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열린칼럼] 마음이 심히 불편하다

앤디 워홀 미술전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나는 스타를 사랑한다’ 등 그는 이미 상품화되어버린 인간의 자의식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 중에 은색 스프레이 페인트칠을 한 유리병 여러 개를 담아 놓은 노란 코카콜라 나무 상자가 있는데 그는 이런 제목을 부쳐 놓았다. “당신은 안에 있다(You’re in)”. 당신이 은색 코카콜라 유리병 안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인간들의 정체성이 상품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상품을 소비하고 유희하면서 그 자신이 상품이 되어버린.


상품으로 변신한 인간 속으로 섬세하게 들어가 보면 나는 이제 인간이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상품시스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상적으로 버는 경제적인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요구된다. 그들은 자신이 버는 경제력을 넘어 빚을 내서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다. 상품소비라는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가는 ‘복잡하고 이중적인 삶의 형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상품소비를 통해서 타인과 자신을 구별한다. 남보다 더 고급스러운 교육상품을 소비하고, 남보다 더 삶의 질이 높아 보이는 문화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카드 긁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소비하는 상품의 차이로 자신들의 품위를 유지한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은 경멸하고 배제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합리화 하는 온갖 구실을 만들어 낸다. 일상생활에서 그런 시선들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심히 불편하다.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삶은 개가 뒹구는 진흙탕이다. 진흙탕이 되면 될수록 그들은 새롭고 귀족적인 고급 상품을 통해 기를 쓰고 우아한 삶을 누리려고 발버둥(!)을 친다. 어떻게 보면 ‘발악’의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밖에 바라보지 못한다.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보이는 워홀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워홀이 표현 했듯이 ‘정신착란증의 뉴욕’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어떤 소리가 들린다. 동굴에 앉아 있는 것처럼 커다란 울림으로. 예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외부로 내어 놓고 함께 위로하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 안에 그 소리를 가둬 놓으면서 살고 있다. 혼자, 사람들이 그 모든 상황을 감당하면서 살게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마음 안에 꽉 막혀서 괴로워하고 있다. 진심으로 서로 문제를 나누고 아픔을 함께 해야 하는데, 그래야 숨통이 트이는데 오히려 이런 연대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있다. 넘쳐나는 풍요로운 상품 곁에서 인간의 마음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메마른 모래 들판처럼 말라붙어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잉카문명을 이루었던 페루인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양이나 재배하는 코카에게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아이의 머리를 자르면서도,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 존중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품사회가 인간관계 사이에 놓여져 있던 믿음, 신화, 마법을 거둬 가 버린 것을 안타까워 할 뿐이다. 인간관계의 믿음, 신화, 마법 대신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자신이 만든 상품의 노예가 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자기 파멸적인 심리, 스타들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빈곤한 자아가 결국은 자신을 상품이다, 라고 선언하게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김순천 님은 르뽀작가로 청계천 사람들 삶의 기록 『마지막공간』과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의 이야기 『부서진 미래』 등의 작업 책임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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