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도시와 환경성 질환 그리고 <아픈 아이들의 세대>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성 질환부터라도 무상의료를

조카는 4살이고, 미국에서 태어나서 내내 미국에 살다가 서울로 돌아온 지 반 년이 조금 넘었다. 미국에서는 5대호 근처에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 도시 중에 한 군데에서 살았다. 조카가 서울에 오고 6개월쯤 되었을 때 첫 아토피가 발병하였고, 증상은 아주 심했다. 볼 것도 없이 아토피 발병의 원인은 서울이라는 총체적인 공간에 있는 셈인데, 음식은 비교적 조심해서 한살림이라는 생활협동조합을 통해서 먹은 편이라서 집에서 먹는 음식에는 별로 혐의를 둘 점이 없다. 동생은 구로동에 있는 재건축한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견디다 못해서 역시 서울이지만 개인주택인 아버님 댁으로 조카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 후 아토피가 사라졌다. 둘째 조카의 출산 이후에 아이는 다시 아파트인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다시 아토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조카를 내가 알고 있는 큰 대학병원의 아동센터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소개하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국적도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나의 조카가 서울에 돌아온 지 일곱 달 동안 겪은 사건이다. 도시와 환경성 질환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먼 곳에서 사례를 찾을 필요가 없다.

사진출처 | 보건의료단체연합 홈페이지




숱한 의사친구들도 조카의 아토피에는 속수무책


나의 조카의 부모들에 대해서 잠깐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거의 쉬지 않고 미국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되었고, 상당히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국책연구원의 연구원이다. 어머니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두 부부의 연봉을 합치면 1억 원이 넘어가고, 요즘 20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아마 환상적일 정도로 소득이 높고 게다가 안정적인 정규직들이다. 나의 집안은 대체적으로 전형적인 중산층 집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정도일 것이다.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생태경제학을 전공으로 가지고 있으며, 보건경제학과 문화경제학에 대해서 약간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에 있고, 환경과 보건에 대해서 서류 형태의 자료를 우리 부부가 상당히 많이 축적해놓은 상태이다. 게다가 나의 부모님은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를 하셨던, 즉 육아와 교육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계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카를 중심으로 생각해본다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적절한 소득과 또한 육아와 보건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언제든지 돕고자 하는 친척들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막내 동생이 알고 있는 수많은 의사 친구들 그리고 또 내가 알고 있는 의사 친구들 역시 조카의 아토피를 예방하거나 완화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가장 쉽게 이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육아를 맡으면 되는데, 이건 구로동의 어느 아파트에서 조카를 탈출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장기적으로 육아를 할 수는 없다. 보다 못한 나의 아버지는 좀 먼 곳에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칠순이 가까운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살던 모든 것과 친구들과 지인들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하기는 또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돌아와 취직한지 6개월 밖에 안 된 나의 막내 동생이 모아놓은 돈이 뭐가 있다고 갑자기 이사를 하기도 어렵다.


서울의 상황은 대충 이런 것 같다. 우리 집 정도의 부를 가지고도 도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환경성 질환으로부터 바로 자신들의 아이를 지키기도 어렵다. 냉정한 현실이다.



공단지역을 훌쩍 넘는 도시의 대기오염


내가 추정해 본 조카의 아토피의 원인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집중된다. 첫째는 조카가 살고 있는 구로동 근처의 대기환경이 문제이다. 강남구보다는 아토피 발병률이 낮지만, 대체적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의 25% 이상이 아토피가 발병하는 지역이다. 이제는 굴뚝에서 오염물질을 발생시키는 공장들이 사라졌지만, 영등포역에서 개봉동까지 이어지는 주 노선은 버스전용차로와 결합되면서 아마 매 100미터마다 공장 하나가 발생시키는 정도의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을 것이다. 강남역 사거리 같은 대표적인 지역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양재동의 청계산 인근도 특히 취약한 지역이다. 반경 1킬로미터 내에 우리나라에서 단위 오염물질 배출량이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부 고속도로 서울구간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2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정체되는 이 구간에서의 오염물질 발생량은 울산이나 여수 같은 공단지역의 배출량을 초과한다.


