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학교에서 날벼락 맞고 벼랑 끝으로 몰리는 노동자들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서울 성북구에 있는 ㅅ여자고등학교에서 12년간 근무하고 있는 정OO 씨에게 학교 인사담당자가 처음으로 계약서를 내민 것은 지난 2004년 5월경이었다. 그 인사담당자는 “감사를 받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정씨에게 1999년부터 5년 동안의 근로계약서를 한꺼번에 작성하라고 했다. 학교에서 구 육성회직원으로 각종 증명서 발급, 공문서 수발, 연말정산, 교장실 내빈 접대 등의 업무를 해오고 있던 정 씨는 별 생각 없이 인사담당자가 쓰라는 대로 계약서를 작성했고 이내 그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사진제공 | 학교비정규직 투쟁대책위(http://school.nodong.org)


“비정규직법 통과로 학교는 어쩔 수 없다”


그러던 2007년 1월 22일, 퇴근 시간을 두어 시간 앞두고 행정실 직원은 모두 교장 선생님의 전달사항이 있으니 학교 급식실로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급식실에 직원들이 얼추 모이자 교장은 “우리 학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4분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학교 여건 상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2월 말까지 담당 업무를 인수인계하라고 못 박았다. 사실상 해고 통지를 한 것이다. 계약직으로 해고의 당사자가 된 4명은 물론 다른 직원들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급식실은 일순간 냉랭해졌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교장은 정부가 잘 살고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며 “비정규직 법안 통과로 학교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한 직원이 행정실장에게 “우리가 해고당한 것이냐?”, “해고의 정확한 사유가 뭐냐?”고 뒤늦게 물었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이 학교에서 설명해주는 것보다 더 자세할 것”이라는 어이없는 대답만 돌아왔고 2월 25일자 해고 통지서만이 손에 쥐어졌다.


정 씨는 “학교 행정실은 학교의 심장부다”, “모든 것은 교장이 책임질 테니 나만 믿고 따르라” 했던 교장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더더욱 사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후 정 씨를 비롯한 계약직에서 해고된 이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학교 측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교장은 학사일정으로 바쁘다며 다섯 차례나 교섭일정을 연기했다. 마침내 교섭 자리에 마주앉게 되자 교장은 “학교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더욱 기막힌 일은 교섭이 있던 날 퇴근 시간 즈음해서 정 씨에게 교장과 교감, 실장이 번갈아가며 “노조에 가입한 걸 부모님은 알고 계시냐?”, “이러고 있는 것을 학부모회에서 알게 되면 학교보다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라는 협박을 한 것이다. 아무 말 없이 행정실을 나와야 했지만 정 씨는 노조를 탈퇴하지도 교섭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정 씨의 집에는 교장의 이름으로 제주산 옥돔이 배달되어 오기도 했다. 정 씨는 이 옥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다고 한다.


업무 인수인계를 끝내라는 날짜의 하루 전인 2월 27일 정 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해고를 철회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 입장은 변함이 없으나 정 씨가 학교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겠다며, “1년간 계약을 연장하고 계약 만료 시 근로관계를 자동 종료한다.”라는 계약에 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정 씨는 12년간 근무해온 직장에서 당장이 아니라 1년 뒤에 해고한다고 하니 이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정 씨는 다음 날부터 오늘까지 ㅅ여고 정문 앞에서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노예계약서를 쓰든가 그만두든가


서울 강남구의 ㅇ초등학교에서 7년 동안 계약서 한 장 없이 근무해왔던 채OO 씨는 방과 후 보육 전담 교사다. 같은 학교 일반 교사들에 비해 한 없이 얇은 월급 봉투였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았고, 맞벌이 가정에게 마음 놓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도 가져왔다. 그러나 채 씨 또한 지난 3월 학교 측으로부터 보육교실 사업이 서울시에서 서울시 교육청으로 이전되기 때문에 7년 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계약서를 써야 한다며 터무니없는 계약을 요구받고 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는 것은 채 씨에게 그동안의 호봉과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임금의 3분의 2가 삭감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계약 기간이 6개월로 초단기 계약이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채 씨에게 “공무원 복무에 관한 제 규정과 학교 운영방침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에는 임용권자의 어떠한 행정조치에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음”을 서약하는 각서를 끈질기게 강요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학교 측이 채 씨가 노조에 가입하거나 1인 시위를 하는 것을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 각서대로라면 언제, 어떻게 잘려도 이의제기조차 못하는 ‘노예계약서’에 다름이 없다.


