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가상현실> 2017년 한 외교관의 하루

한미FTA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정부는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협상이 중단되는 일은 결코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대로 협상이 타결되고, 국회에서 비준동의를 받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10년 뒤의 한 외교관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를 구성해 보았다. 우리의 미래가 시나리오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노점들 사이를 헤치고 사무실 책상 앞에 앉으니 이건 출근을 한 게 아니라 무슨 한 판 전쟁을 치르고 온 기분이다. 외교부 생활 10년에 남은 건 만성피로에 짜증뿐이다. 매사에 의욕도 없고, 집에 들어가면 파김치다.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고 미국과 문제만 터졌다 하면 광화문 외교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해대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외교부가 연기 행정도시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남은 것도 문제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국회에서는 자료를 내놓으라고 들볶고, 위에서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조인다. 시위나 국회의 닦달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지만 우리를 무슨 미국 간첩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빛만큼은 예사롭지 않다.


올해는 연초부터 긴장이 팍 걸리고 있다. 6월 민주화운동 30주년 기간인 6월부터 8월 사이에 근로자들이 전례 없는 총파업을 한다고 하고, 이와 함께 농민들과 빈민들의 연합시위도 있다고 한다. 한국진보당은 이번 기회가 FTA 체제를 박살낼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국 자본과 군대를 철수시키자는 말은 이제 어디가나 들리는 소리다.



외교부 공무원은 고달프다


두 달 전에는 시위대가 청사 안에까지 들이닥쳤다. 특공무술로 단련된 백골부대가 없었다면 청사가 고스란히 접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도 간담이 서늘할 지경인 백골의 진압으로 간신히 시위대를 막아낼 수 있었다. 예전에 전경에 맞아죽은 시위대 문제로 시끄러웠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 정부도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그런 일을 꼬투리 삼아 진상규명이니 책임자 처벌하라고 떠드는 단체들이 아직도 있기는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정부에서는 치안을 고려해서 현재에도 꽤 많은 것 같은 시위진압전문부대인 백골부대를 4월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무도 유단자들이 워낙 많이 응모해서 경쟁률이 몇 천대 1이 넘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오늘도 가판에서는 싸움이 붙었는지 커피 한 잔 뽑으러 복도로 나오니 밖이 시끄럽다. 외교부 청사 앞까지 노점들이 밀려들어 온 것이 한 사오년 전쯤인 듯하다. 중앙정부와 서울시 차원에서 합동으로 한 번씩 싹쓸이를 해도 그때뿐이다. 어디서 몰려오는지 그 다음날이면 다시 노점들로 그득하다. 노점을 하는 사람들도 절반 정도는 노숙인이다. 그 자리에서 장사하고, 그 한편에서 다시 그냥 잔다. 그러니 청사 주변이 불결하기 이를 데 없다. 오줌냄새로 지려서 코를 후벼 판다. 그래도 노점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행운이다. 자살률과 실업률이 몇 년 사이에 10배나 급증했다는 발표에 빈민인구가 천만을 넘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정규직은 공무원과 대기업에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점심시간이 되려면 좀 남았는데 갑자기 옆 자리 김 사무관이 허둥지둥 양복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처가 집에 상이 났다고 하며 글쎄 광우병이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또 다시 대량으로 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본 듯하다. 이제는 그런 기사는 1면에도 실리지 못한다. 분식점보다 많아진 맥도날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점들이 성업 중이지만, 이들도 영업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맥도날드에서 만든 햄버거에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 있다고 하지만, 서민들이야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되는 형편이니…. 그러다가 광우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올해 3월까지 벌써 1백 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약값에 치료비가 집 한 채는 그대로 날릴 정도로 비싸니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광우병은 불치병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미친 듯이 날뛰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김 사무관은 대신 봐달라고 문서 몇 장을 건네고 돌아선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나’ 하다가 ‘아니 사람이 죽었다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싶어 나도 몰래 얼른 주위를 살핀다. 그러고 보니 점심 먹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유기농산물은 너무 비싸서 우리 같은 4급 공무원도 쉽게 한 끼 식사로 먹을 수 없다.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 그리고 상류층 집들에만 공급되는 유기농산물을 어떻게 먹을 생각을 하겠는가. 햄버거 10개 값은 주어야지 그나마 안전하다고 하는 밥 한 끼를 사먹는 건데, 밥은 한 끼만 먹을 수 있어도 다행이다. 세 끼를 다 밥으로 사 먹다가는 그나마도 축나는 살림은 거덜이 난다. 예전에는 월급 타면 그래도 저축을 할 수 있었는데, 아이까지 크는 것을 보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혼자 식당가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벌써 한 시가 가까워 온다.



