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현대판 신분제, 호구제도에 우는 이주민들

중국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실태

“매우 속상할 따름이에요. 저희는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왔어요. 그리고 베이징이 발전하는데 공헌했고요. 하지만 베이징은 저희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아요. 일반 학교는 이주자의 자녀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공부 할 수 있길 바라며 우리가 직접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가 힘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도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 진쾅 두 민카오, 콴 젠상 신쥬


사진제공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2006년 9월 중국 베이징의 이주민 학교가 폐쇄되어 이 학교에 다니던 이주민 어린이 1천 명이 학교를 잃었다. 위 두 사람은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던 중국 내 이주노동자들이다. 중국에 사는 사람은 중국인이지만, 중국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도시 사람 그리고 시골 사람. 뜬금없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엉뚱한 구분이 호구(戶口)제도라는 이름 아래 중국인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시골사람들이 도시에 몰려오는 것을 막겠다는 이유로 1958년 ‘호구(戶口)등기 조례’가 제정된 이후, 시골에서 ‘상경’한 꿈 많던 이주자들은 가혹한 현실에 부닥치게 된다.



도시 사람, 시골 사람


호구제도에 따라 자신이 등록되어 있는 지역을 떠나 타 지역에서 거주하려 할 때 그 지역에 신고하고, 개인사정에 따라 6~12개월의 임시 거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허가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우선 여기에 드는 비용은 200~500 위안이며 경우에 따라서 추가 비용이 들기도 한다. 대도시인 베이징에서 거주 허가를 얻기는 어렵다. 베이징에서 일하는 한 중국 이주자는 “경찰과 개별적으로 접촉하지 않고서는 허가를 받는 것은 어렵다” 고 말한다. 보증인이 없는 경우에는 추가 비용이 든다. 이러한 절차는 도시에 거주하는 불법 이주민을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이것은 외지에서 겪는 어려움의 첫 관문에 불과하다. 수백만 명의 이주민들이 적합한 의료, 주거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도시에서 영주권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은 직장에서 차별당하고, 착취당하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다. 국내 이주자의 법적 지위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문화적으로도 하위 층으로 취급된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이를 이용해 고용주는 어떠한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고 이주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 이주자의 자녀는 무상의 의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갖지 못하며,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는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자녀는 시골에 남아 있다.


시골에서 이주한 중국의 국내 이주민들이 도시에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 지역에 임시 거주 등록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도 힘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따라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합법적 등록 절차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할 수 없고, 이로 인하여 도시에 불법으로 거주하게 된다. 중국 내 “미등록” 이주민들은 경찰, 지주, 고용주, 지방 공무원, 지역 영주권자들의 인권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미등록” 이주민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 체포의 위험이 있는 도시로 계속 모여들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무권리 상태의 이주노동자들은 가장 힘들고 가혹한 조건 속에서 노동하면서 중국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고도경제성장에는 이들에 대한 가혹한 노동착취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중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창립 멤버이다. 하지만 중국 노동자의 46%는 노동계약을 맺고 있지 못하다. 조사되지 않은 수치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이들이 노동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사태에 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지난일보>(Jinan Daily)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국내 이주 노동자 10명 중 8명은 노동계약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한다. 2005년 12월 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무자중 20%도 못 미치는 이들만이 노동계약을 맺고 있다. 초과근무를 강요한다거나 휴일에 쉬지 못하게 하는 사례, 임금 체불, 고용주가 부당하게 벌금을 물리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부가 134개의 회사를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조사하였는데 이들 중 단 한곳도 노동계약을 맺고 있는 곳이 없었다. 중국의 국내 이주노동자는 직장에서 자신의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숙생활을 하고 있는 중국 국내 이주노동자들.


이렇게 고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서만은 편히 쉴 수 있을까? 경제.사회.문화적권리에관한국제조약(사회권조약) 제11조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적합한 생활 기준을 제공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즉 적합한 주거가 제공되어야 하며…” 라고 언급하고 있다.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이주자의 주거 환경은 형편없다. 한 21세의 남성은 바닥이 채 마무리 되지 않은, 창문도 없는 창고 방 한 칸에 담요를 깔고 30명 이상이 자고 있다고 조사관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만 샤워나 목욕을 할 수 있다.


공장 기숙사에서 살고 있지 않은 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나의 방을 여러 사람이 나눠 쓰는 게 일반적이다. 북경에 위치한 “제징 빌리지”라는 곳은 1996년 붕괴되어 1998년 재건축되었는데 붕괴 당시 1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프기라도 하면 어떨까? 힘든 타향살이에 건강이 최고겠지만, 이쯤 되면 아플 만도 하지 않은가? 사회권조약 제12조는 “모든 사람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한 최상의 기준을 누려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민에게는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우선 통계를 보자. 임신 중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여성 3명 중 2명은 이주민이다. 의료보험이 없거나 치료비가 없는 경우에는 진찰을 받을 수조차 없다. ‘전중국여성연합’(the All-China Women’s Federation)이 2006년 1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서 인터뷰에 응한 여성 이주민중 출산보험을 가지고 있는 여성은 6.7%에 불과했다. 이주민에게는 건강에 관련된 정보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로 인하여 HIV/AIDS감염 등에 쉽게 노출된다. 더욱이 의료분야가 민간화되면서 의료비는 더욱 오르고 있다. 2003년까지 5년 동안 평균 의료비용은 67% 올랐다. 2006년까지 5억5천만 명의 도시 거주자 중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23%인 1억3천만 명에 불과하였다.