조카 아토피의 원인으로 내가 추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육아를 맡은 ‘어린이 집’이다. 가정에서 육아를 전담할 수 없는 구조에서 생겨난 어린이 집과 같은 육아원들은 현재 제도가 적용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상업성과 정부의 관리 사이에 허점이 많다. 지원금으로 운영되지만 이윤을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완전한 사회적 기관도 아닌 상태에서 보모라고 불리는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권한을 가지며 전문가로 대접받지 못하는 약간 이상한 상황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들이 완전히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동육아와 같은 시민사회의 공동체 모델이 제시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도시라는 공간에서 일반화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최근에 ‘생태육아’라는 개념을 접목시킨 유치원들이 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되었지만, 역시 유치원 이전 단계에까지 내려가고 제도적으로 정착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영재교육이니 영어교육이니 하는 별로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지도 않고, 또한 아동들의 발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형적 피해자를 만들 것이 빤한 교육 과정에는 많은 사회적 자본들이 투입되지만, 정말로 기초적인 보건과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여러 곳들은 구멍투성이다. 조카의 경우가 충분한 인식이 있고, 경제적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놓고 본다면, 그 이하의 연소득 수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그야말로 파노라마 같다.


해법이 있을까? 아무 해법이 있을 리가 없다. 서울에서 광주, 대구, 부산 거기에 신제주시에 이르기까지 이런 대체적인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우리나라 도시는 없다. 서울 강남구 같은 부자 동네에서도 아동들의 아토피 발생률은 상상을 초월해서 3명 중에 한 명이라고 보면 된다. 기초단위로는 대구가 가장 높고, 광역지자체로는 제주가 가장 높다. 여기에 전혀 정비되지 않은 육아 시스템들이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데, 이 문제는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해결이 될까?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정성이 엄청나게 필요하다. 부모가 정성을 들일 수 있다는 것도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부모의 경제적 여력이 함수이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식들의 환경성 질환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평균적으로 여력이 되지 않고, 여력이 될 만한 부모들은 톨스타인 베블렌이 ‘유한 계급(leisure class)’라고 불렀던 2% 미만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들이다.



2%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고민, 환경성 질환


가장 최악의 상황은 이런 육아가 ‘하이엔드 마켓’으로 전환되는 경우이다. 하이엔드 마켓은 약간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미 유기농의 일부는 하이엔드 마켓으로 넘어갔고, 특히 수입산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는 국산 유기농 이유식의 경우는 완전히 하이엔드로 넘어갔다.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생협에서 그리 비싸지 않게 먹을 수 있던 산양유가 백화점으로 직거래 라인이 넘어간 이후로 어지간한 부자 아니면 구경도 못해보게 변했다. 육아기관도 곧 하이엔드로 넘어갈 전망이다.


이쯤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부모들이 낸 세금은 다 어디로 가고,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기에 육아를 위하여 기본적으로 필요한 식품과 ‘어른이 집’ 같은 것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불가격보다 동그라미 하나나 두 개는 더 붙여야 하는 고가의 하이엔드로 전환되는 것일까? 승자독식을 위한 경쟁사회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미덕이라고 하지만, 아직 말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영아와 유아들, 유치원도 가지 못한 이 아이들이 무슨 경쟁을 하라고 이 지경을 만드는 것일까?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한국의 도시는 “돈 있는 사람에게 쓸 자유를 주겠다”는 단 하나의 명제 위에 서 있는 망령 난 로마 도시들처럼 아직 ‘지불능력’을 갖추지 않은 아이들, 게다가 가난한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공공 서비스를 만들어낼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아토피는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심톰’ 즉 증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토피는 뭔가 신체발달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 아토피 때문에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아토피를 치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근본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아토피에 대한 자세이다. 유럽 병원이 가지고 있는 아토피 대처방안인 ‘아토피 프로토콜’이 이런 정신 위에 서 있다. 증상을 치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습관을 포함한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황에서 정신적 충격을 줄이고 주변과 깃들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유럽에서의 접근 방향이다.



내가 보건 특히 유아 보건에 관한 조사를 할 때마다 갖는 느낌은 이건 다른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썩은 한국 사회의 증상 그 자체라는 생각이다. 입장을 바꾸어 유아의 눈으로 본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잘못은 당신들이 했는데, 왜 내가 아파야 해? 가끔 환경부 같은 곳에서 대책이라고 만든 것들을 보면 한숨이 푹푹 난다. 이 상태대로라면 10년 후가 되면 더욱 문제가 심각해지지 전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 어찌해야 할 것인가? 다른 문제는 몰라도 적어도 육아와 환경성 질환의 경우에 제일 먼저 할 일은 ‘환경성 질환’의 병명을 지정하고, 최소한 이러한 질환에 대해서는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공해병’에 대해서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 도시의 환경성 질환을 알리고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으로 마지막 기댈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사회 밖에는 없다. 수 년 간 여러 공공 영역의 주체와 이 문제를 논의해봤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