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폭력의 의미를 되묻다

한국 사회에서 폭력이 무엇인가 정의내리는 것은 철저히 권력자(또는 가해자)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다.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그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변호하려 들고, 그런 과정에서 2차, 3차 가해가 이뤄지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가정폭력 사건에서 폭력을 행사한 남편들은 매맞는 아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의 정의를 무권력자(또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다시 내려야 한다. 작년 11월 한미FTA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성난 민중들에 의해 기물에 대한 파손이 이뤄졌다. 경찰로 대표되는 권력집단은 이를 폭력시위로 규정하였는데, 이런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혔던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국가권력이 내세운 이와 같은 논리를 우리가 그대로 적용한다면 지난 3월 10일에 있었던 FTA 반대 범국민대회에서 집회 참가자들과 구경꾼들 그리고 기자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전투경찰 집단 전체는 앞으로 모든 집회에서 ‘진압금지’ 조치되어야 옳다. 왜냐하면 전투경찰이 진압장구를 갖추고 집회에 배치될 경우 앞으로도 무고한 사람들을 두들겨 팰 개연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강경대로부터 하중근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은 항상 집회에서 두들겨 맞고, 목숨을 빼앗기기도 해왔다.


나는 비폭력 행동을 나의 실천원칙으로 삼아 폭력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권력자의 입장에서 폭력과 비폭력의 의미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광우병 쇠고기와 유전자조작 농산물이야말로 폭력이며,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폭력이다. 핵잠수함을 망가뜨리는 행동처럼 인명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기물파괴는 폭력이 아니지만 약값과 의료비의 엄청난 인상을 불러와 가난한 사람들이 돈이 없어 질병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한미FTA는 인명을 살상하는 분명한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