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30대 남성 활동가, ‘가족’을 말하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족 그리고 결혼

‘가족’을 주제로 기획하던 중, ‘남자가 말하는 가족’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형식은 술 한 잔 하며 편하게 이야기하는 방담으로 결론이 났다. 섭외에 들어가자 모든 참석자들은 왜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의아해 하였으며 ‘가족’에 대해 아는 것도, 깊은 고민도 없다며 걱정을 앞세웠다.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자세한 참석자 소개가 필요하겠다. 참석자들은 모두 (우연히) 30대로 지난 1년 간 육아휴직을 하고 활동을 복귀한 행동연대 안병주 씨는 결혼하여 아이가 둘이고, 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다 그만두고 현재 인권단체연석회의 일을 맡아보고 있는 손상열 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연애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상임활동을 하다 비상임으로 전환하고 KBS에서 무대설치 일을 하고 있는 김명수 씨와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성규 활동가는 현재 같은 30대인 이성과 연애를 하고 있다.
좌담은 지난 4월 10일 저녁 사당역 부근 술집에서 세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성규, 안병주, 김명수, 손상열 활동가


생각만 해도 가슴 답답한 이름, 가족


병주 내가 가장이냐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집을 책임진다거나 가정경제를 맡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가족에 있어 가장의 개념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인도 내게 가정경제에 일부분을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는 하지만 그것이 남성으로서, 가장으로서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책임 속에서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수입이 나은 부인이 아니라 내가 1년 간 육아휴직을 한 것도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명수 나에게 가족은 평범하지만 서로 믿고 사랑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마음이 아프고 걱정스럽겠지만 가족의 경우 그 정도가 다르다. 한편으로는 가족은 상당히 불편하고 나를 억압하는 관계다.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결국 취직을 하게 된 이유도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양복에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줄로 알고 계신다. 저번에 시골에서 올라오셨는데 현재 직장은 정장을 입을 수 없는 곳이어서 가까운 친구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출퇴근을 해야 했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농촌 가정이어서 정말 가부장적이다. 부계 혈통 중심에 더해서 장자 중심으로 오다보니 맏아들에게 거는 부담, 스트레스가 심하다. 제사를 12번도 더 지내는 전근대적인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규 가족이 애정과 억압이 공존하는 관계라는 명수 씨의 생각에 동감한다. 특히 억압이 정말 많다. 그러나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족이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자 어느 순간부터 나를 억압했던 부모가 배려해야 할 존재로 바뀌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독립이란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관계, 억압은 여전하며, 나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면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독립을 했음에도 가족이란 유대감이 결코 덜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에서 보면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족이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가족 개념, 그 범위는 상당히 넓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하는 ‘가족’은 정상가족을 자연스럽게 지칭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더 진행해보자.



상열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장가도 안 간 상태이니 상당히 많이 부딪친다. 부모는 이 모든 것이 불만이고 그러다보니 요새는 대화 자체를 피한다. 단적으로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가 거실에 있으면 내가 거실에 나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모임에 나가면 자식 이야기가 주된 주제인데 하실 이야기가 없으니 속상하실 테고. 아래 동생이 있지만 맏아들이다 보니 특히 이런 갈등이 더 심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가장 행복했다고 어머니는 말한다. 그때는 아이를 키우면서 희망이란 것이 있으니까. 당시에는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것 외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아버지가 나이가 드시니까 어머니에 대한 의존이 많아졌다. 게다가 내가 이러고 있으니 어머니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병주 가족은 결혼 전에는 싸우느라 시간 다 보내고, 결혼 하고 나서는 자기 살기 바쁜 관계 아닌가. 그런 점에서 가족은 허울일 뿐이다. 부모님이야 아직은 젊으시고 일도 하시니까 부양에 대한 부담은 없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아이들이 커서 나를 어떤 아버지로 생각할까 갑자기 걱정된다. 억압이라는 둥, 답답하다는 둥 이야기가 나오니까 말이다.



