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한미FTA, 죽거나 혹은 아프거나

초국적 자본의 이윤과 환자생명을 맞바꾸는 재앙

의약품이 환자에게 오기까지는 크게 연구개발과정, 특허등록과정, 시판허가과정을 거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약회사는 압도적인 결정권을 가질 뿐 아니라 독점권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심지어 불법적인 행위도 한다.


이들이 늘 무기처럼 내세우는 연구개발은 실로 문제가 많다. 첫째, 제약회사는 환자의 필요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따라 무엇을 연구할지를 결정한다. 둘째, 연구개발에 필요한 재정을 비롯하여 공적부문의 기여가 상당함에도 그 성과는 공적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셋째, 기술혁신을 위한, 더 나은 치료를 위한 의약품을 연구하기보다는 유사의약품(me-too drug), 기존 약물의 사소한 변화에 치중한다. 특허제도가 이미 기술혁신과 확산을 위해 개발자에 대한 보상제도로서의 기능을 벗어났음에도 제약자본은 마치 특허제도가 없으면 신약개발을 못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제약회사에게 가장 큰 선물, FTA


특허등록과정에서는 WTO TRIPS(세계무역기구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서 강제하는 20년간의 특허보호기간에 더하여 독점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특허기간 확대, 특허대상 확대, 강제실시권 제한을 관철시키려 한다. 미국에서는 같은 약이라도 용도, 용량, 색깔과 코팅조차도 특허가 가능하고, 기존 약물의 혼합도 특허가 가능하다.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효과를 가진 새로운 물질에만 특허를 받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착상(idea)에도 특허를 받아서 독점기간을 늘리고 있다.
부실 특허와 특허 남용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특허권이 있다면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약이라도 허가하지 못하도록 요구한다. 자료독점권을 요구해서 복제의약품 생산을 차단하려고 한다. 그리고 신약을 빨리 팔고, 높은 가격을 보장받기를 바란다.


초국적 제약회사에게 FTA만큼 좋은 기회이자 큰 선물도 없다. FTA를 통해 위의 요구들을 한방에 해치우게 생겼으니 말이다. FTA를 통해 미국은 특허권의 강화뿐 아니라 각국의 의약품제도, 의료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제약회사가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고자 한다. 독점기간이 늘어난 만큼 비싼 약값을 제약회사에게 주어야 하고, 약값을 결정할 때 제약회사 맘에 안 들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걸고, 한국의 의료제도나 정책이 제약회사의 기대에 못 미치면 정부가 소송을 당하고, 지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기가 막히는 상황이 코앞에 와 있다.



한미FTA 체결되면 1년에 2조원 의약품비용 추가부담


8차 협상이 서울에서 있었던 3월 9일, 한미FTA저지 보건의료대책위, 한미FTA지적재산권공대위, 환자권리를 위한 환우회모임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FTA가 체결될 시 의약품분야에서 국민의 부담이 연간 2조원씩 발생한다고 밝혔다. 특허심사기간만큼 독점기간을 연장해주고,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약제비적정화 방안이 무력화되고, 신약허가기간을 단축해주고, 특허가 있는 약은 허가해주지 않고, 자료독점권 때문에 복제약 출시가 늦어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부실 특허와 전문의약품 대중광고로 인한 피해액을 5년간 추정해 보았을 때 추가부담액이 10~12조 원에 이른다. 강제실시의 제한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추산이 불가능하다.


3월 6일 국정브리핑에서 유시민 복지부장관은 “선천성 장애를 예방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이 곧게 자라나게 하려면, 가난한 노인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고 장애인들에게 경제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며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한 일은 1,000억 원을 마련해보겠다며 빈민들을 쥐어짜서 의료급여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는 작년 초에 약제비를 줄여보겠다 라고도 했다. 한미FTA로 약값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그는 작년 말 국정감사에서 “의약분야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목표를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며 한미FTA는 협상을 잘해도 손해, 못해도 손해라는 것을 털어놨다. 약제비적정화방안은 한미FTA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방어막이자 거래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아이들과 가난한 노인들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했던 유시민 장관은 초국적 제약회사에게는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1년에 2조 원씩 내어주고, 1천억 원 아끼려고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턴 꼴이다. 1년에 2조 원이면 암, 중풍, 심장질환을 무상의료하고도 8천억 원이 남는 돈이고, 노인 틀니를 모두 건강보험적용하고도 1조 1,500억 원이 남는 돈이다. 현재 연간 건강보험재정규모가 24조 원이고, 여기서 의약품비용이 7조 2천억 원을 차지하니 5년만 지나도 건강보험제도는 정말로 위태롭게 된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의약품 분야만 보더라도 우리는 너무 큰 것을 잃게 된다.



