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진보적 인권운동의 길을 고민하자

인권이념의 급진화는 인권의 제 자리 찾기

인권운동의 길을 찾자고 떠난 여행을 이번 호로 마친다. 애초에 계획했던 10회의 약속이 이번 호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인권운동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고, 인권운동이 부닥치고 있는 현실을 살피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노력해왔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걸어야 할 인권운동의 길이 무엇인지 딱 부러지게 찾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 필자가 이런데 독자들이 느끼는 공허함은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필자가 혼자 찾는다고 찾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운동에 복무하는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 실천, 이를 통한 보완의 과정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인권운동의 길이라는 것이 뚜렷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연재를 하는 중에 말하고 싶었으나,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국제연대 부분이다. 이에 대한 이해가 얕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국제인권운동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언급하도록 한다.



일상적인 국제연대는 불가능한가?


한국사회 인권운동이 국제연대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은 1993년의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이전까지 국제연대는 특정한 종교나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었다. 1993년 이후에 다양한 국제인권조직들과 연락하고, 유엔의 각종 회의에 참여하고, 보고서를 제출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아직 인권운동에서 국제연대는 우리 사회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고발하면서 그를 통해 정부를 압박하는 방법(부메랑 효과)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 사회 인권운동에서 국제연대 활동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한국의 인권상황과 연관지어 벌이는 국제연대활동이다. 이것은 유엔 각 조약에 대한 민간단체 보고서 사업이나 유엔의 인권이사회(예전에는 인권위원회)에 대한 모니터와 특정 사안에 대한 로비, 홍보활동들이 있다. 1990년대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제연대 활동에서 유엔의 기구들을 활용하고, 조약상의 절차들을 활용하여 나름의 성과를 얻은 바가 있다.


둘째, 많지는 않지만 국제적인 사안에 대한 지속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는 경우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공과 인권탄압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하는 경우가 대표적이고, 이라크 전쟁에 대한 모니터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버마 민주화를 위한 지속적인 활동, 아프가니스탄 빈곤아동들에 대한 지원활동과 같은 활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된다. 필리핀에서 벌어지는 인권활동가들에 대한 암살에 대한 항의운동도 새롭게 전개된다.


셋째, 국제적인 합의나 연대행동에 동참하는 경우다. 어떤 회의의 결정을 국내에서 실천으로 옮기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신자유주의 반대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운동에 대한 국제행동에 참가하는 경우가 있다. 한 주제를 정해놓고 꾸준히 활동을 전개한다기보다는 계기를 활용하여 국내에서 국제반전행동 등을 조직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국제연대 운동은 아직까지 시도는 되고 있지만 본궤도에 오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국제연대와 국내운동을 분절적으로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은 역량의 인권단체들이 국내 사안을 처리하기에도 다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연대운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단체나 활동가들의 수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이슈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는 전 지구적 주제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국내 사안에 매몰된 인식을 넘어서 지구적 차원에서 공동의 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회의에나 참석하고, 보고서나 내는 것을 넘어서 공동의 캠페인이나 공동의 행동들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특히 아시아지역에서는 일정정도 책임을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번번이 이런 논의는 중요한 국내 사안들에 떠밀리게 된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관련 단체나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부터 구성하는 것, 그로부터 지속적인 정보의 소통과 논의들을 이어가는 것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



2007년 인권운동은 무엇을 할까


올해는 우리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것은 1986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올해가 최대의 격변기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반도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2.13 베이징 6자회담 이후 북한과 미국 간의 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한반도에서 정전선언과 북미 수교에 따른 한반도의 정치적 지형의 변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주한미군재배치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고, 2012년까지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 받으면서도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도 그대로 추진한다. 뿐만 아니라 한미 연합전쟁훈련들이 계속되고, 다자간 군사훈련에도 한국군이 참여하게 되는 상황, 군비의 증강과 미사일 방어체제가 구축되는 상황 등은 한반도의 군사주의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증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반도 비핵화가 추진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로 한미FTA 협상 추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폭력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한미FTA만이 아니라 EU, 중국을 포함한 세계 20개국과 동시에 FTA 체계를 추진함으로서 신자유주의적인 질서가 완성되게 되는데,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은 폭력적으로 진압당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유주의적 개혁의 성과들조차도 실종되고, 권력의 반동화,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가 진행될 수 있고,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후퇴가 예상된다.


