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정영목 옮김, 이레)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유유상종이라 어울리는 놈들 중에 반은 결혼을 안 했고, 결혼한 반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아이가 없다. 그래서인지 술자리에서 이 사건이 자주 술상에 오르내린다. 아예 대놓고 사내가 좋냐, 계집이 좋냐하고 물어보는 치도 있다. 대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나 같은 놈 나오면 어쩌누’ 싶으면 딸이고, 험한 세상 유난히 험난해 보일 때는 반대다. 문제는 이런 안주거리가 아니라 녀석이 아내 뱃속에 들고부터 ‘불안’이란 놈이 우리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에세이 『불안』은 사랑의 결핍과 속물근성, 주위의 기대와 같은 개인적 이유에서부터 능력주의와 사회의 불확실성의 증가란 사회적 원인까지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을 섬세하게 짚어놓은 책이다.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 보면 결국 불안은 자본주의 삶의 조건이자 방식이다.


미국 사람들이 지금 총으로 구한 안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면 한국에 나는 아이를 갖게 되면서 돈으로 안전을 사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또 빈곤하게 만드는 지를 새삼 실감하고 있다. 12주(새롭게 알았는데 이쪽은 대개 ‘주’ 단위로 따진다)를 넘긴 아내는 일단 유산 가능성이 확 줄었다며 안심했지만, 주위에서는 곧 조산의 불안에 시달릴 거라 예언했다. 한 20주 정도 넘기면 일찍 나와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살릴 수 있지만 그때부터는 정신지체, 자폐 등등 돌은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걱정꺼리가 될 거란 저주도 서슴지 않는다. 그뿐인가. 이 사회는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상은 온통 지뢰밭이고 전쟁터라고 떠들며 불안을 마케팅하고 있다. 그러니 어느 영화감독 말마따나 불안은 영혼을 충분히 잠식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혼뿐만이 아니라 나의 지갑까지도 잠식당하고 말 것인가. “제 먹을 복은 다 갖고 태어난다”는 아내와 나의 팔자론(論)은 위태롭고 우리의 지갑은 몹시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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