가족 구성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명수 가족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세계인권선언에 언급되어있는 ‘가족 구성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인권이라면 가족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다. 그것이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라면 더욱 더 말이다. 외롭고 혼자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공동체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부모와 자식, 이런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폭넓게 공동체의 필요성이 중요한 것이고 가족의 극복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성규 선언에 가족 구성권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가족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라고 생각되고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어쨌든 혼자 살 수 없는 현실에서 같이 살려는 욕구가 있고 그래서 공동체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것을 가족이라고 한다고 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회 그런 의미에서 가족 구성권에서 ‘가족’을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으로 놓을 것이 아니라 폭넓게 해석해서 ‘가족’을 다양한 가족, 혈연이 섞이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로 볼 수 있다, 봐야 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열 세계인권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자유주의 인권관이란 점을 볼 때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공동체가 파괴되고 핵가족이 등장하면서 나왔던 가족 개념이 그대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할 권리라면 굳이 가족 구성권이라 할 필요가 있나? 분명히 가족과 공동체는 구분되는 것 같고, 가족 구성권에서 가족은 정상가족을 정당화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한편 한 친구는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 아이의 성을 자기나 부인의 성을 따르지 않게 하고 아이의 성을 그대로 쓰게 한 예도 있듯이 다양한 가족의 논의가 실재하고 있다. 이렇듯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 가족이다.



가족은 사회 부재를 은폐한다



명수 그런 의미에서 동성간 결혼 허용 문제도 동성끼리 정상가족을 구성하게 해달라는 요구에서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혼을 해야 하지만 얻게 되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접근보다는 그런 권리를 확대하여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권리를 행사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한편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생존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사고가 나서 몸이 불편하게 되었을 때 누가 나를 돌봐줄 수 있을까, 정말 그럴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에는 결국 가족이 나를 돌봐 줄 것 같다. 때문에 가족은 사회 부재를 은폐한다고 할까, 사회가 건강권을 실현해줘야 하고 사회복지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것을 가족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해줘야 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가족의 책임과 의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TV, 특히 드라마에서는 가족의 중요성이 항상 최고 선으로 나오게 된다.



병주 나는 내 자식과의 관계를 어떡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가족의 해체나 정상가족의 문제와 같은 고차원적인 문제보다는 당장 내가 내 자식과 수 십 년 동안에 가야 할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가부장적이어서는 안 된다, 남성 중심성을 탈피해야 한다, 성역할을 해체하고 동등해야 한다, 등등 생각은 있지만 내가 살아왔던 삶과 현실에서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활동하면서 좋은 사람이란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막상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부모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이런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가족은 폐쇄적이다. 밖에서의 활동과 가족 안에서의 나의 모습에 괴리가 생기는 거다.



사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를 다 느끼고 있고 가족이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다는데 모두들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남성들이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세 명은 모두 결혼을 할 생각인가?



꼭 해야 할 것 같은 숙제, 결혼



명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제도가 억압이라고 하지만 나는 활동가이니까 좀 다르지 않을까? 이런 근거 없는 낙관을 한다. 연애를 하면서 1년 반 동안 여자 친구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 친구가 결혼제도에 대한 억압을 직시하면서 결혼을 하기 싫다, 하지말자고 했고 나는 결혼해도 억압을 안 받을 수도 있지 않느냐, 가족 안에서 생기는 갈등을 내가 중간에서 잘 하겠다, 뭐 이런 식으로 설득을 했다. 그랬던 이유는 결혼을 안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활동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데 결혼까지 안 하면 집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갈등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좀처럼 여자 친구와의 대립을 풀지 못했는데 최근 친구들 중 비혼을 결정한 이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쉽게 순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생각을 바꾸어가고 있는 중이다. 다만 혼자 살아가기는 싫다. 나는 이성애자이고 내가 좋아하는 이성 친구와 함께 살고 싶다.



성규 내 경우도 결혼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해도 안 해도 큰 상관은 없다고 말은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 부모와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나는 부모와 맞서본 경험이 별로 없다. 권위적인 부모가 아니어서 그런지 항상 설득과 이야기를 통해 합의를 했던 것 같다. 듬직하고 착한 아들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며 살아왔다. 아마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했다면 활동을 안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명수 씨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안 하고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생활이랄까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같이 살아가는데 불편하고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 활동가들과의 만남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고 대인관계를 잘 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이것 때문에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병주 가족 내에서 갈등이 있을 때 누구 편을 들어주고 막아주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고,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은 갈등이 생길 원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자가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가능하지도 않고 더 나아지지도 않는다. 제도를 떠나서 관계를 어떻게 맺는가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 아니어도 자취를 하면서 동성친구와 같이 살아도 없었던 갈등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던 안 하던 여자 친구와 같이 살다보면 갈등이 생긴다. 그것이 두 사람과의 갈등만이 아니라 가족과의 갈등으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다르겠지만 결국 같은 면이다. 어쨌든 제도권과 제도권 밖에서의 우리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데 제도권 안에서는 기존의 관습 속에서 가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남성이라고 하는 정체성에서 제도권 안에서,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가져갈 것인가는 참 어려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일상적이고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관계도 회피하거나 외면하고 가는 경우가 많지 않나?