태국민중을 치료하기 위한 결단, 강제실시


작년 11월 30일 태국에서는 최초로 보건장관이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태국정부는 에이즈치료제 에파비렌즈와 칼레트라에 대해 5년간 강제실시를 하여 오리지널 약의 절반가격 이하로 공급하기로 하고, 심장질환 치료에 사용하는 혈전치료제 플라빅스에 대해서는 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1/6~1/10의 가격으로 공급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태국국영제약회사가 자체적으로 생산할 때까지 인도의 제약회사로부터 복제약을 수입해서 공급하기로 했다. WTO에서도 합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는 특허권자 외의 제3자가 값싼 복제의약품을 만들 수 있는 조치이다. 이로써 태국정부는 연간 10억 바트 이상(2,400만 달러)의 이득을 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태국 에이즈예방 및 치료비예산이 연간 27억 바트인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강제실시는 태국정부의 에이즈치료접근프로그램의 발전과 실패를 결정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다. 더욱이 이번 결정은 미국과 태국 간 FTA협상이 중단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태국의 HIV감염인은 60~70만 명이고, 이중 17만 명 이상이 에이즈치료제를 복용해야 하지만 8만 명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 그나마 8만 명의 에이즈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태국국영제약회사(Government Pharmaceutical Organization:GPO)가 에이즈치료제를 직접 생산하여 싸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태국국영제약회사는 첫 번째 복제약 GPO-vir을 오리지널 약의 1/16의 가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HIV/AIDS감염인을 위한 국가에이즈치료제접근프로그램(National Access to Antiretroviral Program for People Living with HIV/AIDS)은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40%의 예산 증가만으로 8배 이상 확대되었다. 이러한 비용절감을 통해 태국정부는 2004년부터 전체에이즈치료접근프로그램(Thai program of universal subsidized access to AIDS treatment)으로 확대할 수 있었고, HIV/AIDS치료와 예방을 위해 27억 바트의 예산으로 그럭저럭 버텨왔다. 하지만 태국정부의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에이즈치료제를 먹어야하는 17만 명 이상의 에이즈환자에게 모두 공급해야 하고, GPO-vir에 부작용이나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위해 2차 치료제를 공급해야한다. 2차 치료제의 비용은 평균 1차 치료제보다 14배 이상 비싸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차 치료의 비용을 1/10로 낮추기 위해 강제실시를 함으로써 태국정부는 2025년까지 32억 달러(1,270억 바트)까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태국정부는 태국 민중을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기로에서 절박한 선택을 하였다.



선택할 길은 너무 분명하다


유시민 장관은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어디에 써야할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법적으로도 가능하고, 복제약을 생산할 능력도 된다.


물론 태국의 결정을 실행하는데 모든 게 순조롭지는 않다. 초국적 제약회사와 미국정부, 세계보건기구마저도 벌떼같이 달려들어 태국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태국정부가 제약회사의 재산을 도둑질한다며 한편이 되어 태국정부에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한 제약회사는 태국에서 약을 팔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 이들은 주장의 근거로 태국의 강제실시가 불법이다, 복제약은 열등하다, 환자를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늘 하는 거짓말에 대해 태국의 에이즈환자와 활동가들은 1998년부터 의약품 강제실시투쟁을 벌여왔다. 이들의 살고자 하는 열망과 오랜 투쟁은 2004년 2월에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사가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특허권을 태국에 양도하게 만들었고, 2006년 8월에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가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특허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태FTA협상이 중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에이즈치료제 뿐만 아니라 다른 치료제에 대해서도 강제실시를 하게 만들었다.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보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는 대안이 아니라 재앙이다. 태국의 이번 결정을 지지하고 지켜내는 것은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과 독점을 보장하기 위한 FTA를 막아내는데 중요한 보루가 될 것이고,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모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