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차별금지와 인권옹호 운동의 새 출발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

세상의 어느 법이나 제도든,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데에는 그만한 필요성과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가장 큰 배경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장애인 차별의 현실이다. 비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이자,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장애인은 비장애인 남성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을 수밖에 없다. 2003년 통계에 의하면 장애인의 73.7%가 차별 받은 경험이 있고, 66.1%가 차별의 가장 큰 이유를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생존, 노동, 교육, 소비자 생활, 공공시설 및 건축물의 이용 및 접근, 대중교통 및 교통시설의 이용 및 접근, 정보통신의 이용 및 의사소통, 여성장애인 및 모성, 형사절차, 생활시설 등 모든 일상 및 사회생활에서 발생하고 있고, 학교, 직장은 물론 장애인 시설 및 가정에서도 일상화되고 있다.




심각한 장애인 차별의 현실로부터


장애인 차별이 심해질수록 장애인에 의한 반작용 혹은 저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장애인 운동으로 구체화되는데, 차별받는 사회 현실로 인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 인권의 회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계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시혜에서 인권으로’ 중심축이 옮겨지면서, 교육과 노동에서 참정권, 이동권, 소비자 생활권 등 전 영역으로 조직적이고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어 왔다. 그 결과 장애인 관련 법률들이 제정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침해받은 장애인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유사한 차별행위가 일상적으로 반복되었고, 차별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 회복 혹은 권리구제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못했다. 국가인권위는 차별이라고 시정권고를 했지만, 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장애인 관련 실정법은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에 있어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며,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는 기나긴 재판을 통해 장애인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그 결과는 불과 250만 원 정도의 위자료뿐, 차별행위는 시정되지 않았다. 실정법과 제도의 한계가 바닥까지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1990년 미국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ADA)이 제정된 후, 영연방 국가를 중심으로 영국, 호주, 뉴질랜드, 독일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가까운 홍콩 등 40여개 나라에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정비되었다. 외국은 이미 급부적, 시혜적, 배려적인 장애인 정책에서 인권과 평등, 자기결정, 참여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우리나라에도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침해 받은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널리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장애인 단체가 총망라된 장추련의 결성


1990년대 말, 몇 몇 선각자들로부터 우리나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2002년에 열린 네트워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안)’,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장애차별금지법(안)’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었다.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수고 끝에 2003년 4월 15일, 마침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 제3그룹 등 장애인 개인과 단체가 총 결집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를 결성하였다.


그보다 한 달 전인 2003년 3월 15일, 결성된 법제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수 십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 그리고 국토순례가 이루어졌다. 2003년 11월경~2004년 3월경 구체적인 조문화 작업을 위해 약 4개월에 걸쳐 매주 1-2차례씩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과 함께 토론하고 논쟁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2003년 5월경 법제정위원회 안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후에도 장추련 내부 토론, 외부 토론, 전문가 토론을 걸쳐 수정된 장추련 안은 2005년 8월경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의도와 달리 위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가 아닌 보건복지위원회로 배정되었고, 국가인권위의 차별금지법안 제출 예정, 정부안 미제출 등을 이유로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갔다.


2006년에는 불가피하게 국가인권위 점거 농성이 이루어졌고, 국가인권위에서는 차별금지법 논의와는 별도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개별법으로 제정될 필요가 충분히 있음을 대외적으로 공표하였으며, 때마침 이때부터 대통령 자문기구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차별시정위) 주관으로 장추련과 정부 각 부처가 결국은 장추련 안인 민주노동당 안을 놓고 협의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그 즈음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통해 성장과 성숙을 거듭한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은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제정 과정에 참여하여 장애여성 조항을 삽입하는데 직접 기여하는 등 중요한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국내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경제단체들을 향한 농성, 시위 투쟁이 계속되었다. 차별시정위에서 진행한 협의는 민주노동당 안을 원안 그대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장추련 측과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대폭 변경, 삭제를 요청하는 정부 각 부처 간에 팽팽한 신경전으로 이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쟁점들에 대한 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로 차별시정위 조정안이 나오게 되었다. 신속한 입법을 위해 조정안은 열린우리당으로 넘겨졌고, 열린우리당은 위 조정안을 기초로 약간의 변경을 가해 여당 안(대표발의 : 장향숙)으로 발의하였으며, 그 즈음에 발의된 한나라당 안(대표발의 : 정화원)과 함께 3당 안이 모두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거듭된 논의 끝에 여당 안을 기초로 약간의 첨삭을 하는 정도에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으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모순·충돌되는 몇 가지 조문만 손질하는 선에서 국회 본회의로 넘겼다.


