국이 일을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더 힘들거든요. 그래서 이혼하면 또 자식들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한국정부가 베트남과 우호를 쌓기 위한 여러 가지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 안 하면 아무리 프로그램을 많이 한다고 해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좋아질 수 없고 더 힘들어지게 되는 거죠.

레 탄동은 사진 찍기를 즐긴다. "사진으로 말하면 사회주의는 흑백사진, 자본주의는 칼라사진이에요. 흑백은 예술적이고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칼라는 화려하지만 빨리 없어지고 문제가 많죠. 한국에서는 자본주의보다는 민주화 역사, 인권 이런 것들이 부러워요."


언제부터인가 거리에 걸려있던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란 현수막은 “베트남 처녀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베트남 처녀 완전 후불제”라는 낯 뜨거운 문구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해 4월 베트남에서는 ‘조선일보 사태’라 불리는 사건이 터졌다. <조선일보>에서 르뽀기사를 내면서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란 제목 아래 번호표를 단 10여 명의 베트남 여성이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집단맞선을 보고 있는 사진이 실린 것이다. 물론 한국 남성은 뒷모습으로. 뿐만 아니라 기사 내용은 결혼정보회사 광고를 무색케 했다. 레 탄동은 이 사건을 접하고 곧바로 <조선일보>에 항의서한을 보냈으며 이후 ‘나와 우리’와 연대하여 한국과 베트남 언론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는데 같이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알려줘서 인터넷으로 봤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학과 학생들도 많이 봤죠. 제 경우에는 아르바이트로 여행 가이드를 할 때 겪은 일도 있었죠. 저녁이 되면 “우리가 여기 왜 온지 알지? 어디 가고 싶은지 알지?”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이미 여행사에서 잡혀 있는 일정이라 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 이상 그런 일을 안 했죠. 한국도 예전에 일본 사람들 기생관광 문제가 있었죠.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해서였어요. 한국 사람들 생각도, 베트남 사람들 생각도 바꿀 수 있는…. 한국에서 항의 집회가 열리고 베트남 일간지가 이를 보도하면서 결국 기자 개인이 사과문을 전달했지만 <조선일보>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어요. 베트남 여성연합회가 다시 항의서한을 보내고, 캐나다에 있는 베트남 일간지에서는 <조선일보>에 항의하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 ‘한국의 양심에 감사한다’는 기사도 나가면서 문제가 더욱 커지자 <조선일보>가 마침내 한국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사과문을 보냈어요. 그리고 이 일로 한국에서 차별적인 국제결혼 반대 캠페인이 벌어졌고.
이때 베트남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조선일보> 욕하고, 빨리 항의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한국사람, 국제결혼 소개회사 싫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하나는 이건 한국 사람보다 베트남의 잘못이다, 창피하다,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반응이었죠. 저는 이 사건이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에서부터 시작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어떻게 할 건가하는 문제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양국 시민사회가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하는 데까지 함께 했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하는 거죠.



베트남의 근대사처럼 겸손하지만 당찬 그는 좁지만 내일로 가는 길을 발견한 듯하다. 그가 찾은 길에 기대를 걸어본다. 그 길에 함께 하다보면 부끄럽게도 우리가 너무 쉽게 잃어버렸던,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포기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책임과 스스로에 대한 존엄을 조금은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박김형준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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