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활동가 부부로 사는 즐거움

3년 전 12월, 그해 겨울은 엄청나게 추웠다.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건설노조 공안탄압과 관련하여 명동성당에 노숙농성을 들어갔다. 결혼식을 올린 지 20일째 되던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남들은 쌍쌍이 명동을 거니는데 영란 씨는 국가보안법 철폐 시위를 하다가 연행돼서 남대문경찰서에 있다고 연락이 오고, 나는 수배 중에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훈방으로 나온 그녀와 명동성당 계단에서 비닐을 덮고 잤는데, 그 따뜻했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남다른 부부생활


돌아보면 결혼부터 지금까지 참 어려움도 많았다. 결혼과 동시에 농성이 시작되었고, 1년 정도의 농성이 끝나자마자 영란씨의 항암 투병이 계속되었다. 그간 많은 눈물도 흘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참 잘 헤쳐 왔구나 싶다.


활동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 의지와 도움이 된다.


활동가와 살다보니 집에서 하는 일상 대화들이 지극히 일상적이지만은 않다. 뉴스를 보다가도 뒷배경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끄집어내기 일쑤고, 새로운 사업기획이나 구상이 떠오르면 서로에게 마치 브리핑하듯이 설명을 하고,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에 대한 상담도 많이 한다. 얼마 전엔 영란 씨가 건강 때문에 이런저런 활동제약을 받고 있고 그 문제로 상근활동을 계속해야 하는지 등등의 고민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이런 점들이 활동가의 욕심, 더 나아가서는 발전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하며 운동은 성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몫이 있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물론 그 말들이 힘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그렇게 진지했던 대화들을 지금 돌이켜보면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었는데, 활동가들이 함께 살다보니 일상적인 대화마저 논리적이고 이론적이라는 생각에 우습기 그지없다. 대화뿐만 아니라 활동가부부의 삶은 부부싸움을 할 때도 구호를 외치고, 단식을 하고, 협상과 교섭을 진행하고…. (ㅋㅋㅋ~) 그렇지는 않다. 일상생활은 그저 일에 바쁜 평범한 생활이다. 그렇지만 집에서도 잘못된 뭔가를 바꾸려고, 좀 더 대안적인 삶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런 서로의 노력으로 몇 가지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먼저 누구나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하는 집안 살림은 함께 한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먼저 하고, 함께 있는 시간에는 함께 한다. 누구의 것이라는 게 정해진 일이 없으니 집안일을 갖고 서로 얼굴을 붉힐 일도 없다. 가정은 둘만의 공간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함께 나누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손님들도 자주 찾아오지만 이제는 손님들도 익숙해졌는지 이것저것 내어먹고 정리까지 하고 갈 때가 많다. 이런 집안일에 대해서는 양가 부모님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 때 찾아가서 요리라도 할라치면 처음에는 어색하셨던지 좀 만류를 하셨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보아주신다.


또한 우리는 집에서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더라도 30년 넘게 각자의 생활을 해온 두 사람이 항상 같은 생각, 같은 느낌을 가질 수는 없다. 이런 부분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알아가기도 하고, 그때그때의 느낌과 필요한 부분을 새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공간이 다르다보니 각자 바쁘다. 저녁마다 회의 일정이 꽉 잡힌 때는 한동안 밤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얼굴을 잠시 볼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날적이처럼 함께 쓰는 일기장을 만들고 서로의 생각들을 엮어간다. 얼굴 맞대고 하기 힘든 말들, 감정이 먼저 앞서가는 말들도 글로 쓰다 보니 한결 부드러워지고 대화가 쉬워진다. 가끔 지난 날적이를 들추다보면 잊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살아나 서로 말없이 꼬옥 끌어안아주기도 하고….



집은 열린 공간


나는 가정을 활동과 분리된 사적인 공간으로, 또는 활동의 연장인 활동공간으로 굳이 나누고 싶지 않다. 피곤한 하루의 활동에 대해 함께 수다를 떨거나 오락을 즐기며 쉬기도 하고, 내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생각들, 소중한 가치들을 함께 나누며 만들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은 열린공간으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찾아오는 친구들이나 활동가들이 많은데, 가끔은 우리가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있는 날이면 번호키를 열고 먼저 들어와 있기도 하고, 아침에는 주인이건 손님이건 각자의 시간에 맞게 집을 나간다. 그렇게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고 소중한 가치들을 확인하는 것이 여간 즐겁지 않다.


요즘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만들어갈 공동체에 대해 영란 씨와 의견을 많이 나누고 있다.


함께 책도 보고, 주말농장도 가꾸어보고, 가상적인 설계도 해보고…. 정말 나랑 마음이 딱 맞는 사람이 있다면 해보고 싶은 일들을 이렇게 그녀와 하나하나 해보는 재미는 정말 특별하다.



작년 영란 씨가 병가를 받고 1년 쉬던 때 우리는 한 달간 중국 윈난성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소수민족의 지혜로운 문화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지만 그중 하나는 먼 미래만을 바라보고 있는 잘못된 우리의 생활이었다.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아둥바둥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것, 지금의 삶을 살기 좋게 바꾸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또다시 항암치료를 위해 영란씨와 나는 병가를 내었다. 이런 모진 병에 걸리면 모든 것을 접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겠지만, 우리 역시 많은 활동가들이 그렇듯이 활동에 대한 미련과 고집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 검사와 치료를 위해 약을 끊어서 몸은 힘들지만 모처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함께 영화도 골라보고, 이런저런 맛난 요리도 만들어먹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조금씩 삶을 바꾸어 가면 언젠가 이런 이야기들이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겠지….


이렇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그녀와 꿈꾸듯이 함께 나누는 시간이 나는 가장 즐겁다.
힘내 노영란, 그리고 사랑해~.




덧붙이는 말

*김광원 님은 노영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와 부부로 건설노동자이며 행동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