산업재해라도 당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 국내 이주노동자 중 90%는 업무에 관련된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한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주노동자는 의료비용을 받기 위해서 고용주와 직접 협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 어렵다. ‘중국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민간단체’의 리 타오(Li Tao)에 따르면 면담을 하였던 이주노동자중 거의 70%가 산업재해 후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너무도 열악한 노동조건


자식에게는 이 가난과 고통이 대물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얼마나 간절하랴. 국내 이주민의 자녀는 부모의 고통을 그대로 대물림 받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이주민의 자녀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불법이면 자녀는 그 지역의 학교에 갈 수 없다. 간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주민 자녀를 위해 개설된 불법 학교이다. 정부는 이런 학교를 단속하고 문을 닫게 한다. 이 외에도 학교 등록금이 비싸서, 입학시험에서 떨어져 많은 이주민의 자녀들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국내 이주민의 전체 인구 중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5~10%에 달한다. 이런 여러 어려움으로 부모가 돈벌이하러 도시에 가도 아이들은 고향에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렌민 대학’(Renmin University)의 조사에 따르면 20%의 이주민만이 자식을 도시로 데리고 온다고 한다. 이주민 여성의 약 80%는 자녀들을 1년에 1~2번 정도밖에 만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 3월 「중국 이주민 보고서-중국 국내 이주민: 차별과 남용, 경제 ‘기적’의 대가」를 발표하여 호구제도의 문제점을 자세히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에서는 호구제도를 통해 야기되는 주거, 안전, 교육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일어난 인권 침해를 언급하며 호구제도를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뿐만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호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바 있다. 다행인 것은 지난 3월 29일, 중국공안부는 전국치안관리공작회의를 열어 ‘현대판 신분제’라는 비판을 받아온 호구제도 폐지 방안을 논의하였다. 공안부에 따르면 중국 전체 31개 성.자치구.직할시 가운데 12개 성.자치구.직할시가 호구제도를 없앴다고 한다. 이제까지 호구제도를 통하여 중국의 국내 이주민과 그 자녀들이 겪어야만 하였던 고충을 생각하면 이러한 중국정부의 변화가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호구제도는 19개의 성.자치구.직할시에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속에서 ‘이주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침해 받고 있는 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



폐지되어야 할 호구제도


하지만 이것이 중국만의 일이겠는가. 이제 더 이상 여론의 주제가 되고 있지 못하지만 2월 11일 여수에서는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이주’ 노동자였기 때문에 쇠창살에 갇혔다가 죽었다. 하지만 어디 이 10명만의 이야기겠는가. 이주민 문제는 아시아 전역에 걸쳐 매우 심각하다. 이제 한국의 여러 이주민 단체들이 한국의 이주민 문제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이주민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이를 위하여 아시아 전역에 있는 NGO와의 연대와 꾸준한 모니터링, 정보 공유 또한 필수적일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뿐만 아니라 UN의 인권규약들은 그 대상을 특정한 집단이 아닌 ‘모든 사람’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가의 국내법에서는 ‘모든 사람’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한 것은 ‘특정한’ 집단이나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같은 중국인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대도시에서 태어났느냐 시골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소위 ‘신분’은 달라지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런짜이베이징(人在北京, 감독 리샤오홍·李少紅)은 대도시 베이징에서 벌어지는 호구가 있는 베이징런(北京人)과 호구가 없는 외지인의 삶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산시성의 한 가난한 산촌 출신인 ‘메이꾸이’는 베이징의 대학에 입학하여 북경출신의 대학생과 사랑에 빠지지만, “너의 목적은 오로지 베이징에 머무르는데 나를 이용한 것 아니냐. 무슨 감정타령이냐?”는 비난과 함께 버림을 받는다. 그 후 호구를 얻어내야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영주권을 위하여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인 장핑을 만나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장애인을 이용하는 내용은 내키지 않지만, 실제로 북경인(北京人)들은 ‘외지’인을 그들과 동일하게 보지 않으며, 북경인의 부모는 자식이 북경인(北京人)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이주민의 자녀는 부모의 고통을 그대로 대물림한다. 학교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주민을 위해 개설된 불법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아이들.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할 때


젊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호구라는 조건으로 버림을 받았던 것, 그리고 호구만을 위해서 사랑도 없는 결혼에 자신을 밀어 넣었던 것, 비단 그녀의 선택이 잘못인가?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있는 제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일그러지게 하는가? 비단 호구제도만의 문제인가.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자신이 그렇게 선택하여 불법이 된 것인가, 제도의 피해자인가? 이들에게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기대 할 수 있을까? 국가에서 ‘모든 사람’의 평등을 이야기할 때, ‘미등록’ 이주자는 이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빈곤층의 비율이 높은 지구의 남반부(the South)에 위치한 아시아. 그리고 아시아 내의 이주노동자. 빈곤한 그들이 내려야만 했던 ‘이주’라는 선택 앞에 기다리고 있는 현실적.제도적.법적.장벽들, 그리고 편견들. 이들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노동자에게 노동권이 주어지고 병든 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집에서는 편히 쉴 수 있는 소박한 세상을 감히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