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달리는 포장마차]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혹가이도 조선학교 다큐 ‘우리학교’ (감독 김명준)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에 책을 기증한 적이 있다. 한 단체에서 활동할 때 일인데 단체 회원들이 우연히 그 조선학교에 들렸다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같이 쓰는 학교 도서관에 6,70년대 북한 서적들만 가득하고 무엇보다 어린아이들 볼 책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시작한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가 커서 처치곤란이 되어버린 책들을 갖고 있던 회원들의 전폭적인 참여로 책은 곧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막판에는 출판사 후원도 이어져 수천 권이나 되는 책이 모였다. 예상 밖의 결과에 들뜬 우리는 교장선생님에게 조촐한 책 전달식을 제안했다.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어쩐 일인지 고맙게 책을 받겠다던 선생님은 전달식 메일을 받고도 한참을 답이 없었다. 속이 탄 나는 전화를 걸었고 몇 차례의 이메일이 더 오간 후에야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별 뜻 없이 감사한 마음에 책을 받겠다고 했던 선생님은 이메일 내용을 학교 운영위원회에 보고를 했고 운영위원회에서는 난상토론이 벌어진 모양이다. 당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이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만큼 남쪽의 지원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으리라. 우리는 긴급히 회의를 갖고 전달식은 물론 어떤 조건도 없이 책을 보내고, 무리한 제안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그저 도서관 책꽂이에 꽂아만 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들리는 말로는 혹가이도에 있는 조선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가 선전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권영화제에서도 만원사례를 했단다. 다큐 속 아이들은 천진난만 했고 선생님들은 사려 깊었으며 그 어울림은 아름다웠다. 내내 미소를 짓게 하는 영화는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온 아이들이 남루한 북한의 겉모습이 아니라 인민의 마음씨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어쩌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지혜가 남도 북도 아닌 제3지대, 가장 소외되고 고달픈 역사를 간직한 그 자리에서 싹트고 있다는 희망도 엿보인다. 본인의 미숙함을 먼저 돌아보며 남과 북 사이에서의 고민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 그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이메일에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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