너무나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병주 가사분담과 같은 역할분담이 꼭 필요한 지도 의문이다. 시간 나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가고 있다. 내가 집에 있으면 가사와 육아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인이 하는 것이고. 굳이 억지로 분담을 해야 하는가 의문이다. 뭘 정해놓으면 거기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비난도 하게 된다. 나는 스스로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와이프는 불만이 많겠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깨진다. 내가 안 해도 어머니가 하니까. 제사 때에도 며느리들이 있으면 내가 끼어들어가서 할 틈이 없다. 처음 결혼했을 때 처갓집에 가서 설거지를 의식적으로 했는데 점점 그게 줄어든다.



명수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부분이다. 불편하지 않기 위해 서로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몸에 익힌 관습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활동가라는 정체성에서 억압을 없애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당장 억압을 없앨 수는 없지만 우리가 억압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은 필요하지 않나?



성규 결혼을 안 하고 아이 안 낳는 것이 회피이고 외면이란 생각도 한다. 결혼이 반드시 억압의 주체가 되는 것이란 생각보다는 내 방식대로, 더 나은 형태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그리고 같이 결혼할 사람이 동의한다면, 동의하지 않는다면 절대 할 수 없겠지만, 동의한다면 결혼하고 노력해서 잘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삶을 만들어간다는 것. 결혼을 안 한다고 해서 가족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가질 수 있고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주 아이 때문에 활동을 포기한다거나 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관점의 차이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을 재생산하는 가족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내 활동의 조건을 넘어 미래의 주체로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활동만큼이나 큰 고민이다. 아이 키우는 것도 활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가 없어서 자유롭게 활동에 전념한다고 세상이 얼마나 더 바뀌겠나. 오히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세상을 더 많이 바꿀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들고 그만큼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덧붙여서 개인적인 의문인데 남성 활동가 중에서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활동가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을까, 주말에 활동하고, 저녁에 회의하고 의문이다. 나는 활동과 육아가 겹치면 활동을 포기한다. 여성들도 그런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책임감에서 말이다. 아이를 하나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지역공동체, 가족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핵가족에서는 그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남성은 크게 힘들지 않고 여성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명수 그런 것들을 어떻게 깨나갈 것인가의 고민이 필요한 것 아닌가. 사회적 양육시스템이 없으니까 남성 활동가가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것은 결국 배우자가 그만큼 가족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이를 안 보면서 활동을 한다는 것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올바른 성과인가 의문이 있는 것 아닌가. 우리 단체에도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남성 활동가가 두 명 있는데 둘 다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한 명은 가족 안에서의 역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회의 한번 잡기도 어렵고, 그 집에 가서 회의하다보면 다른 활동가와 갈등이 생긴다. 마치 이기적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이건 운동사회 전반의 변화가 함께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상열 결혼하라는 압박이 직접적으로 줄어들 뿐이지 부모님은 자식의 눈치를 보면서, 계속 긴장과 대립 관계로 갈 것이다. 그것은 감정적인 문제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도 그렇고 제도적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다. 내 경우는 활동과의 관계, 뭐 이런 거창한 것 보다는 개인적 성향이 좀 더 작용하는 것 같다. 관계에 대한 압박들, 내가 그런 제도에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솔직히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 결혼을 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든다. 물론 혼자 살아야겠다, 살 자신이 있다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또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30대에 결혼이란 피할 수 없는 화두인 모양이다. 술자리에 갖은 좌담이라 많은 제약과 애로가 있었다. 특히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옆 자리 50대 남성의 어깨는 반 이상 이편으로 넘어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참석자들 모두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해줬다는 점이다.



사회 강곤 |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