광우병 사망자, 3개월 만에 백 명 넘어


휴대전화 진동에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마누라 전화다. 요 며칠 원어민이 가르친다는 영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문제로 마누라 신경이 날카롭다. 전에 다니던 국립 유치원에 한 번 들렸다가 무슨 유치원이 빈민굴 같아서 내가 옮기자고 했지만 우리 형편에 영어 유치원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거기에서도 생활수준에 따라 무슨 그룹이 형성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도 미국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를 가야 한다는 게 동료들 사이에서는 통설이다. 대학? 한 한기 등록금이 4천만 원하는 대학을 보내려면 무슨 수를 내기는 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마누라는 남몰래 다국적 회사 중역들이 많이 산다는 아파트 단지에 파출부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일주일에 3일 가던 것을 5일로 늘려야 할 것 같다는 마누라의 말에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파출부도 자기가 대학 학위가 있고 영어가 좀 되니까 가능하다고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마누라인들 속이 어떻겠는가.


아예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에 보내는 게 속 편하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한국 쪽의 사정을 알다보니 한국의 유학생들을 규제해서 1억쯤 보증금을 걸지 않고는 미국에 유학 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대학은 1억의 보증금을 걸고라도 미국으로 굳이 보내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와 봤자 별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고위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 유학은 필수다. 나도 유학을 가서 학위라도 하나 받아와야지 앞으로 승진하지 그러지 않고는 만년 4급으로 외교부 공무원 생활은 종을 쳐야 한다. 32평형 아파트도 이제 내주고 임대 아파트로 나가야 할 것 같다. 뭐 요즘에 임대 아파트 사는 게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펜스로 둘러쳐진 이곳과 저곳이 확연히 다른 동네인데 아이들이 기가 죽을까 봐 걱정이다.


출처 | 국정홍보처 사이트


오후에 과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는 미국 쪽이 만성적인 재정적자 문제로 경제가 너무 불안하니까 선을 대서 사태를 파악해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미국 경제가 붕괴하고 있다는 진단이야 진작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올해는 본격적으로 이런 진단들이 미국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올해 중국과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온다. 평택에 핵잠수함 레이건 호가 들어왔고, 평택미군기지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2개 사단이 급파되었다고 한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신예전투기나 전폭기가 속속 평택과 군산에 들어오고 있다고도 하고, 다음 달에는 대대적인 대중국 공격훈련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중국이 무척 긴장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미국이 중국과 한판 붙을 것도 같은데, 외신들은 4말5초가 위험하다고 각각의 정보망을 통해서 전망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붙으면 평택미군기지에서 대중국 미사일이 쏘아지고, 그러면 중국은 가만있지 않고, 평택기지부터 공격한다고 한다. 그것이 연루효과라고 하는 것인데,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나서서 전쟁하는 통에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중국 전쟁이 임박했다


퇴근하려고 컴퓨터를 끄려는데 메일 하나가 들어왔다. 외신에서는 최근에 가장 큰 한미 간의 투자분쟁과 관련해서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가 한국 정부가 미국 시래발 회사에 1천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는 소식을 타진한 것이다. 시래발 회사는 원래 미국에서 환경폐기물을 처리하던 회사인데, 한미FTA가 체결된 5년 뒤인 2012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환경컨설팅 정도를 하면서 막 성장하고 있던 현대재활용주식회사를 인수합병 하더니, 미국에서 문 닫을 형편인 쓰레기 재처리공장을 들여왔다. 처음부터 환경단체들이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은 채 공장을 허용했다고 반발이 심했는데, 연일 다이옥신을 뿜어내는 통에 정부로서도 공장 가동을 중단하게 조치했다. 이에 반발해서 시래발은 ICSID에 제소했고, 제소한 지 두 달 만에 결정이 났다. 한국 정부가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았으므로 배상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한미FTA 이후 10년 동안 미국과 한국 기업에서 각각 150건씩의 제소를 했지만, 한국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은 겨우 10건 뿐이다. 반면에 미국 회사 쪽은 거의 대부분 승소했고, 배상액도 천문학적인 숫자다.


올해는 아무래도 무슨 사단이 날 것 같다. 한국진보당이나 전국정의연대가 서울에서 매일 백골부대의 감시를 피해서 게릴라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심상찮다. 실업 상태인 많은 시민들이 그 게릴라시위에 합세해서 백골부대를 무장해제하기까지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미국의 군대와 자본까지 필요 없으니 모두 돌아가라고 한다. 이제 북한과 통일국가를 협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미국은 걸림돌이라는 것, 모든 원인이 미국 때문이고, 한미FTA가 가장 큰 원흉이므로 FTA를 폐기하자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10년 전 한미FTA 협상 당시의 자료가 속속 공개되면서 당시 노무현정부가 어떻게 졸속적으로 FTA를 추진했고,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했나 다 드러난 상황이므로 외교관인 나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러다가는 6월이 오기 전에 대규모 충돌이 일어날 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는 외국공관으로 나갔다가 조용해지면 들어오는 게 속 편한 일인데, 아직 내 차례는 멀어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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