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단체탐방]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소시민들이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사람 몸 중에 중심이 어디일까요?’
라는 질문에 ‘데모크리토스’는 ‘심장’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아픈 곳’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아픈 곳이 치유될 때까지는 온통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는 때문입니다.
저는 후자의 입장에 서고 싶습니다.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입니다.
세계의 중심 또한 전쟁과 기아와 빈곤으로 인하여 ‘아픈 곳’ 입니다.
‘아픈 곳’에 사회의 모순과 세계의 모순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대의 중심에 서고자하는 예술가에게
그것은 숙명의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 2007. 5. 1.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이시우 씨 편지 중

민가협 목요집회. 사진 | 강곤


반세기가 넘도록 치유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아픔, 국가보안법. 그 아픔에 고통 받는 사람들 곁을 줄곧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어머니들이다.
5월 10일 목요일 오후 2시 어김없이 목요집회가 진행된다. 지난 4월 22일 구속된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씨의 부인 김은옥 씨는 “남편은 사진은 90%의 학문과 9%의 실천과 1%의 영감으로 창작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실천해 온 사진작가”라며, “국가보안법이 그런 평화활동가의 양심과 사상을 가두고 있다”며 이시우 씨의 석방을 호소한다. 1996년도 연세대 사태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어 구속된 이재춘 씨의 약혼자 송현아 씨는 국가보안법이 어렵게 일궈 온 우리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조속한 폐지를 촉구했다. 22년간 길거리에서 싸워 온 어머니들은 새 식구를 맞아야 하는 작금의 세태가 씁쓸하다.



“어버이로서 손색없는 삶을 살자”


목요집회를 마치고 근처 식당에 모였다. 전달사항이나 공유할 것들이 있을 때 이렇게 뒤풀이 자리를 갖는다. 오늘은 ‘어버이 날’을 자축하며 양말 한 상자씩을 돌리고, 권오헌 양심수후원회장이 북한을 다녀오며 가져온 빵을 나누는 자리였다. 임기란 운영위원이 “어버이로서 손색없는 삶을 살자”며 격려의 인사를 잊지 않으신다. 그러면서 벌써 단식 22일째에 접어든 이시우 씨를 걱정하신다. “98년 홍제동에 수감되었을 때는 면회자체가 안 되었었는데 지금은 면회도 되고 하니 걱정은 좀 덜 되요.” 어찌 걱정이 안 될까마는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듯 김은옥 씨는 담담하게 말한다.


이시우 씨와 이재춘 씨는 남대문서에 함께 수감이 되어 있었다. 둘은 함께 모든 날인을 거부하며 국가보안법에 단식으로 맞섰다고 한다. 혈기왕성(?)한 이재춘 씨가 작은 소란을 피운 반면 이시우 씨는 수도승처럼 그저 조용히 정좌하고 있는 편이라며 김은옥 씨와 송현아 씨도 어느새 동지가 되어 있다. 김은옥 씨와 송현아 씨는 단식이라는 극단의 방법에 대한 염려와 걱정보다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을 침해하며 일신을 구속하는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는 동지에 대한 신뢰와 지지로 마음을 다지고 있는 듯하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목요집회 후 한지연 간사는 ‘통신비밀보호법’ 간담회가 있는 진보네트워크로 향했다. 뒤풀이가 진행되는 동안 조미영 간사는 집회물품을 사무실에 정리해두고 간담회에 참석했다. 정보통신과 민가협. 어쩐지 잘 조화가 되지 않는다. “민가협은 자유권에 집중하여 활동하는 단체인걸요.” 한지연 간사는 민가협이 자유권 부분의 인권침해에 대해 계속적으로 점검, 대응해 왔고, 통비법 역시 동일한 맥락이라고 한다. 간담회에서는 ‘현대사회의 전자감시와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라는 주제 속에 통비법의 인권침해 조항들을 점검했다. 우리사회가 표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소홀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라고 하면 바로 보안법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 되어도 안보논리로 직결되는 구조를 띠면서 별로 문제의식을 못 느끼게 되는 거죠.” 박성희 간사는 전체적인 사상의 흐름을 이끌어가기 위해 통제의 방식으로 적용되어 온 국가보안법이 전반적인 표현의 자유를 막는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관련성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없었음을 지적했다. 전자여권, 전자주민증, 교통카드, RF태크를 통한 개인정보의 노출이 위험수위지만 범죄예방과 편리성 앞에 반향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게다가 국정원은 공안사범이 줄면서 약화된 위상을 정보통신 검열을 통해서 찾으려 하고 있다. 다시 ‘국가보안법’이다.