그리하여 장추련 법제정위원회가 결성된 지 딱 4년 만인 2007년 3월 6일 17:30경,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난관을 뚫고 출석 국회의원 197명 중 196명의 찬성으로 역사적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마침내 통과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


우리나라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요, 당사자 운동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ADA가 그러하였듯이, 우리나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기초는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만들어냈다. 정부가 일부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외국의 입법 사례를 도입해 오고, 장애인들은 그에 대해 의견만 제시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법안에 담아내고 그것을 입법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둘째, 진정한 의미의 연대 운동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장애인 운동은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왔었고, 그 때문에 일부 단체들이 주도하거나 연대한 적은 있어도 장추련처럼 범장애계가 하나 되어 연대 투쟁을 벌인 기억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장애계의 숙원이던 범장애계의 연대를 이루어냈고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시혜로부터 인권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장애인이 사회경제적 약자로서 물질적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장애인 또한 국민이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음을 선포하고 그러한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침해받은 권리가 구제되도록 하는 인권적 패러다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장애인 인권 운동의 결실이요 중간 결산이라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장애인 인권 운동의 종착역은 아니지만, 지나긴 세월 장애인 인권을 위한 투쟁의 산물이요 중간 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장애인 인권 운동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토대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와 시민의식이 성숙되어 가고 있음을 웅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국가인권위는 차별시정 (소)위원회를 통해 각 영역의 차별을 해소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어 정부에 입법권고까지 하였지만, 현재까지 특별한 법 제정 움직임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각 차별 당사자로 하여금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촉발시킬 것이고, 기본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이 담아내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별도의 개별 차별금지법 제정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주요 내용


지난 3. 6.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총칙-차별금지-장애 여성 및 장애 아동 등-장애인차별시정기구 및 권리구제 등-손해배상, 입증책임 등-벌칙의 순서로 총 6개장, 50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원했던 모든 것이 다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① 직접 차별, 간접 차별,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 광고에서의 차별 등 그동안 외국에서나, 이론적으로나 거론되어 왔던 차별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점(제4조), ② 최근 장애인 운동의 패러다임에 발맞추어 자기결정권 및 선택권을 규정한 점(제7조), ③ 장애인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와 정당한 편의제공을 위한 각종 지원을 할 의무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한 점(제8조), ④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성 등, 가족·가정·복지시설, 건강권 등 각종 영역에서의 차별행위를 구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점(제2장), ⑤ 장애여성과 장애아동, 그리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제3장), ⑥ 차별시정기구는 인권위 내에 장애인차별시정 소위원회의 형태로 두고 있다는 점(제40조), ⑦ 법무부 장관에게 시정명령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제43조), ⑧ 손해배상에 있어서 손해액 입증을 완화하고 재산상 손해 추정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제46조), ⑨ 입증책임의 전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소송 단계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입증책임을 분배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제47조), ⑩ 소송 제기 전이나 소송 제기 중이라도 임시로 차별행위를 중지시킬 수 있는 법원의 임시구제조치 제도를 도입하였다는 점(제48조), ⑪ 악의적인 차별의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제49조), 확정된 시정명령 불이행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제50조) 벌칙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역사적인 매듭을 하나 지었을 뿐, 차별금지와 인권옹호 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제 우리 앞에 남아있는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감시 및 개정 추진연대’로 개편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감시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해결책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문제 해결 방법이 개정이라면, 법 개정, 개선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둘째, 공포 1년 후 시행에 발맞추어 시행령이 제정되어야 하는데, 최근에 차별시정위를 중심으로 관련 각 부처가 합동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우리는 시행령 제정 과정을 감시하고 법안의 내용과 취지에 맞는 제대로 된 시행령이 나오도록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투쟁해야 한다.


셋째, 관련 법령의 제·개정에 나서야 한다. 특히, 국가인권위법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하면, 차별시정기구는 국가인권위 내에 ‘장애인차별시정 소위원회’ 형태로 존재하게 되어 있다(제40조). 따라서 국가인권위법을 개정하는 작업을 통해 장애인차별 소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다른 차별 사유들도 보다 전문화된 소위원회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관련 소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국가인권위가 제한적이나마 시정명령권을 갖도록 협력하고, 더 나아가 모든 차별 사유에 대해 적용될 차별금지(기본)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장애인들이 선도적으로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


넷째, 장애인권리협약이 국회에서 비준되도록 투쟁하여야 한다. 또한 비준 과정에서 관련 법령의 개선에 나서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성공에 대해 충분히 기뻐하고 축하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마음을 가다듬고 최소한 향후 1년은 위와 같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우리나라 장애인의 차별과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계속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감시하고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살아있는 법, 실효성 있는 법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힘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하였다!
실효성 있게 집행되도록 감시하고 투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