올해 전반적인 인권과 관련한 정세의 흐름은 크게 보아 6월에서 8월에 이르는 기간이 상당히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그럼으로써 87년 체제에 대한 진단이 내려지는 이 시기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해고도 전망된다. 그리고 곧바로 한국사회는 대선국면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올해의 대선과 내년의 총선을 통해서 권력이 재편기를 맞게 되고, 진보운동진영도 재편을 위한 움직임을 서두르게 된다.


이러한 때에 인권운동이 무엇을 중심적인 과제로 설정하고 대응해 나가느냐는 향후 인권운동의 진로와 관련해서 많은 규정성을 갖게 되므로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권운동의 주체적인 측면들을 보면, 이전에도 지적했지만 너무도 많은 사안에 단체들이나 활동가들이 분산되어 있다. 이 분산된 역량을 어떻게 집중시킬 수 있나 하는 것이 올해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신자유주의 질서의 완성과 이에 따른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 다른 측면으로는 국가폭력의 증대에 맞서서 인권운동은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중들의 투쟁에 대해서 적극적인 엄호와 연대를 실현시켜가야 한다. 아울러 통제되지 않는 국가안보질서, 한미동맹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와 아울러 평화운동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준비가 요청된다. 그리고 선거 시기에는 우리 사회 인권적 의제들을 모아내서 집대성하고, 이를 위해서 인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적인 인권과제들을 합의해내고, 이를 공통의 요구로 걸고 연대 투쟁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진보적인 인권운동의 길 찾기에 나설 때


현 시기 인권운동은 심각한 상황, 이대로 두면 중병으로 발전할 지도 모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게 이 연재의 진단이었다. 그 중병은 운동에 활력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 운동의 영향력과 파괴력이 엄청 떨어졌다는 것, 바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방향과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인권운동의 연대는 더 어려워진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낳는 원인은 너무 다양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진보적 인권운동 이념을 운동이 만들지 못하고 있고, 국가기구와 보수진영이 능동적으로 인권문제를 치고 나오는 것에 대해 대응하기에는 조직이 무기력하고 단체들은 개별 사안에 매몰되어 있고, 이런 상황을 극복할 대안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인정한다면,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의 혁신 방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혁신, 이념의 혁신, 조직의 혁신은 어떤 운동이든지 항상 추구해야 할 과제다. 변화하지 않는 운동은 고이게 되고, 썩게 된다. 어제까지는 건강한 조직이었다고 해도 당장 오늘의 상황에 맞게 변신하지 않으면(변절이 아니다.) 시대에 뒤처지거나 도태된다. 세상의 변화의 속도는 엄청난데 운동은 관성에 묶여서 구태의연한 사고를 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패배로 귀결될 것이다.


인권운동은 고독한 위치를 갖는다.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인권으로 포장하고 있고, 거기에 여론은 놀아난다. 자신들의 이기적 이익이 인권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이런 상황은 인권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지배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인권이념의 급진화는 진보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인권의 제 자리 찾기에 해당한다. 지금이라도 실천 속에서 진보적 인권이념과 운동이론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다시 민주화를 제기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해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동력은 이미 소멸되어 버렸다. 민중 배제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요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제출되는 자유로운 민중의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인권운동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한 투쟁만이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억압 상황을 깰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 담론을 확실하게 저항 담론화하고 생존권적 위기에 몰린 민중들의 해방의 수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간과했던 문제들- 소수자의 차별, 평화 등도 포함되어 재구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기획이 필요할 때


인권운동은 어떤 특권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권리를 보편적인 상식으로 만드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는 세상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인간의 삶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본과 시장, 그래서 특권화되어 있고, 폭력적인 신자유주의 질서를 해체하려는 투쟁은 인권운동의 본연의 임무에 속하게 된다. 이런 본연의 임무를 실천하기 위한 인권운동의 새로운 기획과 연대의 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다른 영역의 진보운동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늘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늘 현실에 철저하게 발 딛고 서 있으면서도 꿈을 꾼다. 우리가 인권활동가라면 그 꿈은 모든 억압이 사라지고, 모든 불평등이 해소되는 그런 사회를 인권으로 이룰 수 있다는 꿈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우리는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가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운동의 혁신만이 살 길임을 다시 인식하는 일, 그 혁신이 없으면 인권운동은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부족한 이 글의 결론으로 대신한다. 깨어 있는 활동가들의 비판을 기대한다. 다음 호부터는 다른 주제의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들을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이 연재를 마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