채 씨는 지난 3월 30일 서울시 교육청을 찾았다. 교장이 이러한 계약과 각서가 서울시 교육청의 지침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변명을 했기 때문이다. 채 씨가 확인한 교육청의 운영 매뉴얼에는 분명 각서와 노조 활동, 정치적 행동을 금지하는 근로계약서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교육청은 “이는 매뉴얼일 뿐 지침이 아니고, 그러므로 매뉴얼을 따라하든 안 하든 전적으로 학교장 책임”이란 말 뿐이었다. 이렇게 교육청과 학교가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한 사람의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각서와 계약서는 전국 각 학교로 내려가 비정규직의 목을 죄고 있다.



제비뽑기로 계약해지자 뽑기도


서울 강남구 ㄱ여자고등학교에서 1985년부터 22년간 청소 일을 해오던 천OO 씨는 공립학교인 ㄱ여고에서 청소 일을 외주용역화하면서 천 씨에게 용역으로 전환해서 일을 하든가,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초단기 계약서를 작성하든가, 아니면 그만두든가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천 씨는 1989년부터 기능직 공무원 10급 대우를 받는 학교 회계직으로 인정받아 왔기에 상대적으로 괜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천 씨는 용기를 내어 이들 모두를 거부하고 계약서 작성을 못하겠다고 하자 학교 측은 교직원을 시켜 청소물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나섰다. 어느 날 갑자기 휴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휴게실 문의 자물쇠가 바뀌기도 했다. 어쩌다 나이가 한참 어린 행정실장을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도장 갖고 와서 빨리 찍어라!”라는 윽박을 들어야 했다. 천 씨에게 매일 매일의 출근은 이제 전쟁과도 같아져버렸다.


천 씨는 얼마 전 정부가 에듀크린(Edu-Clean:초중고 청소) 사업 시 직접 고용하지 말고 용역업체에게 맡길 것을 각 학교 행정실장에게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이 자신의 일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인근 다른 학교는 이미 외주용역으로 돌려 이미 2명을 해고했고, 또 한 고등학교는 직접 고용했지만 근무시간을 축소시켜 임금을 절반으로 줄였던 것이다.


한편 지난 3월 3일 서울 광진구 ㅅ예술고등학교에서는 근무한 지 5년에서 20년까지 되는 실기강사 7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되었다. 학교 측에서 밝힌 재임용 거부 사유는 “실기강사들이 수업은 잘 했으나 책임강사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고 청소와 정리 정돈을 안 했다”는 이유와 “학교에 비협조적이고 학교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학교 방침을 불이행 했으며 인화단결을 해쳤고 학부모 민원이 발생했다”는 것 등이었다. 며칠 뒤 어렵게 이뤄진 면담에서 교장은 “부장이나 책임강사가 지시를 하면 그것이 합당하냐 아니냐의 관계없이 복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며 해고 이유를 밝혔다. 해고 당사자들은 말문이 막혔다. “수업이 없는 날도 부장이 이유 없이 아침 9시에 오라면 와야 하는 것”이란 말에는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그 정당성을 불문하고 부장과 책임강사가 지시한 일이라면 일체의 이의가 없어야 하는 것”이란 말을 들으며 이곳이 배움을 이야기하는 학교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부장과 책임강사들의 독단과 전횡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7명의 해고자들은 책임강사들이 수업 시간을 편파 배정했고 이를 통해 충성심을 강요했다며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것일 뿐 학교 정책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해고자들은 학교 측에 부장과 책임강사들이 자의적 판단과 허위보고로 만들어진 해고 사유만 믿지 말고 공정한 징계위원회를 열어 납득할 만한 의견수렴 등의 과정을 거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학교는 “강사와 책임강사의 의견이 상충될 경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책임강사가 옳은 것으로 본다.”라는 억지를 부리며 “계약직 강사 하나 자르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는 비상식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경기도 ㅁ초등학교에서는 이에 못지않은 일도 벌어졌다. 급식실 조리종사원 중 1명을 잘라야 한다며 학교 측은 제비뽑기로 계약 해지자를 정하게 했던 것이다. 현재 학교 내 비정규직은 10만여 명에 달하며 서울시 학교 비정규직은 전체 학교 종사자의 58%를 차지한다. 지난 해 11월 통과된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보호받기는커녕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공공기관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는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의 현주소이다.


덧붙이는 말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3월 27일 열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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