“인터넷으로 매체가 변경되면서 일단 적용대상을 먼저 찾고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훑어요. 그게 공안기구의 특성이죠.” 한지연 간사는 공안기구가 계속 유지되는 생리를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걸러진 목록이 많은 단체의 서버를 운영하는 진보네트워크에 보내진다고 한다. 해당 글의 삭제요청 혹은 노조지도자들의 IP를 요구하는 공문과 함께. 현재는 버티고 있지만 통비법이 개정되면 벌금이 부과되니 난감할 노릇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그간 자유권 분야 운동에서 오랜 노하우를 지닌 민가협에 연대를 요청, 함께 대응방안을 찾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민가협 장터에서. 사진 | 박김형준


섬세한 대응이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국가보안법 적용도 변화하고 있다. 198,90년대에는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불법연행, 감금과 사상, 양심의 자유에 대한 통제 및 이적단체 규정이 많았던 반면 근래는 국가기밀사건이 늘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매우 자의적으로 적용한다는 것.


“널리 알려진 것도 그것이 북한에 이롭다고 판단되면 국가기밀이래요. 수집하는 것만으로도 위반이라고 하니….”한지연 간사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구속사례는 줄었지만 특성상 더욱 섬세한 대응이 요구되는 사안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과 맞물린 구속자 현황 조사는 민가협의 주요 업무로 지금은 양심수 현황조사로 그 폭이 확대되었다. 각 대학 총학생회 및 노동조합, 언론, 법원, 구속자 가족 등을 통해 파악한 내용을 신분별, 적용법규별로 통계를 내어 제공한다. 각 사무실에 전화를 하여 확인한다고 하니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을 요한다. 때문에 신뢰할 만할뿐더러 양심수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통계이기도 하다.



조작간첩사건 진상규명운동


올해부터 민가협이 새로이 주력하는 사업이 있다. 바로 ‘조작간첩사건 진상규명’이다. 2005년 7월 함주명 선생의 재심 무죄판결도 민가협의 오랜 자체조사와 분석활동의 결실이다. 이런 조작사건의 경우 고문문제가 병행된다.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은 모두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고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간첩으로 둔갑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1989년 고문기술자 이근안 수배운동과 고문추방운동 당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한 케이스들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한편 공소시효배제입법 운동을 전개해 왔지만 조작간첩사건과 관련하여 공소시효배제에 거는 기대는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공소시효배제 관련해서 현재 이원영 안이 유력한데 이 안에는 소급적용하지 않고 손해배상만 하겠다는 것인데… 과거사 청산에는 실익이 없죠.” 한지연 간사는 진정 과거청산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민가협은 재심신청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심신청은 청구부터 결정까지 기간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청산기구가 만들어질 당시 민가협은 10개의 조작간첩사건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를 보면 공통점들이 발견되는데 우선 날조간첩사건은 주로 납북어부, 조총련 관련, 행불자가족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연장을 위해 직접적으로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람이 아닌 무고한 서민들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체포에서부터 수사, 재판에 이르는 과정은 인권침해로 점철되어 있다. 피해자들은 무슨 이유로 왜 체포되는지 영장제시도 없이 체포.구금되었다. 그리고 40일에서 길게는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했다. 검찰조사 때는 안기부 직원이 동행했고, 조사기간 동안 가족은 그 사실을 고지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변호인의 조력도 받을 수 없었다. 그 속에서 고문, 허위자백, 번복 그리고 다시 고문이 되풀이 되면서 자술서를 쓰게 되고는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으로 몰려 감옥을 가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요. 사회시선에 의한 피해도 막대하고.” 한지연 간사는 조작간첩사건은 피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손해배상은 피해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민가협은 조작사건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을 위해 조심스럽게 발을 떼고 있다.



민가협 하면 목요집회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장터가 아닐까. 5월 14일 축제가 시작된 서울대학교에서 민가협 먹거리 장터가 열렸다. 몰려드는 학생들로 힘들고 분주함에도 사진 찍고 싶다는 말에 얼른 모여주시는 여유를 보여 주신다.


“처음엔 내 자식 석방시키려고 시작했지. 그런데 다 내 자식처럼 억울하게 고통 받는 애들이란 걸 알게 됐고 또 내 자식 같고… 내가 머라도 할 수 있으니 계속 나오는 거지.” 한 어머님의 말씀이지만 모든 어머니들이 같은 마음으로 20여 년이 넘게 민가협과 함께 하는 것이리라. 한국의 인권지형이 넓어지면서 민가협의 활동의 폭도 넓어졌다. “그러나 큰 맥락에서 달라진 건 없어요. 사회권이 부각되면서 자유권이 잘 보장되고 활성화된 것처럼 여기지만 그건 아니거든요.” 한지연 간사는 자유권에 대한 침해는 변함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더욱 치밀하고 기술적, 지능적으로 고도화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가협도 새로운 대응논리를 발굴해 가면서 꾸준히 자유권을 중심으로 한 인권이슈를 확장해 갈 거라고 한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온전한 민주주의가 실천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